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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n 20. 2023

동반냥.

사랑하는 나의 헤니 

반려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2023년 3월 21일 오후 3시 반쯤

나의 조그마한 네 발 털 가족, 동반 냥이 떠났다.


21살에 대구에서 고양으로 와 혼자 살기 시작하고서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헤니.


어떻게 보면 나의 첫 고양이는 아니었다. 부모님네에 동생이 데려온 두 식구가 2008년에 생겼고 몇 년 뒤 학교에서 작고 아파 보이는 치즈 고양이를 데려왔었다. 이놈 치즈가 나와 함께했던 첫 고양이다. 조그만 새끼 고양이를 종이상자에 넣어 친구 차를 타고 데려와 병원에 갔다. 약을 먹여 돌보다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치즈의 이름은 똥띠, 노랭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작지만 아파트에서 친구랑 반띵 월세로 살고 있어서 공간이 협소하진 않았다. 그러다 원룸으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줄어든 공간 때문에 답답한지 문 앞에만 있던 똥띠는 부모님네 막내로 들어갔다. 사랑스러운 성격의 똥띠는 거기서 다행히 잘 적응하고 사랑받는 식구가 되었다.


그렇게 보냈던 게 생각보다 큰 난 자리었던 걸까. 나의 아쉬움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임시 보호를 신청하여 깜디라는 젖소 코트 고양이를 잠시 데리고 있었다. 입양 가기 전의 기간 보호소보다 가정집의 환경이 나으니 나처럼 임보해주는 경우가 많다. 깜디는 장이 안좋아 케어가 필요했는데 다행히도 좋은 집사님들과 형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생식을 먹는 도련님이 됐다는 소식까지 들었었다. 2달 정도 함께했는데 보내고 나서 얼마나 울었던지,, 임보도 하면 안 되겠다 마음먹었는데 다른 한 마리 임보 해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그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잠시니까 돌봐주자'라는 마음이었던 걸까.


어느 공장에서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였는데 총상을 입고 공장까지 걸어와 쓰러져 구조했다고 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한 친구였던 우리 헤니. 떠나기 몇 시간 전까지도 주사기로 물을 주면 받아 먹어줬던 의지의 내 새끼.


그 의지가 헛되지 않게 헤니와 함께했다. 사실 입양을 갈 뻔하기도 했다. 나와 1년 정도 함께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근데 관리하는 협회에서도 입양처가 썩 내키지 않아 보였고 나도 정이 들어서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콜라보로 헤니는 끝까지 나와 함께했다.


아플 때 돌봐 준 사람이 나여서일까 헤니는 나만 좋아했다. 가만히 있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감자와 맛동산을 생성하는 모습조차 모든 게 사랑스러웠다. 부모님 집이 대구라 타야 했던 기차도 얼마나 잘 타고, 다녔던지, 대전쯤이면 찡얼거려서 츄르를 한 입 줘야 하긴 했다. 말을 너무나 잘 알아듣고 똑똑해서 사고도 치지 않았던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떠나기 1년 전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 왔던 날, 나만큼 잠이 많은 헤니가 한숨도 안 자고 밤새워 돌아다니며 집안 구경하는 모습을 보자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신나 하는 모습에 너무 미안했다. 매일 아침 베란다 구경하고 캣그라스 뜯던 좋아진 일상을 1년 정도밖에 같이 못 한 게 너무 속상하기도 하다.


이사 오기 얼마 전, 출근 준비를 하다가 헤니를 쓰다듬다가 발견한 콩알만 한 알갱이. 곧바로 헤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고양이는 보통 악성일 가능성이 높아 제거하는 게 좋다 하여 이른 날짜를 잡아 수술을 진행했다. 떼어 낸 종양을 조직검사 한 결과는 악성종양이었다. 그리고 1년이 되지 않아 또 발견된 종양으로 유선의 반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했다. 낯선 장소를 무서워하지만 내가 턱을 받쳐주거나 서로 닿아있으면 괜찮았던 헤니. 병원에서도 내가 잡고 있으면 손을 내어주고 피를 뽑던 헤니였는데, 그 수술 이후 병원에 갈 때마다 들려오는 헤니의 악다구니 소리에 마음이 미어졌다. 살을 도려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그 소리는 견뎌야 할 보호자의 무게였다.


그러고 반년쯤 지난 23년 1월 3일. 골골송을 낼 때의 호흡처럼 깊고 큰 호흡을 하길래 데려간 병원에서는 암이 폐에도 전이되었다는 말과 함께 받은 시한부, 3개월에서 5개월 정도 본다고 했다.

