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문선 Jan 21. 2024

왕종원입니다.

어느 철도 전문가의 은퇴 이야기

"음식은 입으로 먹고 배로 판단하라. 머리로 먹는 게 아니라네" 고독한 미식가 -스미 마사유키-


한동한 방송매체에서 인기를 끌었던 요섹남 흉내를 내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요리에 관심을 둔 배경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건강에 자신감이 넘치던 15년 전, 매년 실시하는 회사 정기 검진 결과를 받고 서다. 검진 후 일주일정도 지난 시점에 전화를 받는다. "확실한 위암입니다. 더구나 성질이 고약한 암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검진센터의 오진을 확신하며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서초동의 건강 검진센터를 찾았다. 30대 중반의 의사는 조심스럽고 정중한 태도를 일관하지만, 불쾌하기 그지없다. 지금도 멀쩡하고, 밥도 잘 먹고, 암이라니 한심한 친구네. 그래도 모르니 종합병원을 찾는다. 건강 검진병원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시경과 조직검사 파일을 심각하게 보던 외과 권교수는 단호하다. "맞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수술날짜 잡겠습니다."


수술 후, [몬도가네]로 불리던 내식성과 식습관은 급격히 변한다. 빨리 먹을 수가 없고, 식사량도 평소의 절반 정도이다. 무엇보다 김치에 흰밥이 아니면 설사를 한다. 한 달에 3~4번 하는 해외 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요리를 시작한 것이 이다. 초기 출장 중 요리라는 것은 요리라 할 것도 없다. 호텔방이라 요리도 쉽지 않고, 2~3인용 전기냄비, 햇반, 김치 그리고 인스턴트 된장국, 미역국등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다. 고객들과 의례적인 현지 식사 후에도, 햇반과 김치를 다시 먹는다.   


[몬도가네] 혐오성 식품을 먹는 등 비정상적인 식생활을 가리키는 단어


photo by pixabay


해외 출장 중 취사 문제점을 생각해 보면, 첫 채는 요리 환경이다. 밀폐된 작은방에서 김치, 된장 냄새로 호텔 객실층 전체를 입맛을 다시게 하는 것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더구나 식재료를 다듬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두 번 채는 식재료이다. 전량 한국에서 공수한다는 것은 이코노믹 좌석으로는 어림없는 무게이다. 다행히도 언제부터인가 K 열풍으로 한국 식재료, 된장, 고추장, 간장등 식재료는 해외현지에서 구입가능하다, 물론 싱싱한 고기가 생선, 채소도 구입에 문제가 없다. 세 번 채는 냉장고의 크기다. 호텔객실에 비치된 소형냉장고에 비집고 김치등 식재료를 비집고 보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취사도구이다. 궁색한 식사를 좀 더 격을 올리려면 그럴듯한 취소도구와 그릇이 필요했다. 물론 완벽한 취사도구가 갖추어진 레지던스 호텔이 라면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내 취향의 취사 장비를 갖는 로망을 버릴 수 없다.


 이런 Needs, 로망 그리고 현지 시장분석을 통한 결론은 

호텔대신 주방이 있는 레지던스를 찾는다

식재료는 한국산과 현지 구매 타협점을 찾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가 있어야 한다

200리터급 냉장고가 있어야 한다.

밥솥과 취사도구를 준비한다. 


완벽하다. 이제 요리를 할 시간이다. 단기 출장지의 요리는 흰밥과 찌개가 메인이다. 첫 번 채 도전은 국물과 건더기가 있는, 영원한 한국인의 맛 김치찌개다. 서울에서 출장지로 이동하는 동안 냉탕과 온탕을 반복으로 자연숙성된 김치와 현지 구매 돼지고기와 두부를 넣어 국제 콜라보 찌개를 만든다. 뜨끈뜨끈한 막 지어낸 흰쌀밥에 김치찌개라니 만족스러운 결과다. 거기에 올리브를 바른 김을 추가한다면 밥 한 공기 우습다. 


photo by pixabay

코로나 팬더믹으로 출장기간이 3개월 정도 길어지자 내 요리 영역은 과감해진다. 김치와 깍두기를 만든다. 이쯤 되자, 출장동료를 초대하는 이벤트도 한다. 이거 저거 뒤져 칼질하는 자세, 요리 재료 다듬는 법 그리고 레시피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설익은 요섹남의 면모를 과시한다.  빽선생 유튜브 원격지도로 시작한 요리는 어느새 직원들 사이에 "왕종원"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세프로 성장한다. 특강도 한다. 된장찌개를 배우고 싶다는 후배를 주방보조로 부리며 온갖 미사여구와 어려운 전문 용어를 섞어 지도를 한다.


