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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별 Oct 11. 2022

부모의 보호자가 된 또래들에게 쓰는 편지

상황이 바뀌었지만, 곁에 계심에 감사합니다.

1차인 의원 급부터 3차 대학병원에 가면, 내 또래들이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내 경우 '보호자'라는 용어가 제일 낯설었던 시절은 8년 전, 어머니의 큰 수술 때였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 하기 전, 주치의로부터 수술에 관한 설명을 듣고 보호자 란에 서명하는데, 내 인생 처음 해보는 '어머니'의 보호자 역할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술은 잘 됐으나 합병증이 생겨 지금까지 대학병원에서 신경과와 내분비내과를 일 년에 서너 차례 방문하게 되었다. 


대학병원은 요일을 떠나 언제나 사람이 북적인다. 개인적으로 병원에 갈 때마다 아주 가끔 보이는  건강한 노 부부가 서로의 병원 방문에 동행하는 모습이 가장 부럽다.


물론, 대학병원 수납부터 처방전 뽑기, 각종 검사를 위한 예약 및 절차, 심지어 해당 검사실을 찾아가는 것도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나조차 어렵고 헷갈린다. 하물며 노인은 어떨까. 곳곳에 도우미들이 있긴 하지만, 동행한 자녀나 배우자만큼 의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병원 예약일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초조해하신다. 말씀으로는 혼자 갈 수 있다고 하지만 혹여 내가 쫓아가지 못할까 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뒤, 어머니의 정기 검진 차 대학병원을 찾았다. 엄청 많았던 '아픈 사람' 인파 속에 두 과를 오가며 시간 조율하여 오전에 진료를 모두 마치고, 병원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고, 처방약을 지으러 약국으로 향했다. 대학병원만 다녀오면 왜 이렇게 피곤한지 알겠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고대구로병원은 사방 천지가 약국이다. 그중에서 우리가 다니는 단골 약국은 병원 정문과 직선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있는데, 그 당시 병원 증축 공사를 이유로 내부에 있던 택시 승강장을 없앤 터라 정문 근처 횡단보도 앞이 자연스럽게 택시 승강장이 되었다. 


약국을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 불로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택시가 왔다. 이때 내 또래 혹은 한두 살 위아래쯤 돼 보이는 남자가 아버지를 모시고 택시를 타러 왔다. 짐작컨데 그의 아버지는 뇌 관련 질환을 앓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행동이 어눌하고 느렸으며, 당연히 기력도 없어 보였고 얼굴 표정은 생기 없이 매우 창백했다. 아무튼, 아들은 뒷좌석 문을 열고 아버지 스스로 타시라고 명령하는데, 처음에는 아들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있어서 '싸가지없는 놈'처럼 보였다.     


"자리에 앉으셔! 엉덩이 돌려서 깊숙이 앉으시고 다리도 안으로 넣으셔야지!" 


거동도 힘든 노인을 젊은 아들이 힘으로 들면 금세 태울 수 있을 텐데라고 비난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남은 잔존 능력을 살려주기 위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아들이 독려한 게 아닐까 하는.


노인은 3일만 누워있어도 근육 소실량이 엄청나다. 우리 동네에도 한걸음 떼는데 몇 분이 걸리는 할아버지도 하루에 같은 시간을 꾸준하게 걷기 연습을 한다. 더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라고 비난하지 말자. 정상적인 부모라면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가족 그리고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한다. 


요즘 틀면 나오는 보험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지 않은가. "병시중 들라고 일하고 있는 가족을 부를 수도 없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병치레가 많았던 우리 오빠나 나를 업고 늦은 밤 응급실로 뛰어갔던 사람은 늘 어머니였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6시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아버지는 항상 회사에서 늦게 퇴근했다. 

부모라서 당연했을까? 그런 어머니의 희생으로 건강하게 자란 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병원에 가면, 나처럼 부모를 모시고 보호자가 된 이들과 가끔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그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된 당신을 응원한다. 건강하게 오래 곁에 계실 수 있다면 이 정도 시간 할애쯤이야. 우리의 자녀가 우리 보호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자녀에게 의지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싱글인 나는 나중에 나이 들면 어쩌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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