첫 종양 수술 후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유선종양이라는 것이 생기는 순간부터 그렇게 긴 시간은 살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유선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했으니  완치했다고 믿고 싶었던 내가 안일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배를 많이 핥아 털이 없어지는 것이 스트레스 때문인가 짐작했었다. 그러나 종양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 생각해 보니 종양 때문에 불편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추측을 했었는데도 종양이 전이되었다고 나에게 알려주려는 신호를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봐 라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수술 후 다리 쪽을 분홍 살이 드러나도록 핥았었는데 떠나기 전 뒷다리 쪽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암이 있었으니까. 

모든 보호자가 나처럼 자책하고 후회한다고 한다. 역시나 나도 그들처럼 잘해주었던 건 생각하지 못하고. 전이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가 한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렇게 한탄할 시간조차 아깝다. 똥띠가 떠나고 나서 정말 많은 걸 배웠는데 그중에서도 매 순간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시간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헤니의 사랑스러운 모든 모습을 눈에 담고 기억하려 애썼다. 항상 그래왔지만, 시한부를 받고서는 더욱더 많은 사랑을 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시간을 밀도 있게 행복하게 보내자고 헤니에게 말하고 나 자신도 다짐했다. 헤니의 시한부를 듣고 병원에서는 참았다가 주차장에 내려와 운전대를 잡자마자 흐르는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었던 그날.


잠을 쪼개가며 헤니랑 놀아주고 힘에 부치는 날엔 영상으로 사냥하는 것도 잘해서 새로운 영상 찾아 틀어주는 걸로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오고야 말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했다. 제일 먼저 떠난 치즈 고양이, 똥띠가 떠날 때 쯤 거의 먹지 못해서 살이 쪽쪽 빠졌었다. 아는 사실에 대한 대비를 해야지. 미리라는 것이 없는 내 인생에서 준비라는 걸 했다. 밥을 먹지 않더라고 마지막까지 식욕을 책임질 간식 혹은 사료를 찾아야 했다. 

새로운 장난감과 간식이 끊이지 않았던 동시에 집 앞에 택배도 항상 있었던 3개월. 나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었던 건지 새로 사준 것들을 모두 사용하고 모두 먹어보고 떠났다. 헤니는 끝까지 그렇게 나를 배려해 준 게 아니었을까. 시한부를 받고서도 2달 넘는 시간 동안 최고의 귀여움을 보여주며 나에게 행복을 선사했다는 것, 그것이 배려의 증거라는 나만의 해석이다.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처럼 말이다. 


사람도 암 투병 환자들은 너무 아파서 치료를 멈추고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런 고통 속에서 보여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더 속상하고 고맙고 그렇다. 많이 안아주라는 주변의 말이 있었지만 슬프게도 난 그럴 수 없었다. 스치는 공기에도 아플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안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아 헤니의 숨이 멎고서야 마음껏 안아주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움직이지 못해 밥도 물도 화장실도 내가 해결해줘야했다. 오줌이 나올 때가 됐는데 나오지 않아 걱정이던 차에 매트가 젖도록 오줌을 눴을 때는 얼마나 대견하던지. 그게 젖고 세탁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똥이 더 귀여웠다. 줄어버린 식사량에 움직이지 못하니, 똥의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이틀가량 나오지 않아 기다리던 중이었다. 새벽에 조금 찡얼댄 것 같았는데 일과 간호에 피곤한 상태여서 깨지 못했었다. 자고 일어나니 누운 자리에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놓은 똥을 보자니 아파 누워있는 그 모습조차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든지, 너무 감동적이어서 똥도 사진을 찍어 뒀다. 마지막으로 헤니가 모래에 오줌을 눴던 날도 감동적이라 그때 만들어진 모래 감자도 변태같이 아직도 가지고 있다. 

가누지 못하는 몸을 식사할 수 있는 자세로 잡아 유동식을 먹인 후에 잠시 앉혀두고 옆에서 설거지하던 중이었다. 기척이 느껴져 봤더니 몸을 화장실 쪽으로 틀고 있었다. 그런 헤니를 안아 들고는 모래 위로 데려가 몸을 잡아 자세를 만들어 주었다 엉덩이에 너무 모래가 닿는 거 아닌가 싶은 찰나 일을 봤다. 그게 마지막 모래 화장실 사용이었다. 그 아픈 와중에도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려는 의지에 감탄과 감동.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멋진 내 새끼.

그런데 말이다, 사진 찍었던 똥이 헤니가 마지막 배설물이었단 걸 글을 쓰는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헤니의 숨이 멎고서 그 어떤 배설물도 나오지 않았었으니.


