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지 않는 글을 써보겠다고 볼펜만 꼭 쥐고 있었다.
종이 위에 낙하지점을 찾지 못한 펜이 허공에서 붕붕 거리다 장판 위로 추락했다.
급하게 손 소독제와 물파스를 동원해 가며 열심히 지워봤지만 옅게 남은 희미한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운다고 지워지지 않는 똥을 바라보고 있자니 살면서 남겼던 무수히 많은 후회의 역사들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항상 모호함 투성이었어도 결국엔 한 것과 하지 못한 것만 남았다.
써버리면 쓴 것과 쓰지 않은 것만 남는 것처럼.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생각들이 좀처럼 겁을 먹고 나오질 못하자 답답해진 볼펜이 대신 소리를 내었다.
딸깍 딸깍 딸깍.
한때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필압에 따라 굵기도 다양하게 진하게도 연하게도 쓸 수 있는 연필이
쓴 만큼 닳고 짧아지다 생을 마감하는 모습마저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빠꾸 없이 직진만 가능한 볼펜에서 더 나와 가까움을 느낀다.
다른 점마저 닮고 싶은 점이라고 읽는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아니 놀라울 것도 없고,
일말의 공통점이라도 느낀다면 연필이 그랬듯 볼펜이 그랬듯 일단 닿기라도 해야 흔적이라도 남지.
부러워만 하다 하 세월 보내지 말고
일단 쓰자. 뭐라도 쓰자 하고 다시 두드려본다.
타닥 타닥 타닥.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무한히 다시 튀어나오는 키보드 자판처럼
끊겨도 다시. 마음에 안 들어도 다시, 좀 못 써도 다시. 가볍게 툭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