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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8. 2022

쓰레기를 사랑하는 남자 1

버리고 싶지 않은 너, 너를 버리고 싶은 나

그는 다정하다. 연애 때부터 전혀 변함이 없다고 느낄 만큼 다정다감하게 날 대해준다.

그는 술도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의 취미는 너무나 건전하게도 운동이고 결혼 후 지금껏 몸무게가 2,3킬로 안에서 왔다 갔다 할 만큼 자기 관리도 확실하다.

그는 감정 기복도 크지 않고 늘 한결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나에게 안정적인 바탕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단, 그의 한결같음은 나를 향한 사랑과 자기 관리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그는 한결같이 물건들을 모은다.


결혼 전부터 20년이 다 되어가는 결혼생활 동안 자신의 물건을 계속해서 모은다. 나에게는 쓰레기일 뿐인 것들에 대한 그의 애정은 진심 한결같다.


쓰레기라고? 남편의 물건을 쓰레기라고 하는 건 좀 심한가. 그럼 한번 그의 사랑해 마지않는 그것들에 대해 말해보자.


결혼하고 처음  그의 물건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그의 물건들은 참으로 기이했다.

도대체 어디다 쓰는 물건이고? 싶을 만큼 골동품으로 가득 했다.

핸드폰이 생기기 전에 쓰던 삐삐 몇 개

그가 지금껏 썼던 모든 핸드폰 대여섯 개

라식 수술한 그에게 더는 필요 없을 예전에 쓰던 안경 몇 개

디지털카메라 몇 개, 무엇을 위한 건지 모를 배터리, 충전기, 전선, 크기와 종류만 열개가 넘는 건전지, 크기별 랜턴 모음, usb 충전잭 족히 스무 개, 멀티선 열댓 개, 작은 티브이만 한 옛날 내비게이션 대여섯 개, 컴퓨터 하드 세네 개.


더해볼까.

고등학교 때부터 입었던 디스코 청바지, 목이 다 늘어나서 입을 수 없는 티셔츠, 중학생 때 입었던 게 분명한 각종 마크가 달린 카고 바지, 카고 남방, 셀 수도 없이 많은 (한 번도 신는 걸 본적 없는)신발, 양말, 속옷들.

고등학교 때 시아버지를 졸라 사달라고 했다던(지금은 박물관에도 없을, 무거워서 들 수도 없는)  프로스펙스 텐트까지 포함한 그의 짐들은 나와 같이 살게 된 이후로 나에게 적지 않은 물리적 공간을 양보하게 했으며 나로 하여금 굉장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한 번은 도저히 밖에 입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티셔츠를 발견하고는

"이걸 왜 아직도 안 버리고 있는 거야?"

"다 입을 데가 있을 거야"

"이걸 입겠다고? 진짜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해? 도대체 당신은 왜 그러는 거야! 제발 안 입는 건 버리라고!"

라고 소리쳤고 그는 그 자리에서 그 티셔츠를 입었다.

"봐. 이렇게 입을 수 있잖아."

그러고선 그는 그날 그 티셔츠를 입고 잠을 잤다.


절대 안 버린다.


미쳐버리겠다.

미치겠는 건,


그는 꾸준히, 지금도, 계속 쓰레기들을 어디선가 발굴해서 집에 쟁인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은 아파트 분리수거하는 날은 살림 나는 날이다. 남들이 버릴 이유가 다분한 것들을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거기에 당근 마켓에서 거래한 온갖 운동기구들, 바퀴 달린 모든 레저용 기구들, 아이들 사이즈별로 스케이트보드, 인라인스케이트, 외발자전거, 킥보드들로 창고가 터질 지경이다.


난 더 이상은 싫다. 뭔 수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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