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자녀와 희생양의 이중주

도구가 된 자녀의 가족 내 이중적 역할

by Mia 이미아

한 가정 안에 있는 형제자매가 부모에게 극과 극의 대우를 받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종종 특정 자녀를 '황금자녀(Golden Child)'로 띄우고, 다른 자녀는 '희생양(Scapegoat)'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황금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워서 칭찬과 애정을 독차지한다. 반면, 희생양은 가족 내 갈등과 문제를 떠안는 감정 쓰레기통, 가정의 희생 제물, 투사의 대상이 된다.


"왜 내 동생만 예쁨을 받는 걸까?"


이런 고민은 많은 가정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부모가 늘 형의 잘못을 나에게 뒤집어씌운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례들은 가족 내에서 특정 자녀에게 불공평한 역할이 주어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부모가 갈등을 피하고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희생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가족 내 분란의 화살을 특정 아이에게 몰아세움으로써, 부모와 나머지 구성원은 '정상'인 척하며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자녀를 통제한다. 첫째, 죄책감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부모의 희생과 투자를 강조하며 심리적 부담을 준다. 둘째, 조건부 사랑을 통한 통제로, 자녀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때만 애정을 보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냉담해지는 방식이다. 이는 독재적 양육 유형과 유사하며, 자녀의 자율성과 자존감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결함을 감추기 위해 자녀에게 특정 역할을 강요한다. 특정 자녀를 희생양으로 삼아 다른 자녀와 차별하거나, 어떤 자녀는 자신의 완벽한 부모상을 완성하는 칭찬의 도구로 활용한다. 이러한 역할은 부모의 나르시시즘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며, 자녀들 간의 불균형과 긴장을 야기하고, 각자의 역할 속에서 자존감이 무너질 수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녀는 자신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왜곡된 믿음을 가지게 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에서 자란 나는 이 역할 분배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위에 말한 것처럼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들에게 서로 다른 기대를 부여하며, 주요 역할 유형은 '황금자녀(Golden Child)', '희생양(Scapegoat)', 그리고 '투명 자녀(Lost/Invisible Child)'가 있다. 이 역할 속에서 황금자녀는 부모의 자랑거리로 기능하며 칭찬과 애정을 받지만, 희생양은 모든 문제의 책임을 떠안고 지속적인 비교와 비난을 받는다. 그렇다면 가족 안에서 역할이 분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그 역할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했을까?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희생양(Scapegoat) 자녀를 선택하는 주요 기준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녀의 특성에 따른 선택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정서적으로 예민한 자녀

부모보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자녀

가족의 역기능을 인식하고 지적하는 자녀

강한 정의감과 공정성을 가진 자녀


부모의 심리적 요인

자신의 결점이나 불안을 상기시키는 자녀를 선택

부모의 권위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자녀를 표적

자신의 무능감이나 자격지심을 투사할 대상으로 선택


가족 내 역할

부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리 배우자 역할 부여

가족 전체의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지정

가족의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대상으로 활용




희생양으로 선택된 자녀는 일반적으로 가족 중 가장 건강하고 심리적 인식이 높은 구성원인 경우가 많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표적이 되는 주된 이유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희생양 자녀가 자신이 선택된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며, 오히려 더 큰 자책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에서 피해자가 선택된 원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말이다. 이는 가해가 종종 실제 잘못이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최종 선택의 책임은 오직 가해자에게 있다. 특히, 학대와 폭력은 가해자의 왜곡된 심리와 통제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피해자의 특성이나 행동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 피해자가 어떻게 해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는, 오로지 가해자만 계속해서 승리하는 게임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희생양 자녀 선택 역시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이며, 그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해로울 수 있다. 희생양 자녀는 부모의 학대를 내면화하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이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투사와 조종의 결과일 뿐이다. 실제로는 부모의 문제인 것을 뚜렷이 보지 못하고, 자녀가 계속해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은 회복과 치유에 걸림돌이 된다.



나는 3 자매 중 둘째였고 어릴 적 부모는 나에게 항상 형제들과 다른 기준을 들이댔다. 첫째와 막내는 작은 일에도 칭찬받았지만, 나는 같은 일을 해도 '이게 최선이냐' '그 정도는 당연히/누구나 하는 거지'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큰 성취도 인정받지 못했고,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무차별적인 비난을 떠안아야 했다. 부모의 기분이 나쁘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너는 애가 왜 이 모양이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대우는 내가 스스로를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결국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무가치하고 쓸모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가정은 희생양 자녀가 극심한 소외와 죄책감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가족 내 문제가 생기면 “너 때문에 또 이런 일이 생긴 거야”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설령 문제 원인이 다른 형제에게 있어도, 부모는 황금 자녀를 보호하고 희생양을 탓한다. 이런 부당한 대우가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을 혐오하거나, 반대로 극단적 반항을 택하기도 한다.


나의 원가정에서 언니는 사실은 문제아였던 현실과 다르게 단지 장녀라는 이유만으로 가족 안에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는 '황금자녀'로 자리 잡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막내는 귀여움과 애정의 대상이었으며, 떼를 쓰거나 어떤 실수를 해도 혼나지 않았다. 반면 나는 부모의 실망과 불만이 쏟아지는 대상이었고, 실제 원인과 상관없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부모는 무슨 일이든 항상 '네가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졌잖아'며 나를 비난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다른 자매들이 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용납되거나 칭찬받았다. 똑같은 말을 해도 다른 자매들은 즐거운 대화가 되는데, 나에겐 "너는 말을 싸가지 없게 해"라며 비난과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왜 나는 항상 잘못한 걸까? 나는 뭐가 잘못된 걸까?' 가족이라는 사회적 관념 속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은 때로는 무심함으로, 때로는 고의적인 공격으로 느껴져서 혼란스러웠다. 내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족 모두가 나를 비난할 때는 나는 내가 문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중주는 부모가 가족 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서로를 질투하거나 의심하도록 만들면, 연대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형제끼리 유대감이 생기기 어렵고,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도 사이가 껄끄러운 경우가 많다. "넌 항상 착하기만 해서 엄마 아빠 사랑받았잖아"와 "너는 문제아였지"라는 상호 비난의 뿌리가 깊게 박힌다.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까지 교활한 영향력을 미친다.




