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망이 외할머니는 수다쟁이

출산한 큰딸을 만나러 갑니다.

by 따오기

출산한 큰딸을 만나러 갑니다.

평소 7호선을 타고 퇴근하는데 오늘은 2호선 성수역으로 갑니다.

큰딸 시부모님이 지난 일요일에 우리 주라고 블루베리와 체리를 갖다 놓으셨다길래 받으러 갑니다.

큰 애는 출산한 지 37일 된 산모입니다.

딸아이가 출산하면 제가 엄청 바빠질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막상 맘만 바쁘지 거의 신경을 못 썼습니다. 오히려 우리 집 큰 아들(^^) 신경 쓰느라 바빴습니다.

출산한 병원도 보호자 1명만 출입할 수 있고, 산후조리원도 보호자 1인만 출입할 수 있더라고요. 이번 출산을 보면서 큰 애의 보호자는 우리가 아니라 사위란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겨우 신생아실 유리 너머로 손주 한 번 보고

딸 애 집에서 한 번 안아본 게 전부입니다. 게다가 아이가 좀 아파서 병원에도 일주일이나 있었고 우리 부부가 감기에 걸려서 손주면회금지 기간에 걸려 두 번 본 게 전부네요.


딸애가 출산하면 친정엄마가 바쁘다는 공식은 제겐 예외사항이더라고요.

대신 산후조리원 앱으로 큰 애가 찍어 보내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손주를 만났네요.

오늘 잠시 집 밖에서 보기로 해서, 손주 좀 보여 달라고 구애의 카톡을 보냈더니 안 자면 데리고 나온 다네요.

손주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도 일하는 친정 엄마라 그런지 애 봐 달라고 부탁도 안 하고

대부분 부부가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 참 대견합니다.

큰 애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연달아 쓰고

다음 주 초까지 베이비시터가 도와주고

사위는 육아기 단축 근무로 이달 말까지 두 시간 조기 퇴근을 하네요.


애, 키우기 힘든 세상이긴해도 사회시스템이 조금씩 변화해서 그나마 잠 다행입니다.

앞으로 도움 없이 육아하려면 정말 전쟁 같은 날들이 펼쳐지겠지만 살아보니

개인적인 성취 그 이상의 기쁨인 게 자식 키우는 일이더라고요.


대단한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로 아름답고 힘이 나는 존재!

어느새 제 큰아이도 자식을 위해 본인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사랑 주는 엄마가 되었네요.

비록 시간이나 돈으로 도움을 주진 못 할지라도 딸네 부부의 건강한 매일매일을 응원합니다.


제가 돈도 명예도 물려주지 못했는데 자립심 독립심엔 영향을 주었나 봅니다.

간혹 너무 알아서 한다고 해서 서운할 때도 있지만 씩씩한 모습에 맘이 노입니다

점점 '내 딸'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할까 봅니다.

이제 똘망이 엄마니까요.


글을 쓰는데 제 이야기하는 줄 아는지 전화가 오네요.

애, 우유 먹일 시간이 다가오니 그냥 집으로 오라네요.

대신 마스크* 필수랍니다.ㅋㅋ

손으로 톡톡 거리는 사이 도착역입니다.


(*마스크 필수가 된 건, 똘망이가 산후조리원 퇴소 후 모세 기관지염으로 일주일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을 한 아픈 시간이 있어 모두 조심하자고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손주를 보러 가면 손 닦고. 발까지 닦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안을 수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조심하자는 의미로^^)


---------------------------------------------------------------


손주를 보고 집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피곤에 지친 딸과 사위의 얼굴이 신경 쓰입니다.

둘이 알아서 하겠다고 시댁도 친정도 안 가더니 힘들긴 힘든 가 봅니다.

손주는 예쁜데

아기 엄마 아빠는 패닉상태네요.

저러다가 또 아기가 한 번 웃어주면

저절로. 미소가 번지겠지요?

저는 두 시간 안아주고 가는데 벌써 지치네요. 그래도 두 번째 손주 안아보기는 여전히 설레고 신기합니다.

아기 키우는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더니 손주에게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모릅니다.

똘망이가 나중에 우리 외할머니는 수다쟁이라고 흉을 보면 어쩌지요?

오늘 저녁을 평소처럼 간단히 먹었더니 벌써 배가 고프네요. 힘에 부치는 가 봅니다.

집에 가면 바로 사돈이 보냈다는 블루베리와 체리를 맛있게 먹어야겠습니다.


전철과 버스에서 톡톡 거리는 똘망이 외할머니 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