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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6. 2022

3.1 나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교사다

  우리는 가끔 학교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관리자를 보며 화가 날 때가 있다.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가 관리자라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업무를 실질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모두 교사인데 교사의 의견을 무시하면 정말 속상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관리자와 교사의 관계가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자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학교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이 각자의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로 뻗어 나갔다.       




  교사인 나에게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요즘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운영하고 학생들을 평가할 권한, 학급을 운영할 권한, 학생생활기록부를 작성할 권한 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권한은 어떤 영역에서 학생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자 학생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힘이 된다. 그리고 이 권한은 학생과 나눌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평가를 학생에게 맡기거나 학생생활기록부를 학생에게 작성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오롯이 나의 몫이며, 나의 책임이다. 나는 나의 권한을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돕기 위해 행사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결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노력한다. 첫 번째는 나는 나의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기 전에 그 일과 관련된 여러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는다. 예를 들어 우리학교는 학기마다 모범학생을 표창하는데, 모범학생을 혼자 선정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추천을 받고 의견을 듣는다. 학급 일에 가장 관심이 많고 학우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반장의 의견을 듣지만 반장도 사람인지라 더 친한 친구 덜 친한 친구가 있다. 그래서 믿을 만하고 성실한 반장이라 하더라도 절대 반장의 의견만 듣고 결정하지 않는다. 학급 구성원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모범학생은 어떤 학생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의견을 받은 뒤 투표를 통해 모범학생을 선정한다. 


  두 번째는 내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중학생에게 나름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교실 자리 배치이다. 친한 친구와 앉고 싶어 하는 걸 알지만 나는 3월에 번호순으로 앉도록 힌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새 학기엔 쌤이 너희들의 얼굴과 이름을 빨리 외우기 위해서 라고 설명하고 다음 달부터는 너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정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짓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이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째는 학생들이 의논하여 선택할 기회를 주고,  나의 요구와 학생의 요구를 조율한다. 4월에는 학생들이 어떻게 자리를 정할지 회의를 하게 한다. 다년간 담임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80%는 제비뽑기로 정해질 것을 안다. 모르는 친구들과 친해질 수도 있고, 공평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회의를 한다. 오는 순서대로 앉자, 그냥 친한 친구랑 자유롭게 앉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이에 스쿨버스가 늦게 오는 아이가 불리할 것이다, 친한 친구랑 앉으면 너무 시끄러울 것이다 등 반대 의견이 나온다. 이렇게 학생들끼리 서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의견을 조율해 나간다. 예상했던 과정을 거쳐 결국 또 예상했던 대로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특별한 사정으로 특정한 자리에 앉을 수 없는 학생을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더니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앞쪽에 앉아야 한다는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어떻게 하겠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이들이 우선적으로 앞자리가 나올 때까지 제비뽑기를 하는 걸로 결정했다. 

  사실 학급을 경영하는 나의 권한으로, 다년간 담임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2주마다 제비뽑기하자고 하면 가장 쉽고 다수가 만족하는 방식으로 자리 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협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교사로 신뢰를 얻을 수 있고, 학생들도 결과를 쉽게 수용하고 다음에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게 된다. 게다가 가끔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자리배정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비효율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사로서 내가 행사하는 권한은 학생을 위한 것이기에 나 혼자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번거롭더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의견을 구하는 과정을 거치려고 한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자질인 참여와 소통과 공감, 권한과 책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교실의 주인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려고 한다.

  

  우리는 교실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교사이다. 그 권한으로 생활기록부에 작성해 줄게, 평가에서 가산점을 부여해 줄게, 좋은 자리에 우선적으로 배정해줄게 등으로 학생을 현혹하고 조정해서는 안 된다. 그 활동을 하려는 목적, 이유, 방법, 기대효과 등에 대해서 전체 학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후 결정을 내릴 권한을 행사하여도 늦지 않다.

 

  나의 권한은 학급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주어진 것도 아니며, 나에게 부여된 권한이 절대적인 것에 비해 나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권한은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과 교육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실에서 내가 가진 절대적인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하고 있는지 경계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고유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사회로서, 교장으로서, 교감으로서, 보직교사로서,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학생으로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진 권한을 어떤 자세로 행사할 것인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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