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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문선 Jan 28. 2024

꿀잠

어느 철도 전문가의 은퇴 이야기

"꿀잠" 하면 사우디 건설 현장 근무 시, 즐겼던 낮잠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 최대한 빨리 그리고 깊이 낮잠에 빠져 드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공사 시작 시간이 아침 6시 인지라,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야 했기 때문이다. 금쪽같은 꿀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일 빠르게 달리는 통근 버스를 타야 한다. 현장에서 캠프까지 5분 거리지만, 빠른 버스와 늦은 버스의 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차 하는 순간, 식당입구가 가물가물 보이는 끝자락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한다. 여기저기 "배식 빨리 하이소", "주방장 머한당가", "더워 죽거 슈" 불평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캠프와 현장을 오가는 10여 대의 버스가 출퇴근과 점심시간에 맞추어 버스가 운행한다. 제일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찾는 출근 시간과 달리, 점심시간은 소문난 총알 버스를 타기 위한 전쟁이다. 12인치 파이프를 1미터 정도 잘라 만든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버스를 향해 돌진한다. 종잡이가 쇠망치를 찾는 모습을 보고, 슬금슬금 버스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선수도 있다. 사우디 현지 운전기사도 고객들의 바람을 알고 죽기 살기로 달린다. 매일 순위를 매기는 양, 그들도 점심시간만큼은 고객 확보를 위한 추월과 추월을 반복하며 죽기 살기로 달린다. 오늘도 몸집이 크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알리가 일등이다. 일등차 손님들 모두 외친다. 브라보~ 


퇴직 후 가장 큰 변화는 수면이다.

퇴직 전, 수면은 다음날 출근을 중심으로 결정이 된다. 숙면이 방해되는 일체의 행위는 금한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10시 이전에 반듯이 잠자리에 든다. 이것저것 수면에 이르는 최면을 걸어보기도 한다. 중요한 고객 상담이나 경영진 보고가 있어 숙면이 필요로 할 때면, 미신에 가까울 정도의 정성을 들인다. 


image by pixabay

퇴직 후, 와우~ 해방이다. 늦잠이 있는 삶, 얼마나 꿈꾸어온 일상인가. 심야의 커피도 영화의 한정면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마신다. 밤새워 놀다가, 무거운 눈꺼풀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야 잠을 잔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시간까지 하염없이 잠을 잔다. 아내는 조용히 아침상만 차려놓고 운동을 간다. 


잠이 오지 않아도 무엇이 꺽정인가침대에 누워,

쓰다 만 글을 되짚어 본다. 

클래식 기타 악보를 암보 한다.

그래도 안되면 다시 일어난다.

클래식 기타 복습을 하거나 예습을 한다. 

저장한 글 다시 끄집어낸다.

네플이나 쿠플 영화를 본다.

커피도 마신다. 간식도 추가한다.


잠 못 이루는 새벽 시간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수년을 연습해도 암기가 쉽지 않던 악보가 한 달 만에 기억되고, 짧은 손가락 탓이라 포기한, 기타 지판 운지가 짚어진다. 횡설 수설 종잡을 수없는 내 글들이, 생명력을 얻어 술술 풀리기도 한다. 이것이 요즘 핫한 인공지능 인가?  "아침형 인간"을 앞서가는, "올빼미형 인간"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음악을 공부하고, 마음 가는 대로 내 삶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 인생에 30%를 잠에 소비할 수는 없지.


몇 해전부터, 야간 빈뇨로 화장실을 찾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 빈뇨로 일어나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은퇴가 자유로운 수면 시간을 주었지만, 노화로 접어든 신체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노화에 따른, 야간 빈뇨는 크게 두 가지 이유라 한다. 방광의 신축성이 떨어져 오줌을 모을 수가 없거나, 수면 중 오줌생산을 최소화하는 생체리듬이 작동 못한다는 것이다. 퇴사 전부터 숙면을 할 수 없는 노화가 나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최강의 수면. 니시카와 유카코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승리한다.

수면연구가 앨런 레흐샤펜은 수면의 관리 기능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수면 중 성장기의 어린이에게는 성장호르몬을 분비시켜 쑥쑥 자라게 하고, 면역력을 키워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막고, 과체중이나 인지 장애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내 나이에 성장은 관심 없고 눈에 번쩍 뜨이는 내용은, 잠은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되는 뇌의 폐기물을 청소한다고도 한다. 하루만 잠을 못 자면 업무에 집중할 수 없고, 하루종일 몽롱한 것도 그 원인인가 보다. 

출처: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닌다. 안토니오 자드라/로버트 스틱골 지음


대한 수면학회도 "수면 시간이 짧을수록 몸속 면역력을 관장하는 [T-세포]의 기능이 약해져 면역력 약화, 두통, 불안감, 우울 증 등이 생기 기 도 한다"는 발표를 한 바도 있다. 

출처: 헬스조선 2020년 6월호 이금숙기자

[T-세포] 세포성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구의 일종 -위키백과-


또한 일본 학회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수면 호르몬이라 불리는 [멜라토닌] 분비는 성장기에 최대이고, 40대 이후 급격히 감소한다고 한다. 10대 초반엔 Peak이고 60대 중반인 내 나이는 바닥이다. 졸음 사자 [멜라토닌]을 늘리는 방법으로 [세로토닌] 호르몬을 늘리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낮시간에 열심히 웃고, 행복하면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밤시간에는 멜라토닌으로 바뀌어 숙면을 하게 한다"는 희망적인 내용도 포함이다.

출처:최강의 수면. 니시카와 유카코

[멜라토닌] 활동일 주기를 조절하는 호르몬 -위키백과-

[세로토닌] 행복감을 포함한 광범위한 감정을 느끼는 데에 기여하는 신경전달 물질 -위키백과-


image by pixabay


내가 한창 잠을 많이 자야 할 나이에는 "잠만 잔다"는 루저 인식되고, [사당오락]은 성공한 사람들의 좋은 습관으로 칭송되던 시절이다. 중동 건설 근로자 시절 독학으로 대학 입시 공부 때는, 하루 4시간 잠자는 것을 원칙으로 한 바 있다.  잠을 쫓는다는 명분으로 소금물을 눈에 넣는 바보 같은 self 처방으로 버틴 것이다.

[사당오락] 하루 4시간만 자고 공부하면 입시에 합격하고 5시간 이상 자면 실패함을 이르는 말


잠으로 소비하는 20년이, 사실은 건강의 시작이고, 건강을 지킨다는 믿음으로 이제는 질 좋은 수면을 찾는 세상이다. 안전화를 벗는 시간도 아까워, 침상에 쓰러져 반나절의 피로를 풀던 꿀잠이 그립다.  


이제는 신축성 있는 방광도 없고, 잠을 부르는 [멜라토닌]도 없다. 잠 못 이루는 밤에는 글을 쓰고, 책을 보고, 기타를 치는 내 삶이 최선인 것이다. 글을 쓰는 행복과 음악이 주는 웃음으로, 혹시라도 [세로토닌] 천사님이 나타나, [멜라토닌]을 선물한다면 내 꿀잠은 뇌의 폐기물도 청소하고, 면역력도 키우고 나를 건강한 은퇴자로 지켜줄 것이다.  Time to take off 



참고문헌

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닌다. 안토니오 자드라/로버트 스틱골 지음

최강의 수면. 니시카와 유카코

헬스조선 2020년 6월호 이금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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