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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Feb 07. 2023

잡념의 소각로

난로

참나무 장작
 
7080 세대들은 누구나 국민학교 시절의 갈탄 난로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연탄난로의 열기와 가스 냄새가 나를 반겼다. 지금도 가끔씩 식당에서 마주치는 연탄난로는 정겹다. 그 주변의 빈 테이블을 찾아 앉는다. 용인 주택 거실에는 장작 난로가 있다. 곤지암에서 살 때는 난로가 없어 다른 집의 난로를 부러워하곤 했다. 드디어 어렸을 적 불장난하고 놀았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다. 마을 이장님에게 장작은 어디서 사는지 물어보았더니 업체 전화번호를 알려 주셨다. 주문을 하려 전화를 했더니 참나무 1톤에 25만 원이라고 했다. 소나무는 화력은 좋지만 송진이 그을음을 유발하여 연통에 쌓이기 때문에 집안 난로 연료로는 적당치 않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반면에 참나무는 그을음이 없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력도 좋다고 한다. 배달된 장작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쌓았다. 생산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말려야 된다고 배달원이 말해 주었다. 배달된 장작으로 시험적으로 난로에 불을 지펴 보았다.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장작이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연기만 잔뜩 나고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시골 출신인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무가 잘 마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작을 좀 더 잘게 패서 빠른 시간에 말려야 했다.


장작 패기
 
용인 시장으로 도끼를 사러 나갔다. 도끼질은 시골에 살면서 틈틈이 해본 경험이 있다. 고3 겨울 방학 동안에는 뒷산에서 베어 온 나무들을 친구와 함께 장작을 패서 헛간 한편을 다 채워 보기도 했다. 내가 가진 힘에 부합하는 무게를 가진 도끼를 선택하고 자루를 별도로 구매해서 도끼에 부착했다. 용도와 장작의 상태를 고려하여 장작을 다시 팼다. 불쏘시개 용으로 쓰이는 장작은 얇게 패야 한다. 옹이가 단단한 장작은 도끼질이 잘 안 되기 때문에 피하고, 곧고 적당한 굵기의 장작을 골라서 얇게 쪼갰다. 너무 굵게 쪼개진 장작은 다시 반으로 토막을 냈다. 일부는 밖에서 말리고 일부는 난로 옆에 두고 말렸다.


불 붙이기 요령
 
난로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3단 쌓기 요령이 필요하다. 나무껍질이나 휴지 등을 난로 가운데 놓고 그 위에 불쏘시개 용으로 잘기 쪼개서 말린 장작을 올린다. 최종적으로 굵은 장작을 올린다. 나무껍질, 불쏘시개 용 장작, 굵은 장작 순으로 불이 붙게 하면 쉽게 불을 피울 수 있다. 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난로에 불부터 땐다. 장작 두 개 정도를 태우면 집안 온도를 2도 내지 3도 정도 올릴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보일러를 가동해서 바닥을 차갑지 않을 정도로 데운다. 이런 순서로 하면 가스비를 절약할 수 있다. 


피난처
 
밖에는 흰 눈이 정원과 나무를 덮고 있다. 반사판 역할을 하며 가뜩이나 활성도가 낮은 공기에 햇빛이 머무르지 못하게 멀리 쫓아 버린다. 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온 빛은 난로에서 나오는 빛을 씨줄 삼고 자신이 날줄이 되어 공간에 따뜻함의 천을 짠다. 자연의 위협에서 차단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폭우가 점령한 차장 밖을 바라볼 때의 안도감과 같은 느낌이다. 한 겨울 추위 속에 갇힌 방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내가 얼마나 안락한 공간에 있는지를 칼바람만큼 날카로운 언어로 일깨워 준다. 움직임이 절제된 공기는 차갑다. 난로는 움츠러든 공기에 열기를 더해 준다. 난로에서 튀어나온 복사열은 공기 속에 흡수되고 공기는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온도는 물질처럼 존재하는 객체가 아니라 공기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척도다.


잡념을 태우다
 
난로 속 장작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난로 옆에 진을 치고 앉는다. 난로 속 타오르는 불꽃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 장작과 함께 잡념이 타 들어간다. 연기와 함께 연통 속으로 사라진다. 머릿속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타고난 자리에 무념무상만 남았다. 성장기에는 불을 보면 생각이 많아졌다. 불은 왜 뜨거운지, 불은 왜 붉은색인지, 왜 단단한 나무가 타고나면 재만 남는지? 과학 시간에 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이해가 어려웠다. 서로 다른 빛의 파장을 뇌가 서로 다른 색으로 인식한다는 문구는 생경했다. 지금도 난로 속 불을 보고 있으면 학창 시절 자연현상의 이해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성적인 생각은 잠시뿐, 다시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서 몽롱한 세계로 빠져든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이 수렵 생활을 하던 시절, 호모사피엔스들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동굴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모여 앉았다. 사냥한 고기를 불에 굽고 밤의 공포를 몰아내고, 추위를 물리쳤다. 불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불을 잘 다스리고 잘 이용한 자들이 살아 남고 그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사면에서 동장군의 으르렁거리는 위협이 느껴지면 집안의 난로 가장자리에 진을 치고 방어에 나선다. 난로는 사람을 강제로 끌어당기는 블랙홀이 아니라 따스함으로 유혹하는 로렐라이의 사이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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