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는 고교학점제이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들이 대학처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강신청을 하고 교실을 옮겨 다니면서 수업을 듣고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학년에 관계없이 졸업할 수 있는 제도로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은 3년 동안 192학점을 취득해야 졸업할 수 있게 된다.
고교학점제의 장점으로는 학생들의 수업참여도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편성하는 일제식 교육과정을 탈피하여 본인의 흥미와 장래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스스로 설계한다는 측면에서 학생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아직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한 학생들이 진로를 급하게 결정해야하거나 각급 학교의 교육 환경 차이, 교원 부족 등의 문제가 극복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큰 학력 격차가 벌어질 우려도 있다. 또한 특정 과목에 학생이 몰리거나 수강인원이 미달된 과목은 없어지는 등의 문제 또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변화란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에는 소극적인 변화와 적극적인 변화로 나눌 수 있다. 기존의 것에 더해 약간의 수정을 더하는 것을 소극적인 변화라고 한다면 근본적인 방향까지 수정하는 것을 적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꾸준히 변화를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후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것까지 적극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신중해야만 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학습자의 참여를 위해 토론식 수업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강의식 수업이 주는 효율적인 지식 전달을 포기해야 한다.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강화한다면 거꾸로 인성교육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간단한 등가교환의 법칙을 무시하는 정책들이 한국 교육계에서는 너무도 쉽게 정책화되어 시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고교학점제에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무엇인가를 가장 중요한 것부터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넓혀준다는 것은 반대로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공을 어른들이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진로를 고려하여 수업을 짜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성인의 도움 없이 학생들이 모든 대학의 입시 요강을 참고하여 자기에게 꼭 필요한 수업과 그렇지 않은 수업을 구분해 시간표를 무리 없이 구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한 담임들의 학생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모두 시간표가 다른 학생들을 한명의 교사가 담당해 관리한다는 것은 그들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결국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부분들을 학생들이 모두 스스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려되는 것은 낙오하는 학생들 역시 스스로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은 반대로 그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낙오될 학생들을 양산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는 우리가 그들의 성장에 대해 일정부분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는 그 후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런 상황이 벌어져 사회의 질타를 받게 된다면 교육청에서는 교사들에게 더 압박을 해 낙오된 학생들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하게 할 것이고 교사들은 또 그걸 그대로 시행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본연의 임무에 쓸 에너지를 헛된 곳에 소비할 것이고 교육의 질을 낮아질 것이다. 고교 학점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담임의 역할 제고와 폐지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고 학교에서 학생들의 관리와 통제를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겠지만 사회와 교육부는 결코 그런 생각이 없을 것이다. 내가 학교 교육계에 대해 실망하는 지점이 이곳이다. 학교의 근간을 흔들만한 정책들을 너무도 쉽게 밀어붙이지만 그에 따른 각오와 책임은 일선 학교에 회피하고 그들은 실패에 대한 인정 없이 또 다른 정책들을 시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예전에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기억해서 사람들에게 재미없는 어조로 말해준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일 수 있는 타이밍에 적절한 어조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웃게 한다. 예쁜 걸 잔뜩 모아서 둔다고 예쁜 인테리어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을 덕지덕지 학교에 붙인다고 과연 좋은 교육이 가능할까?
정권이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 모든 사람들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생각하는 교육이 정치의 논리에 좌우되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에서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검은 것이 흰 것이 될 수 있고 흰 것이 검은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그렇게 하면 안되지 않을까? 우리가 고교학점제라는 키를 잡은 이상 이 제도가 보완을 거쳐 백년을 책임질 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