식사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는 형제들에게 고기반찬을 앞에 놔주거나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웃곤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먹는 것도 깨작깨작 보기 싫다"라며 냉소적인 태도로 말을 던졌다. 매번 식사 자리에서까지 반복되는 비난의 말들은 내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이었다. 부모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내가 부족하고 무가치하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나는 내가 가족 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를 숨기려는 태도로 굳어졌다. 불편한 마음에 내가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부모는 "성격이 저래서 어디 가서 사랑받을 수나 있겠니?"라며 더 큰 비난을 이어갔다. 식탁에서 내 자리는 항상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마치 가족 안에서 내 위치를 상징하듯이 모서리에 앉는 게 당연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집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모서리에 앉지 말고 안쪽에 앉으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게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며 그 모든 것들이 비합리적인 학대였고, 어린 나의 내면 깊숙이 상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먹는 게 예쁘다는 말을 듣는다. 사실 성인이 된 후로 남자친구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인데,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말이겠지 하고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었다. 요즘 들어 내 영혼의 반쪽 같은 친구가 '미아는 먹을 때 너무 예뻐. 이런 말 자주 듣지?'라고(2년째 얘기) 해서 알았다. 하루는 밥을 먹으며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남편에게, '내가 먹는 게 예뻐?'라고 물었더니 너무 저항 없이 배시시 웃으며 '응, 예뻐'라고 해서 놀랐다. 아니.. 그런 건 좀 진작에 말해주지.



나는 동생이 소풍 가는 날이 좋았다. 집김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모는 요리를 꽤 잘하는 사람이라서 김밥도 맛있게 잘 만들었다. 동생의 소풍날에는 새벽부터 식탁에 김밥이 산처럼 쌓였고, 나도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소풍날이 되면 부모는 "2천 원이면 되지?"라며 돈을 줬다. 김밥 한 줄과 우유 한 팩을 사 먹기에 딱 맞는 액수였다. 하지만 사 먹는 김밥은 너무 짜거나 달아서 맛이 없었다. 친구들이 집에서 싸 온 김밥을 나눠줄 때는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내 2천 원짜리 도시락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차별은 밖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내가 가족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부모는 항상 내 의견을 무시하며,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나서지 마"라고 말하곤 했다. 가족 안에서 내 감정이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 같았다. 심지어 내 명의를 도용할 때도 그랬다. (이 얘기는 후에 좀 더 자세히 풀어 보기로 하자.)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더 입을 다물게 되었고, 내 의견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믿게 되었다. 결국에는 나 자신의 존재도 불쾌하고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더 침묵 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왜 나일까? 왜 하필 내가 가족 내에서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할까?"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문들은 나를 끝없이 자책하게 만들었고, 결국 내가 문제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그들의 기준과 요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 하면서도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나도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아이일 뿐이었고, 나만 잘하면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이 심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끝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희생양으로서의 역할은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잊게 만들었고, 내면에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남겼다.



이런 삶은 내 관계와 자아에도 흔적을 남겼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나는 내 의견을 내는 데 주저했으며, 갈등을 피하기 위해 참고 물러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비난에 익숙해져 누군가가 칭찬을 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오히려 그 칭찬 뒤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게다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되었고, 나는 항상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기준은 유년 시절부터 부모가 강요했던 '완벽한 아이'라는 환상이었다. 부모는 항상 "넌 뭐든지 (내 기준에, 혹은 내 기분에) 완벽해야 해.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어"라는 신호를 되풀이했다. 문제는 그 완벽함은 구체적이지 않았고, 무엇을 해도 만족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실체 없는 완벽함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표였다.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내가 사근사근하지 않아서였고, 다른 자매들처럼 사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공부는 알아서 잘해야 했다. 내가 집안일을 도우면 엄마가 조금이라도 나를 예뻐해 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에서 밥을 짓는 방법을 알려주는 비디오를 보고 집에 와서 밥을 안쳤다. 엄마는 무미건조하게 '잘했다'라는 말을 한마디 했고, 이후에 밥솥에 밥이 떨어지면 그건 게으른 내 책임이 되었다. 그저 내가 부모의 기분을 맞추지 못하거나 기대에 닿지 못하면 언제든 비난받을 것이라는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다.




‘완벽한 아이’라는 이 허상은 시간이 지나도 나를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내 안의 상처와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앞서 언급한 '명의 도용'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어려움에 처했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뒤로 하고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삶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원가족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비난하던 습관을 멈추고, 작은 성공과 나만의 가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 상처를 통해 진짜 내가 누구인지 마주할 수 있었다.



어떤 부모에게는 안 아픈 손가락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차별은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하는 일, 칭찬의 대상이 되는 순간들은 언제나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의 애정 어린 눈길은 항상 다른 곳에 머물렀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다.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난 존재로서, 늘 조심하고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사랑을 갈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끊임없는 비난과 냉소뿐이었다. 학대는 단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계속해서 부정하게 만들었던 모든 차별과 비난의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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