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 갇힌 감정과 잃어버린 꿈
부모의 기분과 요구에 맞춰 사는 데 익숙해지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점점 흐려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라는 질문 자체가 생소해진다. 감정둔마(Emotional Numbing)는 반복적인 억압과 자기부정으로 인해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기제로 작용하며,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외부의 기대에 따라 살아가게 만든다.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등 일상적 욕구조차 부재 상태가 되며, 아이는 내면을 인식하지 못한 채 주변에 순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감정과 욕구를 식별하는 능력 자체가 약화되고, 삶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감정둔마는 단순히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현상이다.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Alice Miller)는 저서 "The Drama of the Gifted Child"에서 "아이의 욕구가 무시당하고, 늘 부모가 정한 틀에 맞춰 살아야 했던 사람은 내면을 느끼는 능력이 마비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감정보다 부모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는 자기 주관이 약해지는 문제를 넘어, 감정 자체를 의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즐거움을 느껴야 할 순간에도 '이것이 정말 기쁜 건가?'라는 의심이 떠오르며, 감정을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약화된다. 슬플 때조차 '이런 감정을 표현해도 되나'라며 주저하게 되며, 감정 표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감정을 억누르고 외부의 기준에 의존하게 되어,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너는 피아노를 잘 쳐야 해"라며 강제로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고 하자. 아이가 그걸 싫어하거나 다른 취미를 원해도 부모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지만, 점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습관이 된다. 부모가 칭찬할 때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자리 잡으며, 아이는 자기 욕구를 표현하기보다는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자신의 흥미와 욕구가 무엇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성인이 되어 삶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취미 하나 찾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무엇을 시도해도 쉽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라는 혼란에 빠진다. 어린 시절부터 '무엇을 좋아해도 소용없다', '부모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학습이 강하게 내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자기 결정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된다.
감정둔마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기회를 빼앗긴 결과이다. 이러한 과정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억압과 학습된 무기력의 결과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요구와 기대에 맞추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점차 '느끼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감정 표현의 기회를 잃은 아이는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조차 약화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미국 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CE 아티클 'Unseen Wounds'에 따르면, 아동의 정서적 학대가 신체적 및 성적 학대와 비교할 때 동등하거나 더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적 학대를 받은 그룹은 내재화 및 외재화 문제에서 높은 점수를 보였으며, PTSD 증상에서도 유사한 수준을 나타냈다. 또한 우울증, 불안 장애, 약물 남용과 같은 다양한 임상적 손상을 초래하며, 신체적 학대보다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는 아동학대 유형 중 정서적 학대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평가와 개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많은 이들에게 정서적 학대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다. 나 역시 내가 겪어온 지속적인 비난과 무시, 폭언이 정서적 학대였다는 사실을 성인이 된 후에야 깨달았다. 정서적 학대는 눈에 보이는 신체적 상흔이 없기에 스스로 경미한 일이라 여기기 쉬웠으며,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에 '정서적 학대'라는 이름을 붙인 순간,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설명되었고, 이는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정서적 학대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자각을 넘어, 스스로를 돌보고 치유하는 과정의 첫 단계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한국에서도 아동의 정서적 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고, 제도적인 개입과 보호가 더욱 강화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생존을 위해 억누른 것들'에는 감정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진로, 취미 등 삶의 다양한 영역이 포함된다. 부모에게 순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느낀 아이는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억누르고, 부모의 요구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라고 믿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는 자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학습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일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경우 아이가 최선을 다해 자기 목소리를 내더라도 좌절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묵살하고 압박하는 경향이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는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무시하고, 마침내 아이가 욕구를 포기할 때까지 끊임없이 압박한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로 하여금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신념을 형성하게 하며, 자율적인 결정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심화시킨다.