먼저 떠난 똥띠가 하루에도 10번 정도의 약을 먹어가며 2년의 긴 투병을 한 것과 비교하자면 밥을 못 먹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상태는 길지 않아 고통이 적지 않았을까 봐 라고 합리화. 1월부터 매주 검사차 병원에 갔고 2주에 한 번 정도 뽑던 폐의 물을 나중엔 1주일, 며칠의 주기로 병원을 드나들었던 기간이 석 달 정도였으니 헤니의 고통이 길지 않았길 짐작만 해보며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 헤니 에기엔 좋은 것이라 주입하며 견디는 중이다. 앞의 짐작이 내가 희망하는 짐작이라면 아니길 바라는, 내가 떠올리지 않으려는 짐작 하나가 있다. 나에게 오기 전에도 총상 수술과 자궁축농증 수술을 했고 함께하면서도 두 번의 수술과 암 투병을 하며 묘생 내내 아픈 시간이 많아서 암 통증도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아프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나랑 놀고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게 아닐까 싶은 마음. 이러한 지나친 생각은 나를 갉아먹고 헤니도 원치 않을 것이라 하지 않지만, 그런 생각도 했다는 거.


끝이 다가오는 게 느껴질 때쯤엔 눈을 잠시 감는 사이 떠날까 봐 잠드는 것도 무서웠다. 식사도 헤니를 보면서 간단한 거로 때우고 3일 꼬박 거의 잠도 안 잤다. 그래서 마지막엔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 같다. 그 판단력이 내가 가장 후회할 일을 만들어 버렸다.

당일 오전부터는 물도 먹지 않던 헤니에게 다시 한번 물이 든 주사기를 입 근처에 갖다 대며 '물 마시면 집에 있고 아니면 병원 가자' 했더니 안 먹던 물을 마시는 거다. 주기적으로 발작도 하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해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일 테니 병원에 데려가야겠단 마음을 먹고 물어본 거였는데, 물을 촵촵 마시는 순간 그전까지 잘 참아왔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없던 힘까지 끌어모아 물 먹는 모습으로 답한 거였겠지.

또 그 마음을 알아서 울었던 건데. 나는 왜. 그땐 물을 빼고 와서 숨이라도 편하게 쉬다 집에서 떠나자는,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걸까. 병원에 가기까지 산소는?, 물을 빼다가 떠날 가능성은?

며칠을 잠들지 못한 난 거기까지 짚어볼 여력이 안 됐다. 그래도, 그래도 헤니의 아픔이 멈췄으니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으로 나를 다스린다.


처음 똥띠가 떠났을 땐, 한 달 정도 병치레를 했다. 그때와 달리 헤니를 보내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함께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라는 직업이라 다행이었고, 가게 문을 며칠간 닫고라도 옆에서 끝까지 바라볼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나를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절대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결국 후회는 남았다. 하지만 헤니와 함께한 시간 동안 내가 받은 행복만큼 헤니도 느꼈길 바랄 뿐이다.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헤니를 떠나보내고 많이 울지 않았지만 사실 난 괜찮지 않았다.

함께 하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내가 죽으면 헤니를 만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까지 했다. 내 인생에서의 굵직한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이 몰려온 시기에 마침 내가 사랑하던, 의지하던 동반 고양이가 떠나고 나니 온전한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멘탈이 강한 나인데도 삶을 내려놓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평소에는 거슬리지 않던 것들이 모두 가시처럼 느껴지는 상태, 면역력 제로의 상태가 되었었다. 혼자 내버려 두면 살아나는 자정능력이 좋은 사람이지만 다 같이 작전이라도 짠 듯 나를 가만두지 않았고 계속되는 자극에 회복되지 않는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그래도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라 생각보다 많이 치유된 상태다.


보고 싶다. 


헤니의 사진을 액자로 만드려고 사진과 동영상을 정리해서 보는데 나 스스로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모든 순간까지는 아니지만 기록되어있는 사랑스러운 모습들, 그리고 수염까지 열심히 모아놓은 나. 정말 칭찬한다. 남아있는 헤니의 마지막 흔적인 털, 초점없는 눈빛으로 장난감매트와 쿠션에서 헤니의 털들을 하나하나 뽑아 모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게 그 시간을 견뎌내는 방법,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마음의 버팀목인 헤니의 흔적들, 헤니의 수염, 털, 용품들. 지금도 침대 내 옆자리 베개 앞엔 헤니 유골함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떤 것보다 말랭이를 좋아하던 헤니에겐 그 마지막 음식이 트릿이었던 것 같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물을 제외하고 먹었던 유일한 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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