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도 전문가의 은퇴이야기
돈 많은 제자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돈 없는 공자 답하기를 "그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유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 논어 -
참~ 공자님 말씀이다. 퇴사를 결정할 때는 공자님 말씀이 힘이 되었다. 지금은 이 말씀은 옛말이고 "재력이 품격과 즐거운 삶을 약속한다."라는 자본주의 원칙에 동의하는 편이다. 실업급여도 못 받는 자발적 퇴직이 가끔은 후회가 된다. 국민연금과 일 년도 못 버틸 비상금이 "어떻게 되겠지"를 만들어낸 원흉이다.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브런치 작가를 넘어 월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꿈이다. 호기로운 내 장담에, 아내도 고개를 흔들지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글을 쓴다.
목구멍 풀칠비, 닭장 관리비, 달구지유지비, 체면유지비 그리고 기타리스트, 사진작가, 수필작가, 체력 단련비 많기도 한다. 품격 유지비는 사치품이니 제외하고서도, 주민세, 재산세, 종부세, 자동차세 그리고 자동차 법규 위반 딱지라도 날아오면 뚜껑 열리는 분노가 폭발한다. 왠 원하지도 않는 국민비서앱이 납세 "알림"이라도 울리면 울렁증이 발생한다.
아... 지리산 첩첩산중으로 도망치고 싶다. 그곳은 관리비도, 세금도 체면 유지비도 없고 세상만사가 편할 것 같다. 모 방송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모든 시청자를 대신해서 호기심에 찬 질문을 한다. 이렇게 사시면 생활비가? "돈 쓸 일이 어디 있나요?" 자동응답기 수준의 답변으로 이승윤을 바라본다. 질문자도 부러운지, 눈동자가 풀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지만 아내의 거부권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약초도 캐고 버섯도 따는 자연인도, 산이나 땅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에 주저 않고 만다.
그래도 나 스스로는 궁핍하지 않았고, 운이 좋은 놈이라고 믿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중동건설현장에 파견된 덕택에 20대 초반에 집도 사고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다. 고도 성장기인 시절이라 30대 초반인 나이에도, L 그룹 신입으로 취직을 할 수로 있었다. 지금은 순위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최고의 직장이란 명성에 걸맞은 연봉과 복지가 빵빵했다. 중동 오일 달러를 종잣돈으로, 상경하자마자, 폭등하던 서울 아파트를 구입할 수도 있었다. 요리저리 투자가치를 따져 이사하기를 반복,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10배 이상 올랐으니 성공이다.
돈에 관한 한, 시련은 있었다. 중동건설노동자로 일한 첫해 월급은 몽땅 부친 사업 부채 갚는데 쓰이고, 다음 해 일 년 월급은 먼 친척 사업비로 날린다. 그런 동생이 불쌍한 누나는, 배가 불록한 돼지 저금통에 500원짜리 동전을 모았다. 꾹꾹 눌러 담은 500원짜리 동전의 위로와 큰아들 걱정에 눈물이 마르지 않던 어머니가 힘이 되어 4년을 더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을 한다. 또한 넘들 졸업할 나이에 대학진학을 한다.
"딩동~ 광고 나갑니다." 중동 건설현장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을 브런치북으로 낼까 합니다. 기대가 된다면, 미리미리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방송이나 신문기사의 은퇴 후 노후 생활 관련 솔깃한 큰 글자에 제목이 보인다. 연금이 어쩌고 보험이 어쩌고 , 부동산 자산은 어쩌고... 참 한가한 말씀이다. 보통 사람의 월급이 처자식 부양하고 집하나 장만하는 것만도 다행인데, 무슨 돈으로 적금 넣고 노후 준비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더욱이 큰 놈 작은놈 두 녀석 미국 유학 자금 챙기느라 변변한 외식한 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노후자금은 고사하고, 건실한 뚜벅이 팀장으로 명망이 높았다. 큰 녀석 결혼즈음 사돈댁 보기 민망해서 장만한 소형 자동차가 그나마 내 인생의 호사다. 그것도 배송사고 할인으로 30% 정도 저렴한 차량이었다.
돈이라고 하면 하소연하고 싶은 이야기가 꼭 있다. 직장 초년병 시절 월급은 70만 원 정도였다. 아내는 통 크게 5만 원을 뚝 잘라 한 달 용돈으로 준다. 하루가 아니고 한 달이다. 물론 퇴근 때는 양손에 과일이나 슈크림 빵을 사들고 오는 희망사항이 포함된다. 한 달 교통비 2만 원, 맛난 거 사기 1만 원, 직장인 교제비 2만 원이 지출 내역이다. 만약 300명이나 되는 입사 동기로부터 결혼 청첩장이라도 받으면, 더듬거리는 말투로 이런저런 변명을 지어내느라 식은땀을 흘렸다.
하나 더 있다. IMF 외환위기시절 이야기다. 1998년 금융위기 직전 주택담보로 아파트 평수를 넓혔다.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은행금리보다 훨씬 높은 시절이라, 너도 나도 은행 또는 보험사 대출로 아파트를 사는 것이 재테크 트렌드였다. 대규모 은행들의 부실과 미친듯한 환율폭등으로 대출이자는 년 18.5% 까지 치솟는다. 이백만 원에 육박하는 대출 이자로 월급을 전액 헌납하고, 아내의 아르바이트로 살았던 사연이다. 그 이후 나는 어느 경우든 고정금리를 선호한다.
예일대 베카 레비 교수의 노인이라는 단어의 인식 조사에 따르면, 노인에 대한 부정적 단어는, "노망 난다, 느리다, 아프다, 괴팍하다, 완고하다"이다. 노인에 대한 긍정적 단어는, "현명하다, 문화 활동을 한다, 많이 걷는다, 너그럽다"라고 한다. 생각보다 내 수명이 아주 길다면, 그리고 지금의 아파트로도 노후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난 부정적 단어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경제 활동이라 볼 수 없는 사진 찍기, 책 읽기, 글쓰기와 클래식 기타가 일상인, 내 삶에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단어의 노인이 될 것인가?
[지혜롭다] 책을 많이 읽은 덕택에
[온화하다]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 음악 덕택에
[사려가 깊다] 좋은 글쓰기 덕택에
[패션이 창의적이다] 사진 미학 덕택에
[건강함이 있다] 40km 자전거 타기 덕택에
큰 힘이 되는 국민연금, 약간의 임대 소득 그리고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이지만, 나는 지혜, 온화, 사려, 창의, 건강 이런 긍정적 단어가 선물하는 즐거움을 가득 싣고 먼 항로의 비행을 할 것이다. 지구를 한 바퀴 둘러보고, 화성을 지나고 , 목성을 지나고 우리 은하계를 지나 안드로메다 은하계도 지날 것이다. Time to take off
참조문헌
사람 공부 - 조윤제
나이가 든다는 착각 - 베카 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