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도 전문가의 은퇴 이야기
"우정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가치 중 하나이며, 순수하고 이익을 따지지 않는 는 무조건적인 것이어야 한다" - 우정과 노년에 대하여 by 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 -
지난 연말이다. 집 근처 기타 학원에는 나와 비슷한 시점에 정년을 마치고, 통기타를 배우는 분이 계신다. 우리는 MBTI가 비슷한지, 쉽게 호형 호제하며 시간을 보낸다. 다녔던 회사도 같은 그룹사이고, 대화의 공통점이 많아 쉽게 학원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루 반나절을 통기타와 노래를 연습하는 연유를 여쭈어 보았더니, 대학 친구 송년회 모임에서 부인과 듀엣으로 기타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권하고, 왁자지껄 한바탕 학창 시절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송년모임일 것이다. 거기에 누군가 기타를 들고 분위기를 띄운다면 목이 터지라 합창을 할 것이다. 참 부러웠다. 어라 ~ 그다음 주는 고등학교 친구 송년회 모임이라고 술걱정을 하는 것이다. 또 그다음 주는 미처 챙기지 못한 친구 모임을 주선하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은퇴 후 돌아보니 나는 친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은 20대 후반 나이의 만학도라 서클활동이나 미팅은 기웃거릴 수도 없고, 물관리 차원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처지였다. 정상적인 신입생과는 8살 나이 차이의 큰 형님인 것이다. 서울로 이사한 후로는 초. 중고 그리고 고향 친구도 자연스럽게 먼 이웃으로 밀려났다. 300명이나 되던 입사 동기들도 IMF 시절 구조조정으로 대부분 회사를 떠나고 친분을 갖고 교류하는 친구가 없다.
퇴사를 결정하고 정리를 해야 하는 일들은 많지 않았다. 불필요한 문서 파일을 폐기하고, 노트북을 정리하는 일이 전부다. 출장지에 따라 휴대가 편하도록 국가별, 업체별 Index로 꼼꼼히 정리된 명함첩에 눈길이 멈춘다. 딱히 원하는 후배도 없다. 버릴까? 5초의 망설임 끝에 분홍색, 회색, 청색, 빨강등 색깔로도 국가를 구분할 수 있는 20여 권의 인연은 살아남는다. 대략 1000매 정도인 명함의 주인들의 국가도 다양하다. 중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스리랑카, 베트남, 방글라데시, 중동, 아프리카 유럽...... 50개국은 되나 보다. 그중에는 비즈니스와는 별도로, 각별한 교류를 하고 오래 기억되는 고객이자 친구도 있다.
중국대련에 김사장이다. 그는 조선족이다. 중국 개혁의 격변기인 80년대 비공식 자동차 수입으로 큰돈을 벌어, 전자 제품 임가공 생산공장을 하는 친구다. 그와의 인연은 중국 요녕성 대련시 교통관제 시스템 계약 관련으로 1994년 알게 되었다. 30대 초반에 큰 부를 축적한 작은 키에 머리가 비상한 친구다. 그의 사업 수완으로 우리는 중국 대련시 지능형 교통관제시스템을 계약하고 납품하였다. 또 그의 소개로 산동성, 내몽고, 길림성등 많은 도시에 우리 제품을 영업활동을 하게 된다.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도 아닌 조선족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자랑스러워하고 한국제품이라면 기꺼이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던 친구다. 근래에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그는 요녕성 대련 공장을 정리하고 SHENZEN에서 각종 전자제품의 전원공급장치를 납품하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자녀 교육에 진심인 친구가 있다. 방글라데시 철도청의 이슬람이다. 그도 방글라데시 철도부 차관직을 마지막으로 얼마 전 정년퇴직을 했다. 태국 프로젝트 법인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그가 가족과 함께 태국에 놀러 오고, 우리 가족과도 사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방글라데시라도 방문하면, 그는 자기 집에 초대하곤 했던 친구다. 그에게는 지금은 30대 초반의 아들이 있다. 아들이 중학교 나이쯤 그는 철도청을 휴직하고 캐나다로 떠난다. 자녀 교육을 위해 10년을 휴직을 하고 철도청에 복귀한 친구다. 산도 욺직이는 아버지의 사랑은, 최빈국 방글라데시 소년을 미국에서 성공한 IT 엔지니어로 키워낸다. 페이스북을 통해 전해오는 이슬람의 자랑스러운 아들은 미국에서 결혼도 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가 보다.
최근에 알게 된 태국 친구의 사연도 있다. 태국 최대 건설사인 이탈리언타이 건설사의 철도사업 책임자다. 그와는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를 만나면 유쾌하고 즐거웠다. 또 골프실력이 나와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하여, 업무 외에도 자주 만나는 사이다. 하루는 그는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4년 태국 푸껫지방에는 큰 쓰나미가 찾아보고 큰 피해가 있었다. 뉴스로만 듣던, 그가 푸껫 쓰나미의 피해자 가족이다. 당시 그는 신혼이었고 아내와 한 살짜리 딸아이 그리고 장모 되시는 분을 모시고 그곳에 있었다. 아름다운 섬 푸껫에서 가족 모두 잃어버리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유쾌한 그의 표정과 언어가,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물론 나에게도 부드럽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고등학교 친구 K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도 고마운 벗이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들에게도 살가운 친구였다. 내가 중동 건설 현장으로 파견되고, 그는 대학에 진학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가난한 우리 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어머님, 누님이라 부르며 점심을 축내는 친구였다. 친구 K는 혹독한 IMF 터널을 지나, 막 강남에서 성공을 목전에 둔 입시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야간반 시작 전, 잠깐 사우나에 나선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 친구다. 내가 없는 사이 선친의 장례식에 상주가 되어, 울어주던 고마운 친구다. 아마도 그 친구가 살아있었다면, 올 연말엔 그의 가족과 함께 송년회를 했을 것이다.
BC 100년 고대의 키케로가 말한 "무조건적인 우정"이 지금도 유효할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수많은 SNS 친구 맺기가 보편화된 지금은 친구를 만드는 것도, 그리고 인맥을 만드는 것도 가상세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스마트폰의 보편화와 달라진 우리의 삶의 방식을 감안, 공통의 관심이나 활동을 지향하는 사람들과 가상 세계에서 소통하고, 친구가 되는 특별함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브런치 스토리 시작 반년이다. 감사하게도 벌써 구독자님이 80명이다. 관심작가친구는 200명이 넘는다. 나의 절친이 200명인 셈이다. 송년회도 같이 할 수 없고, 여행도 함께할 수 없는 가상 세계의 친구이다. 물론,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것만큼 친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작가들의 글과 개인 소개를 읽다 보면, 존경의 마음으로 off line 친구로 발전하고 싶은 욕심도 든다. 좀 더 부지런히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배우고 또 친구가 되어야겠다.
오늘 새벽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에서 한국을 구한 캡틴 손에게도 친구가 되어줄 것을 요청해야겠다. 클릭 "수락" 아 ~ 이제 손흥민도 나의 절친입니다. Time to take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