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집 짓는 남자(1)

그는 매일 밤 어딘가에 뚝딱뚝딱 집을 짓는다.

by 따오기


오래전, 그는 매일 밤 어딘가에 뚝딱뚝딱 집을 지었다. 땅 위에 짓는 집이 아닌 컴퓨터 안에 html이라는 외계어로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여긴 대문, 저긴 안방 여기저기 자기만의 공간을 설계를 했다. 나 보고는 ‘어떤 집을 갖고 싶냐’며 ‘주문만 하면 다 지어 주겠노라’ 떵떵거렸다. 그 당시엔 홈페이지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던 남자가 어느 날, 또 무언가를 만드느라 노트북을 이고 산다. 이젠 좀 전문적인 CAD라는 거란다. 집을 만드는 골조가 하나 둘 지어지고 저절로 건물이 생겼다 사라졌다 요술을 부린다. 그러고 보면 컴퓨터는 정말 신기하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내고 마는 신세계다. 사실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는 시대이니 캐드로 설계하는 게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신기하다. 캐드를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고 c언어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닌데, 매번 관심 있는 건 독학이라도 해내곤 한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컴퓨터가 박사고 선생님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세상에 관심이 많고 공부하기 좋아하는 그를 타인에게 소개하기 주저하던 세월이 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우리 것에 관심이 많던 그의 직업은 한국사 강사였다.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멋지게 강의하던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학원 강사의 상위 몇 프로만 잘 나가고 나머지 평범한 강사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열악하다. 가장 큰 애로점은 밤늦게까지 일하고 휴일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건강이 안 좋아지고 가족 간의 시간 내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런 수고에 비해 수입이 몇 배로 좋으면 감내하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


결국 건강만 악화되어 그는 어쩔 수 없이 일을 놓아야 했다. 한참 젊은 나이에 건강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건, 우리 집에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도 그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나나 아이들의 마음도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다 지나간 일들이니 몇 줄 글로 표현하고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생존기로에서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바쁘던 아빠가 집에 있다는 건 자라나는 아이들과 나에게 커다란 상처가 됐다.

그런 어려움을 겪던 그가 매일 또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는 거였다.

전기 회로 같기도 하고, 건축 설계 같기도 한 캐드라는 거였다. 그곳에서 우리 옛날 건축물인 한옥을 짓고 있는 거였다. ‘역사 강의를 못하니 이제 한옥 모형을 짓고 있구나’ 싶은 게 안타깝기도 했고, 어찌 보면 일맥상통한다 싶었다. 그런데 한옥 모형을 만들어서 뭘 하겠다는 건지 막막했다. 크기는 작아도 그 안에 이 것 저 것 넣어야 하고, 나무는 아주 작게 잘라야 하고, 지붕도 올려야 하고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여자라 그런지 그다지 관심 있지 않은데 남편은 작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매일 내게 물어본다.


“이거 어때?”,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나의 관심을 재촉했다. 어느 날은 한옥 교재 사이트에 들어가 한옥 모형을 보여 주며 “이런 게 이렇게 비싸대. 이런 걸 해 보면 어떨까?” 한다.

“그건 다 전문가가 하는 거겠지. 그런 거 하려면 한옥학교라도 다녀야 하지 않을까? 전문가가 만들어야 작품으로 바라봐 주겠지” 했더니 불쑥 여기저기 사이트를 뒤진다.


“아! 시청서 하는 한옥학교가 있대. 거기나 가 봐야겠다” 한다.

한옥 모형을 공부하다가 한옥에 관심이 생긴 그가 결국 시청 한옥학교까지 갔다. 그곳에서 온돌 놓는 배우고 한옥 짓는 법도 배우고 답사도 다녔다. 사실 교재로 배운 ‘한옥 짓는 법’ 보다 남편이 스스로 터득한 한옥 짓는 법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고 자랑도 한다.

우리는 다양한 공부를 위해 매주 북촌, 남산골한옥마을. 전주 한옥 마을 등 한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여행 삼아 같이 찾아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에서 건축 박람회를 한다고 한옥학교에 부스 하나운영해 보라고 제안이 왔다. 다들 글로만 한옥을 배웠지 어디서 한 채 지어본 사람이 없다. 회의 도중 남편의 모형 취미를 알던 동료들이 ‘그거다’하며 모형을 만들어 한옥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평소엔 오십 센티 이하로 모형을 만들던 그가 아는 공장을 빌려 대형 한옥 모형을 만들었다.


남의 공장에서 작업하는 거라 남들 일 안 하는 휴일이나 명절에 작업을 했다. 부스를 운영한다는 게 무슨 큰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만든 모형이 전시된다고 열과 성을 다했다. 남편 이름으로 하는 전시회도 아니고 시청 한옥학교에서 출품하는 걸로 되는 건데도 말이다. 암튼 마냥 좋아하는 그가 작업만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에도 오지 않는 거였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집중했다. 일도 일이지만 기계를 만지다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근심도 되고, 저러다 또 아픈 병이 도지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게다가 나무를 자르는 작업은 먼지가 많이 나 없던 비염까지 생겼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도시락 갖다 주는 일 정도였다. 애들 도시락도 안 싸는 요즘 세대에 남편 도시락을 싸가지고 날랐다. 그는 집중을 하다 보면 마누라가 왔는지 도둑이 오는지도 모르고 몰두한다. 그런 그를 본 가구공장 사장님이 모형만 만들지 말고 여기 와서 가구 제작하는 걸 해 줄 수 있냐고 제안을 했다. 딱히 하던 일도 없던 차에 그는 그 공장에 취업을 했다. 학원 강사 하던 이력에 가구공장 목수가 되었다. 어쩌다 취미로 일 할 땐 몰랐는데 일로 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했다. 막상 공장을 가보면 건물도 허름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완전 3D업종이라는 게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남편은 두어 달 고생해서 원목 한옥 모형을 경기도 건축문화제에 출품하고 부스를 운영했다. 한옥 학교 동호회가 같이 도와주었지만 95 퍼 남편의 수고였다. 그날 우리 가족은 남편이 만든 모형 앞에서 활짝 웃으며 가족사진을 찍었다. 늘 힘이 없던 남편은 그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해 한옥에 관심 갖다가 한옥 모형을 건축 문화제에 출품하는 열정에 모두 놀랐다. 지금도 남편은 짬짬이 한옥모형을 짓고 있다. 이런 그의 이야기가 알려져 이번 학기에 모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으로 한옥 모형을 제작하고 한옥에 대해 공부하는 수업을 며칠 하기로 했다. 사실 그 모형을 제작하려면 열흘도 더 걸리는데 처음 맡는 수업이라고 제 값도 못 받고 무료 강의나 다름없는 서비스를 한다. 이 일이 그에게 멋진 밥벌이가 되는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좋아서 한다는 열정만 그득하다. 그래도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강의하는 모습은 내겐 그 어떤 남자의 모습보다 멋지게 그려진다.


바람이 있다면 앞으론 작은 한옥 모형만 짓지 말고, 진짜 땅 위에 그 만의 한옥을 짓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2018년 10월 어딘가에 공모했던... 그 남자의 여자 씀,




되돌아보니 어느새 7년 전 일이네요. 이제 그는 한옥모형으로 진짜 밥벌이를 하고 있고

저는 휴일이면 가끔 그의 일을 돕고 있네요. 조만간 <틈만 나면 집 짓는 남자(2)>를 써 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쩌면 그 남자의 성장기가 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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