나에 명성은 태국 현지인들도 인정하는 수준의 K-Food 전도사다. 제임스라는 태국 현채인의 김치 사랑은 특별하다. 사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 사람은 그와 나다. 처음엔 그도 태국식 덮밥이나 국수를 준비하더니, 김치의 매력에 푹 빠져, 밥만 가져오고 반찬은 나의 소중한 김치로 대신한다. 먹성도 좋아 내가 두세 끼 먹을 김치를 한 끼에 처리한다. 그도 그럴 것이 큰 체구에 나이가 이십 대 중반이고, 미국 유학으로 다져진 헝그리 정신의 소유자다. 요리 저리 궁리 끝에, 점심에는 푹 익은 신김치로 메뉴를 변경한다. 신김치의 야릇한 맛에 제임스는 한입 먹고, 더 이상 젓갈질이 없다. 희대의 신김치 작전 성공이다. 


한국에서 배추는 한아름 크기이지만, 태국이나 동남아에서 쉽게 구하는 배추는 포기가 작고 왜소하다. 2~3시간 짧은 소금절이기로 설 미친 배추로 겉절이를 만든다. 배추줄기가 부러지며 씹힐 때, 승자의 야릇한 쾌감이 있다. 깍두기도 일단 커야 한다.  겉과 속 투톤의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소금과 설탕으로 기본 간을 맞추고 양념은 살짝 입힌다. 무가 갖고 있는 사이다 맛을 지키고 싶은 미식가의 아이디어다. 혀끝으로 매콤한 맛을 보고, 빠르게 무 속살을 씹는다. 무가 주는 청량감과 서늘한 맛에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이 간다.


김치 나 깍두기 양념을 만드는 재료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고춧가루다. 다른 재료, 액젓이나 매실액등 은 한인마트에서 구입하지만 고춧가루만큼은 한국에서 가져온다. 고춧가루의 맛이 김치맛을 좌우하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믿음 때문이다. 또한 출장지 한인 마트의 고춧가루는 대부분 원산지가 중국인 것도 이유이다. 내 요리에서 후각의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마늘이나 고추를 기름에 볶을 때는 만들어지는 향, 고수의 향, 발사믹 식초의 향, 레몬향, 설탕에 열을 가하면 탄생하는 달콤한 향을 좋아한다. 


혼자 지내면 춥고 배고프다. 식탐도 많아진다. 간식이 당기면 국수다. 특히 난 비빔국수를 좋아한다. 초고추장 오이 무침을 만들고, 일주일 정도면 만들어지는 새콤한 오이 국물로 만든 비빔국수는 죽인다. 물론 고명으로 땅콩가루를 얹는다. 야식은 빵이다. 샌드위치도 좋지만 소시지처럼 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양배추를 넣은 담백한 빵 맛이 좋다. 빵에는 토마토 주스가 더해진다. 이것저것 배운 방식으로 토마토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만든 주스는 남자에게 좋다고 하니 부지런히 만들어 먹는다. 


photo by pixabay


우리나라 사망원인 중 1위는 단연 암이다. 이 암중에서도 음식과 관련된 위암도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우리 한국인식생활과 밀접한 염장식품, 고염식품 그리고 불에 태운 음식이다. 수술 후 내가 겪는 트라우마는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5년 뒤 완치 판정을 받고, 위암 절제수술 집도의인 권교수에게 물었다. 가려야 할 음식과 식사에 대한 질문이었다. 당연히 젓갈이나 장류, 탄 음식을 금하라는 답변이라 생각했다. 음식에 대한 권교수 의견은 의외의 답변이었다.  "좋아하시는 것 마음껏 드시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권교수의 밝은 미소가,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미식가의 길로 들어선 모티브가 되었다.  큼지막한 식칼을 안정적 포즈로 잡고, 시간을 재고, 온도를 재고, 무게를 달아 한껏 폼을 잡는다. 재료의 특성을 고려한 시간과의 밀당, 다지고 눌러 향기의 마술도 펼칠 것이다. 볼이 깊고 큰 접시들도 준비하고, 꽃잎, 나뭇잎, 껍질, 한껏 맛있는 음식을 북돋을 수 있는 소재를 동원하여 플레이팅도 한다. 가족을 초대하고 , 친구도 초대하고 그리고 신김치로 입맛을 잃은 제임스도 초대해야겠다. 기쁨으로 만들어진 요리는 주름진 내 삶에, 반질반질한 윤기를 선물할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Time to take-off




참고문헌: 

고독한 미식가 -구스미 마사유키-

클리닉저널 2020.04.01자 기사


이전 07화 긍정적 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