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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6. 2022

4.5 나에게 남아있는 상처

  상처를 입는 건 매우 주관적인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에서 같은 걸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 나는 매우 어렸고, 몰랐고, 초보였다. 미숙했던 나에게 동료 교사가 합당한 이유 없이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글로 읽기보다는 아직은 정치에 익숙하지 않았던 교사의 이야기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내가 교사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때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고, 교사의 TO나 교육과정 편제 등이 무엇인지 용어조차 익숙하지 않았었다. 학교에서 주어진 일을 소화하기에 바빴고, 사고 치는 학생들 관리와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공통과학 선생님이 TO 감축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과학선생님은 학교에서 4년간 장기 근무하고 있었고, 학급관리나 교과에서 딱히 흠을 잡을 일이 없는 평범한 교사였다. TO감이 되는 교사를 처음 봤었고 학교가 돌아가는 사정을 하나도 모를 때라 여러 사람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고 다녔었다. 돌아온 답변은 수업시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줄여야 했고 통상적으로 TO감이 될 때 학교에 오래 있었던 사람 순서대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 과학 선생님이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그 말 그대로 믿었었다. 하지만 한 달 후 다른 선생님이 넌지시 이야기해준 바에 따르면 그 선생님이 나가지 않을 방법이 충분히 있었지만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걸 듣게 되었고 곧 그 내부 사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교사의 TO는 학급 수에 의해 결정이 된다. 학급 당 교사 수가 있고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 학급이 준다면 그 학교의 전체 교사 TO는 감축된다. 하지만 이것 이외에도 TO가 변동이 있는 경우가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에 변동이 있을 때이다. 가령, 역사 수업을 늘린다고 하면 역사 교사는 늘고 수업이 축소된 다른 교사는 학교를 떠나야 한다.


  과학선생님은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과학과 내에서 화학 시수가 늘어 화학교사를 데려오기 위해 공통과학 선생님을 감축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화학 시수가 늘었지만 충분히 평균 20시수가 넘지 않아 1명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부담이 된다면 업무를 줄이거나 강사를 구하는 등 다른 방법이 충분히 존재하였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화학 강사를 늘리고 공통과학 교사를 내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래서 그 과학선생님은 TO감으로 나가게 되었다. 나는 과학선생님에게 이에 대해 어떤 논의 등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그 선생님은 그냥 이렇게 되었다는 통보만 받았다고 하였다. 협의회를 거치기는 했지만 그 협의회 자리는 공통과학 교사를 감축한다는 학교의 결정을 통보받는 자리였다고 했다.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내가 알지 못한 많은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이 된다. 당시 학교에는 공통과학 교사가 2명이 있었고, 당시 추세가 공통과학과 공통사회 교사를 줄여 사회과와 과학과의 시수를 유연하게 만들어 학교의 부담을 줄이려고 하였고, 과학 교육 강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당시 학교 입장에서는 공통과학 교사보다는 화학교사를 하나 더 두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과학과 내에서 형식이야 어찌 되었건 협의의 과정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내가 상처받은 건 그 과학 선생님이 떠났다는 사실보다 주변의 반응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혈기가 넘쳤고 불의를 보면 넘기지 못했었다. 이렇게 그 과학선생님을 보내는 건 학교에서 4년을 근무하며 헌신한 교사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람을 기르는 교사 집단이 가질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부서 부장, 교감선생님에게 TO감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냉담했다. 일단 관리자들은 나에게 학교의 부담에 대해 설명했고 나는 헌신한 교사의 예우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리자 관리자들은 나에게 내가 이 일에 굳이 관여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충격은 내 주변 선생님들의 반응이었다. 대다수의 교사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어떤 부장님은 나에게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해”라는 명언을 남겨주시기도 했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나도 학교에서 적당히 나이를 먹은 위치가 되자 그때 그 일을 각 위치에 있었던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당시의 사건은 나에게 교직 집단과 시스템에 대한 깊은 실망으로 남아있다. 나는 당시 젊은 교사였다. 열정이 있었고 학생들을 위해 무언가 바꾸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때다. 또한 내 주변은 그러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뛰어갈 사람으로 가득하다고 믿었었던 때다. 이 사건은 그 시절의 나에게 학교라는 집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고 내 주변의 동료는 지하철 옆자리의 사람처럼 그냥 앉아있을 뿐인 타인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우리는 직장인이다. 하지만 교사다. 교사는 직장인일 뿐인 걸까? 교사에게 성직관이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걸까?




  이때에는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쳤던 것 같다. 주변 사람에 대한 실망감, 떠나는 교사에 대한 안쓰러움, 관리자의 매몰참 등등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였다. 이때의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사람 관계가 이야기 책 속에 나오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과 조직에 대한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결국 답은 내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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