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순이는 해를 좋아한다. 겨울은 물론이거니와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도. 밖은 쨍하지만실내는 썰렁할 때가 있어서 그런가. 요즘 같은 5월 말은 봄인지 여름인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이긴 하다. 겨울 동안 깊게 들어오던 거실의 해는 이제 베란다 처마 밑을 붙드는 정도인데 서향을 조금 낀 집은 저녁으로 갈수록 지는 해가 비스듬히 길게 든다.
내 할 일에 열중하다 보면 이 녀석이 뭘 하는지 관심이 멀어지기 마련,문득 보니 저러고 있다.
마지막 남은 오늘 하루 햇빛 조각에 얹혀 있는 태순이
병가 후에 다시 일하려니 계절이 바뀌어 출근 때 입을 얇은 옷을 내어 놓아야 하고,부서 업무 외에 내 일로는 덜 바쁘게 교재 연구도 미리 좀 해 두고.내가 놀아 주지 않으니 해를 따라, 따라 자리를 바꾸다가 저곳까지 갔을 터이다. 소파 등받이 뒤쪽은 한 뼘 정도 깊이로 빈 공간이 있어 태순이가 안정감 있게 폭다그리 들어간다. 제 좋은 것 따라서 몸을 맡긴 채, 느슨히, 경상도 말로 '낑겨' 있는 저 포즈가 기가 차기도 절묘하기도 부럽기도 하다.
태순이는 어제도 내일도 없고 지금 제가 좋아하는 해를 온전히 누리는 중.나도 내 좋은 곳에 육신을 두고느슨하게 만끽하고 싶다.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 말고 가버린 과거를 아쉬워 말고 뭘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하는 만큼에 떳떳하며.
쿠션을 무릎에 얹고 내가 책을 보고 있으니,이 위로 '척' 하고 올라와 저 뒤태로 '끙' 작은 콧김을 뿜고는 바로 잔다. 한참 지나면 다리가 저리지만 최대한 견딘다. 요 조그마한 존재의 따스한 무게는 늘 새삼스러워서 그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이 마땅한 도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막상 가면 또 재밌기도 할 직장 생활이지만 낼모레 다시 출근을 앞두고 있는 마음은 고구마인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곁에서 살 냄새 털 냄새 콤콤히 풍기며 단잠 자는 요 녀석. 그래, 어제도 내일도 아니지. 5월 말 어느 저녁은 여전히 나 아직 5월이라는 듯 늦은 시간이 무색하게 말그스름하다. 고구마 백 개 마음도털어말그레.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