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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니 Jan 27. 2023

나의 분투기_1

사회란 이런 곳인가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공교육은 아니고 사교육 쪽에서.

원래 내가 이쪽의 직업을 희망한 건 아니다.

패션과 글 쓰는 일을 접목하고 싶었기에 잡지사 에디터나 백화점에서 상위 1%의 고객들을 상대한다는 퍼스널쇼퍼 등 화려한 외양을 가진 직업을 선망했다.

그러다 정말 어이없게도 이제는 종영한 듯 보이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대한민국 학부모 90% 이상이 사교육에 투자한다'는 식의 자막을 본 게 나의 희망 직업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정말 그 한 줄이었다.

그걸 보고서, 대학생 시절에 쌓은 과외경험도 없던 내가 애들을 가르쳐보겠다고 결심하고 그 길로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당장에 뭘 가르쳐야 할지부터가 고민이었다.

그나마 글과 조금 친숙하니 국어를 담당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여건이 된다면 입시 논술도 하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점점 비중이 커지고 어려워지는 수능국어보다는 대학이 원하는 깔끔한 답안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되는 논술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페이도 훨씬 높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몫을 했다.

입시학원 프리패스 수강권을 결제하고 부모님께 나의 당찬 미래계획을 전달했다.

그 순간, 눈앞의 모든 게 날아왔던 것 같다(물론 주방 식탁에서 말했기에 진짜 눈앞에 모든 것은 아니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그냥 작은 회사라도 들어가지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너 나중에 나이 들어서 사람들이 뭐 하냐고 하면 번듯한 직장하나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 애들 가르치는 일 한다고 할 거냐"

"차라리 스타벅스 직원을 해라"(부모님은 스타벅스가 나름 괜찮은 직장인 것 같다고 이전에도 여러 번 말씀하셨다)


"딱 일 년만 해볼게요, 일단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본 후에 똥이면, 그러면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그만둘게요, 취업준비는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요"

이렇게 간신히 설득을 하고 1년이라는 시간을 얻게 된 나는, 매일 3-4시간씩 수능&모의고사&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방구석에서 공부를 한다고, 그리하여 준비가 다 되었다고 누가 알아주겠나.

틈틈이 과외 회사라는 곳들을 컨텍했고 학원 면접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세상에 '수수료 장사'로 돈을 떼어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러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내 실력이나 경험이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원은 제외하게 되었고, 과외회사에서 물어다 주는 수업을 시작했다.

얼마나 감개가 무량했던지.

그냥 내가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영광스럽고 벅찼다.(단 한 명을 가르치는데도 그때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심을 줄 정도로 아이들은 착했고 부모님들도 좋으셨다.

완전 신입이었기에 학년에 관계없이 회사들이 연결해 주는 아이들을 무작위로 받았다.


다만, 문제는 학생을 소개해주는 업체들이었다.

그들의 방식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첫 달 공제 100%

수업을 소개해 준 대가로 첫 달 수업료를 100% 가져가는 것.

소개받은 학생과 오랜 기간 수업을 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2,3달 안에 종료되는 과외라면, 교사 입장에서는 쓴웃음이 나는 방식이다.


둘째, 달마다 %로 떼어가는 것.

개인적으로 악질 중에 악질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신입 과외 교사들이 많이 당하는 방식으로 지금은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과외 회사에서 부모님께 수업료를 받고 교사에게 매달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수업료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나는 35만 원짜리 과외에서 8만 원이 안 되는 금액만을 수업료로 받았다)


셋째, 첫 달 수업료에서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것.

현재 많은 플랫폼에서 선택하는 방식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의 수업이 이루어지면 첫 달 수업료의 일정 부분을 업체에 수수료로 지급하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100% 지급보다 훨씬 숨통이 트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크게는 셋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외에도 소수의 업체에서 교사의 수업료를 갈취하는 방식은 가지가지다.

나의 경우 회사가 학부모님께 수업료를 받아서 선생님에게 지급한다는 원칙을 가진 업체들이 그러했다.

수업 요일을 늘리는 과정에서의 학부모님 상담에서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수업료보다 매달 5만 원이 많은 금액을 회사가 받아온 사실이 들통났음에도 오히려 나에게 '학부모와의 수업료 직접 상담 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계약 파기를 당했던 일도 있었고,


한 번은 수업료가 2달이 넘게 지연되어 업체에 이야기를 하다 하다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더니(앞서 이야기한 '수업료 직접 상담 금지'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아무리 회사에 전화를 해도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지금까지 밀린 적 없이 회사를 통해 수업료를 지급했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황당한 내 앞에서 "그럼 지금까지 수업료도 못 받으시고 수업을 하신 거냐"며 직접 연락을 취해보겠다던 어머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토록 부재중이던 담당자(사실은 담당자가 없다고 나에게 말해준 분이 담당자였다)는 나에게 연락을 해왔고, 그녀는 나에게 '고작 몇 달 수업료 밀렸다고 규정을 어기고 난리를 치는 돈에 미친 여자'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 담당자는 내 수업료를 다른 곳에 유용했던 것 같고 어머님께는 '어린애가 싹수가 없으니 다른 선생님으로 바꿔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사고들은 끊임이 없었고, 이러한 경험으로 배운 게 있다면 '사회에서 내 몫은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적어도 이 필드에서는 말이다)

궁금한 점은 물어볼 줄도 알고 부당한 것은 따질 줄도 알아야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것,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웃으며 넘어가면 나만 고꾸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걸 사회의 쓴맛이라고 하나.


아이들을 가르친 지 올해로 8년째에 들어가지만, 아직까지도 내 직업에 후회는 없다.

처음 마음가짐 그대로 간직하고 있냐고 하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귀엽고 일을 하는 시간이 좋다.(물론 모두는 아니었지만)


어디에나 존재하고 시답지 않은 직업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좋은 영향을 주고 싶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소중하게 사용하는 교사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늘 혼자이기에, 누구에게 마음 터놓고 직업적 고충이나 보람을 털어놓은 것이 제한된 직업이기에, 나는 이곳에서 그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마음을 내보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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