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하던 일은 끊기고 그 일로 남은 건 고지혈증과, 당뇨 초기 판정, 무너져버린 생체리듬으로 급격히 쪄버린 몸뚱이였다.
근 15년 이상을 프리랜서로 업계에서 일을 해왔지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나가는 나날이었다. 환기가 되지 않는 녹진한 공기처럼 집안에서 무겁게 부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입던 옷은 하나도 맞지를 않고, 딱히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이었다.
올해 칠순이 된 아빠는 평생을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후에도 몇 가지 직업을 거쳤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찾아주는 곳이 없게 되어 집에서 쉬게 되셨다. 나의 지독한 집순이 유전자는 아빠에게서 왔다. 내가 이십 대였을 무렵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 마비가 왔다가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아빠는 지금도 한주먹씩 매일 약을 드신다.
그나마 대구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가면 아빠와 종종 수성못을 돌았다. 나이가 들고 이렇게 오랜 시간 아빠와 단둘 이만 있어본 적이 있었던가. 어색함을 떨쳐내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만보가 채워져 있고 아빠와의 동지애도 싹트는 기분이었다.
부모님 댁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 움직일 의지가 있었지만 서울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답답해서 따릉이(서울시 공유자전거)를 빌려 천을 따라 달려보기는 했다.
언제부턴가 길을 가다보면 '달리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에 러닝 인구가 이렇게나 많았나 신기해하면서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작년에 근 일 년간의 프로젝트로 얻은 온갖 질병과 건강 악화 외에도, 일하는 도중 사고로 발목 인대를 접질리는 바람에 몇 개월간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다. 발목에 무리가 갈까 봐 따위의 이유를 찾지 않더라도 달리기를 하지 않을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코로나 때도 혼자서 비대면 달리기를 하며 메달을 따오던 동생이 진즉에 '런데이'라는 어플을 알려줬었다. 휴대폰에 깔아두고 지우는 것도 귀찮아 몇년째 그대로 방치만 해두었다.
그러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람과의 교류가 극히 드문 탓에 어플에서 나오는 훈련 음성은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다. 하이톤의 목소리로 "잘했어요!"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는 낯간지러운 음성에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운동이 끝난 후 하나씩 찍히는 스탬프는 나도 뭔가 가치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표식처럼 느껴져 뿌듯함과성취감이 차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8주째 매일 나가서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1분 뛰고 1분 쉬며 이게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분간이 안 갔는데, 어느덧 쉬지 않고 5분 달리기, 10분 달리기, 15분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망설였을까.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집 밖으로 나가 운동화 끈 고쳐 매고 그냥 한번 뛰어보면 됐을 텐데, 그 한 발자국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8주 차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
드디어 처음으로 한 번도 안쉬고 30분 달리기를 성공했다. 아침에 운동 나가기 전 괜히 뭉그적거리기도 하고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만큼 여유를 부리다가 집 밖으로 나섰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 호흡 소리를 음악 삼아, 이날만은 음악 없이 최대한 달리기에만 집중해서 뛰는 시간을 가졌다. 내 보폭, 자세, 흐르는 땀, 숨소리, 이런 것들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막상 해보니 별 거 아니었다. 왜 그렇게 겁먹고 망설였을까. 8주 프로그램을 완주한 나를 칭찬하며 다음 프로그램으로 넘어가서 계속 달려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