결국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놓고 부모의 뜻에 맞춰 계속 상황을 회피하며,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는 이후의 삶에서도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원인이 된다. 또한, 부모의 판단을 내면화하면서 독립적인 사고보다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이러한 습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 형성과 자기 주도적인 삶의 방해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쌓인 '상실'이 결국 자기 삶에 대한 무력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작은 용기조차 꺾인다. 무언가 시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겨도 "안 될 거야", "나는 이런 걸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며, 자신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 이러한 자기 불신은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고, 부모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죄책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자신의 가능성을 축소하고, 새로운 기회나 도전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패턴은 직장 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도 반복되어,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왜 이렇게 의욕이 없지?"라는 의문을 남기지만, 정작 본인은 무기력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스스로를 탓하며 더욱 깊은 무력감 속으로 빠져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는 데 성공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 가정에서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가 부모에게 '잘난 척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상실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부모는 아이의 성취를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간섭하며, 아이의 재능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부모에게 '잘난 척한다', '잘나서 좋겠다', '잘난 척해야만 속이 시원하니?'와 같은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이러한 말들은 상황이나 맥락에 맞지 않게 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결국 내 마음 깊숙이 상처로 새겨졌다. 나는 점점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를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러한 경험은 내 자존감을 약화시키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결국 꿈을 포기하거나 재능을 숨기며 살아간다. 사회적 활동이나 학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고,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릴 적 나의 첫 번째 꿈은 하늘을 그리는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화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며 그림을 배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지만, 좁은 연습실에 앉아 건반을 마주할 때마다 잠이 쏟아졌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반복적으로 검은색과 흰색의 선을 보면 쉽게 졸음에 빠지는 고속도로 최면에 잘 걸리는 유형이었다. 결국, 피아노는 바이엘조차 끝내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교회 집사님들 사이에서 플루트가 유행하면서 나도 배우게 되었고, 피아노와는 달리 플루트에는 꽤 재능이 있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플루트의 음색이 내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는 동생이 바이올린을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내 레슨을 중단시켰다.(주의할 점은 동생의 재능과는 관계없었다는 것이다.) 부모의 결정으로 인해 나의 가능성은 또다시 사라졌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만 했다. 함께 배우던 친구는 플루트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나는 점점 내 꿈을 작게 만들어 갔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만들었고, 내 안의 열정을 점점 잃어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용돈을 모아 패션 잡지 보그를 구입해 한 페이지도 놓치지 않고 정독했다.(사실 용돈은 받은 적이 없으니 푼돈을 모았다고 해야 하나)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면 동네 옷가게에서 사장 언니를 돕는다는 핑계로 머물며 옷을 정리하고, 마네킹 디스플레이를 바꾸면서 꿈을 키워나갔다. 대학 진학 역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기 없이 입학할 수 있는 패션 디자인과를 선택했다.
그러다 언니가 내 명의를 도용해 경제적 피해를 입었을 때, 부모는 보상해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으로 나를 영국 어학연수로 유인했다. 그곳에서 나는 세계적인 패션 스쿨에 합격했지만, 부모가 쌓아둔 막대한 빚 탓에 결국 중도 하차해야만 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다른 세상을 꿈 꾸었지만, 현실의 제도적 벽과 가족의 덫은 언제나 나를 가로막았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나는 이렇게 느낀다"라고 말할 때, 부모가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아이의 정서적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경청할 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식하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된다. 이는 아이가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자기표현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반면,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경우,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며 '너는 너무 예민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라고 일축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부정적 반응은 아이에게 감정 표현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자신의 감정을 불신하게 만든다. 결국 아이는 자신의 감정보다 부모의 기준을 우선시하며 내면의 혼란과 불안을 지속적으로 겪게 되고, 감정 표현의 어려움은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정서적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안전한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상담을 통해 전문적인 심리 치료를 받거나, 같은 고민을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위로와 지지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울타리가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아동을 위한 심리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학교와 지역사회에서는 정기적인 정서 건강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이는 '내 감정과 욕구는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점진적으로 깨닫게 되고, 이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르시시스트 양육자의 피해 자녀를 위한 법적 보호 장치 마련과 전문적인 상담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이가 생존을 위해 억누른 감정과 욕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는다. 생활의 선택에서부터 인생의 중요한 결정까지, 억눌린 감정과 욕구는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방황하게 만든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며, 때때로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실을 인식하고 '이제라도 내가 원하는 걸 찾아봐야겠다'라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욕구를 존중하려는 작은 시도들이 모여 자신을 되찾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은 자신을 돌보고 지지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