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는 연애의 참견 프로그램의 오랜 팬이다. 거진 몇년 동안이나 나의 밥친구가 되었던 연애의 참견은 보다보면 정말 별의 별 사연들이 다 나온다. 주작이라는 비난도, 사연을 보낸 사람이 멍청하다는 쓴소리도 난무한다.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돈을 털어가는 인간이어도, 몰래 결혼을 해도, 심지어 몰카를 찍어 보관하는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연의 끝은 항상 '헤어졌습니다'가 아닌 '저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혹은 '이런 사람도 바뀔 수 있을까요' 이니까.
패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 관계를 그만 놓으라고.
그러면 사연자들은 말한다. 아직 사랑한다고.
나 또한 D와의 만남에서 관계를 놓지 못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애써 무시하고 몇개월을 더 질질 끌었다. 초기에 그가 했던 달콤한 말들을 변하지 않을 진실이라 믿으며,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묵인했다. 나와 데이트 중 그는 몇 번이고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했다. 심지어 그 만남들은 사전에 미리 약속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집중해달라는 요구는 수많은 변명이 되어 돌아왔다. 그대로 끊어도 될 것을 나는 상대방의 자유분방함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집착적인 파트너의 모습이 싫어 애써 쿨한척을 하며 관계를 이어갔다.
D의 행동을 내가 이해해주면 D는 다시 처음 그 모습처럼 사랑을 줄것이라고 믿었다.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변화하면 우리 관계는 끝나지 않을것이라고. 그렇게 조금씩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그의 변덕스러운 관심과 사랑에 불안해하는 날이 늘어났다.
어느 날, 친구의 생일 파티에 1시간만 참석하고 돌아온다던 D는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기어들어왔다. 나와 함께 있자며 집에 초대해두고는 본인의 친구들과 밤새 술을마시고 돌아온 것이다. 그래 처음 간다고 했을 때부터 결말은 뻔했는데. 그걸 또 설마하는 마음에, 좋다고 쫒아와서 기어이 이런 일을 겪나. 비참함에 괴로워 스스로를 비난했다. 나는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대해 자책감과 분노를 느꼈다.
돌아와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채로 너무 즐거웠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 날 나는 그 집에 있는 내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대로 돌아왔다.
나는 그가 나의 상처를 알아주기를 바랬다. 다친 내 마음을 휘저어 꺼내며 이럴거면 헤어지자며 모진 말들을 쏟아냈다. 웃긴 것은 그렇게 쏟아내는 와중에도 이 사람이 다시 나를 붙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굴욕적이었다.
말도 안되는 일을 겪으면서까지 나는 무엇이 소중해 그 관계를 놓지 못했을까. 이유는 외로움이었다. 그저 알량한 관심도 사랑이라 믿으며 나의 공허함을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사랑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과 저 사람이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스스로 눈을 가렸다.
사랑을 하는데 너무 아프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한번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를 아껴주지 않는 사람 곁에 내가 왜 있어야하지? 라고.
빠져나와 보면 안다. 아니, 빠져 나와야만 알 수 있다. 절절하게 붙잡으며 놓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내 안의 결핍과 해소되지 못한 욕구가 뒤엉킨 미련덩어리 라는 것을. 그저 사랑이란 이름 아래 가려진 연민, 인정, 추억같은 것들을 붙잡으며, 나는 아직 괜찮다고 합리화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관계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고,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