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속에서 사라진 나

나르시시스트 양육자의 은밀한 학대

by Mia 이미아

학대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우리는 흔히 학대를 신체적 폭력으로만 연상하지만, 정서적 학대 역시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특히 나르시시스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끊임없이 부모의 감정 기복에 맞춰야 하며, 부모의 기대와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가혹한 비난과 무시를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은밀한 학대'는 외부에서 쉽게 감지되지 않아 더욱 교묘하고 지속적이다. 학대를 당하는 아이 스스로도 이것을 학대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차별', '잔소리', '가족 내 갈등' 정도로는 그 이면의 본질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아이는 자신이 언제든지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며, 점차 자기 존재를 부모의 기분에 맞추려 애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점점 흐려지고, 결국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지 못하는 상대적 결핍은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몸이 약했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잦은 잔병치레로 병원을 가야 했고, 병원비 2천 원, 3천 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에게 사정해야 했다. 나에게는 이러한 순간들이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고,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이라는 생각에 웬만한 통증과 불편함을 스스로 참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가족 내에서 차별받고 있음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형제들은 필요한 것을 쉽게 얻었지만, 나는 늘 ‘안 된다’, ‘나중에’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결국 병원에 가야 할 상황에서도 두려움 속에서 부모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러한 경제적 차별은 단순히 ‘가난’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돈을 달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고, 결국 내 필요 자체를 부정하며 침묵하는 방식으로 생존해야 했다.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겪었던 이러한 경험은 다른 형태의 학대였다. 나의 존재는 가족 안에서 끊임없이 부정당했고, 이러한 환경은 나에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침묵하고 견디는 법을 익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제적 궁핍이 아닌, 관심과 보호의 부재가 더 깊은 상처로 남았고, 나는 그것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자아 상실은 지속적인 정서적 학대가 남긴 가장 깊고 치명적인 상처이다. 부모가 반복적으로 아이를 깎아내리고, "네가 나가서 뭘 하겠니 “ ”너 같은 애가 살아서 뭐 하니" 같은 상처 입히는 말을 내뱉을 때, 아이는 점차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를 잃어간다. 이러한 언어적 폭력은 눈에 보이는 흔적은 남기지 않지만, 아이의 내면에는 깊고 오래된 상흔을 남긴다.


부모의 일방적인 비난과 폭언은 아이의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으며, 결국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부모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가족 안에서조차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아이는 점점 더 자기 존재를 숨기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내면의 소리 대신 부모의 목소리가 아이를 지배하게 된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Child Abuse & Neglect 저널에 실린 사례)를 보면, 부모가 지속적으로 아이를 조종하고 비난하는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자기 이해와 감정 표현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이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결코 사소한 '집안'문제가 아니며,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대인관계에서 위축되거나 진로 선택에 있어 심각한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건강한 관계 형성과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데 상당한 장애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내면의 공허는 학대가 만들어낸 또 다른 그림자이다.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당했던 시간들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라는 질문을 마비시킨다. 반복된 부정과 무시는 아이의 내면에 깊은 혼란을 심어주고, 스스로의 감정을 부정하며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가게 만든다. 이로 인해 즐겁고 행복해야 할 순간에도 진심으로 기뻐하기 어렵고, 슬퍼야 할 때도 감정이 무뎌지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겉으로는 그저 ‘무뚝뚝하고 조용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억압과 두려움이 감정 표현의 여력을 앗아간 것이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몰라도, 이러한 감정 고갈은 인간관계에서 단절감을 낳고, 타인과의 교류에서 자신을 지우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런 아이가 학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경험한 부당한 대우와 억압적인 환경은 아이의 인식에 깊이 각인되어, 무의식 속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정상'이라는 왜곡된 믿음을 형성하게 한다. 그 결과, 학교나 사회에서 건강한 관계를 접하게 되더라도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계심을 드러낸다. 누군가가 진심 어린 친절을 보여주면 '저 사람이 나를 이용하려는 건 아닐까?'라는 불신이 앞서게 된다. 작은 마찰에도 자신의 가치가 부정당한다고 여겨 크게 상처받고, 다시 위축되면서 자기표현 능력은 더욱 약화된다. 이렇게 누적된 불신과 두려움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라지기 힘들다.




스스로를 부정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분노 폭발은 아이에게 예상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는 무언가 잘못될 때마다 '내가 참으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점점 더 감정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는 분노나 슬픔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대신 무조건적인 순응과 회피로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수동적 태도를 넘어,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러한 무력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감정이 건강하게 폭발할 지점을 찾지 못한 채 내면에서만 방황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녀가 학대를 인지하고 도움을 청하려 해도, 가족이 그 사실을 은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가족 체면’과 ‘효(孝)’의 가치가 강조되다 보니, 부모를 문제 삼는 행위를 터부시 하는 경향이 강하다. “밖에서 우리 집안 이야기 하지 마라”는 식의 협박이나 회유가 반복되면, 아이는 점차 자신의 고통을 침묵 속에 묻어두게 된다. 밖에서는 그저 불평 많은 아이로 치부되며 "네 얼굴에 침 뱉기"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일화는 고등학생 때의 학교 글짓기 대회에서 '참는 돌'이라는 제목의 시를 제출했던 경험이다. 어린 시절 읽은 외국 전래동화에서 영감을 받아, 참고 또 참다가 결국 폭발해 버리는 돌의 이야기를 썼다. 당시 시를 통해 내면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했고,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니?"라는 질문에 나는 순간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단 한마디 '아니요'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상담은 짧게 끝났다. 마음속으론 “제발 도와달라”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어른들은 내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는 또다시 침묵을 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도 내 말을 믿어줄 거 같지 않았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러한 은폐가 더욱 심화된다. 부모는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적으로 완벽한 가정을 연출하고, 아이의 고통을 무시하거나 사소한 문제로 치부한다. 또 주변인들이 '다 너를 사랑하니까, 너를 위해 그런 거다, 엄마 혹은 아빠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라며 부모의 입장을 대변하면, 아이는 점차 자신의 감각을 부정하며 혼란에 빠지고, 결국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환경은 아이가 자라면서도 자신의 학대 경험을 명확히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고, 주변 지지자나 외부 정보를 접하게 되면 자녀는 서서히 ‘내 과거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학대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하려면, 우선 부모의 행동이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피해 사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회복의 문턱조차 밟기 어렵다.


학대 경험을 마주하는 과정은 과거에 매몰되거나 과거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단계이다. 자신의 경험을 인정하는 것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반드시 한 번은 거쳐가야 한다.




처음에는 괴로운 기억들이 떠올라 눈물이 흐르거나, 억울한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슬픔이나 분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치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쌓인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점차 자신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너무 힘들다면 지금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언젠가 충분한 힘이 생기면 그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국, 깊이 새겨진 상처와 오랫동안 길들여진 두려움을 마주해야만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되찾을 수 있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자기 돌봄은 필수적이다. 작은 시도부터 시작하면 된다. 자신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거나 솔직한 감정을 일기에 기록하는 것 같은 일들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 자기 돌봄의 힘을 키울 수 있다.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의 욕구를 존중하는 연습 또한 필요하다. 혼자 이 모든 것을 해내기는 힘들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건강한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지난 4년간 정기적인 정신의학과 상담과 지지그룹 형성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서 우선 작은 한 걸음부터 내디뎌 보길 바란다.





*Child Abuse & Neglect 저널 출처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16503272401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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