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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3. 2022

1.2 확실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

  내가 있던 학교에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려면 지지가 아니라 양해를 구해야 했고, ‘참교사’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왔다. 대부분 튀지 않는 ‘구성원 1’로 살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재외한국학교에 갔더니 이게 웬걸, 나보다 더 일 벌이기 좋아하고 이것저것 해본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닌가. 다양하고 뚜렷한 가치관들이 모여 또 다른 역동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진심으로 설렜다.  




  재외한국학교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매년 11월이면 새로 오실 선생님들이 뽑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처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작아지던 경험이 떠오른다. 나를 오롯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처음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내 능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이 학교가 날 뽑아줄까.’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뽑혔을까.’

  ‘나는 어떤 교사인가.’

  ‘나의 어떤 면을 어필해야 할까.’

 

  여기에 와보니 한국과 똑같이 학교는 학교였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학교’란 교사의 일터로서의 의미이다. 학교의 체계도 비슷하고, 주어지는 업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교사는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모집단에서 뽑는 것이 아니라 ‘지원한’ 교사들 중에서 선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적극성과 도전의식을 지닌 교사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내가 있던 재외한국학교는 규모가 큰 편이라 나처럼 저경력 교사도 많았고, 별다른 스펙이 없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느꼈던 것은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사람들의 집합체였다는 점이다. 대체로 높은 채도의 쨍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느낌. 그게 교육 철학적인 부분이든, 업무적인 부분이든,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든,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든. 재외한국학교의 선생님들은 좋아하고 자신 있는 게 확실했다. 명확한 교육관이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아서 배울 점이 많았다. 가치관이 보색 관계일 경우 거기서 오는 갈등이 크게 생기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국의 내가 있던 학교에서는 "남들 하는 만큼만 해. 무색무취로 사는 게 제일 좋아."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남들과 똑같이, 동 학년과 똑같이. 튀지 않기 위해서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하게 사는 분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해야 학교에서 추가 업무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는 일을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남들이 보기에 번거로운 일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은 ‘일하기 좋아하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 더 많은 업무를 부여받게 된다. 학교조직은 뛰어난 아이디어에 성과급을 부여하지도 않고, 하던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보수적인 조직이다. 사실 다수에 편입되는 것이 편하기 마련이다. 다수 쪽에서 속해있으면 나를 이해해달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처음 무지갯빛 사이 구성원이 되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이 글을 적는다. “재밌어 보인다. 같이 하자” 며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었던 경험은 지금도 나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여태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교육활동을 시도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같이 고민하고 함께 하자고 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보니 나는 용기가 아니라 지지가 필요한 것이었다.

  나의 색이 모든 사람과 어울리는 빛은 아니더라도 꼭 쓰임새 있는 색이 되고 싶었다. 나는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였으며 그게 나의 최선이었을까. 여러 색깔을 가진 선생님들 속에서 나는 어우러지는 색이었을까. 다른 선생님들에게 나는 어떤 색으로 비추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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