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과 주변이 혼재된 섬, 혼슈
<키워드로 보는 일본> 시리즈를 준비하며 첫 주제를 어떤 것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본이라고 하면 가장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자, 열에 아홉은 '섬나라'라는 단어를 말했다. 필자 역시 일본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만 하더라도 단순히 '섬나라'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했다. 영국, 타이완, 필리핀,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에는 섬나라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인지 한국인에게 섬나라를 묻는다면 자연스레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첫 주제로 섬나라 일본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일본은 흔히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의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외에도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등 부속도서들이 많고, 각 섬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개성들이 하나로 모여 일본이라는 나라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을 구성하는 각 섬에 대해 살펴보는 첫 번째 순서로, 일본의 중심이자 가장 큰 섬인 혼슈와 각 지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역사의 중심, 혼슈(本州)
혼슈는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섬들 중 가장 큰 섬이다. 야마토 시대(3세기 중반~710) 이후 지금까지 일본사의 주요 사건들은 혼슈에서 일어났다. 나라, 교토, 도쿄 등 역대 수도가 혼슈에 위치했고, 가마쿠라, 에도(도쿄) 등 무사가 일본의 통치자가 되었던 시대의 중심지도 역시 혼슈에 위치했다.
혼슈는 도호쿠, 간토, 주부, 긴키, 주코쿠의 5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구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영남, 호남, 충청, 영서, 영동 등의 구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천 년의 중심, 긴키(近畿)
먼저 긴키(近畿)부터 살펴보자. 긴키는 지명으로만 보자면 한국의 경기도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수도와 수도 인근을 의미하는 긴키는 메이지 유신(1869) 이전까지 천황이 기거하는 지역이었다. 야마토 시대부터 나라 시대까지에는 나라현의 헤이조쿄가 수도로서 활용되었고,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는 교토부의 헤이안쿄와 그 일원에 천황이 살며 공식적인 수도로 인식되어 왔다. 일본 제2의 도시이자 상업의 도시인 오사카는 수도 근교라는 점과 바다를 접하고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일찍이 상업 도시로서 성장해 왔고, 수도가 도쿄로 옮겨간 이후에도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상업도시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던 평야에서 일본의 수도로, 간토(関東)
다음은 간토(関東)를 살펴보자. 간토는 도쿄를 비롯해 일본에서 가장 큰 평야인 간토평야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로 건너와 에도 막부를 세우며, 일본의 중심 역시 간토지역으로 옮겨졌다. 에도는 일찍이 상수도 시설과 대화재로 인한 도시 재개발 등이 맞물려 도시계획이 발전했으며, 이로 인해 당대에는 매우 드문 인구 100만의 대도시를 형성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이 거주하는 황거까지 도쿄로 이전하며(이때 에도에서 도쿄로 개칭한다.), 도쿄는 일본의 정식 수도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도쿄도(東京都)는 인구 1400만의 거대 도시로 성장했고, 가나가와, 사이타마, 지바 등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인구 4400만의 광역 대도시권이 형성된다.
간토와 긴키의 연결을 넘어, 주부(中部)
주부 지방은 교토, 오사카의 긴키지역과 도쿄의 간토지역을 연결하는 태평양 연안의 도카이(東海) 지역과 일본 알프스 산맥 뒤 동해와 접하고 있는 호쿠리쿠(北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도카이 지역은 예부터 긴키와 간토를 이어주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오던 곳이다. 이 지역의 대표 도시인 나고야(名古屋)는 센고쿠 시대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였고,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정권을 두고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싸우던 시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곳에 주목하며 전략적 요충지로 작용해 왔다. 근대 이후에는 도요타 등 기업과 공장들이 유치되며 공업 지대로서 자리 잡았다.
일본 알프스라는 거대한 산맥 뒤로 동해와 접하고 있는 호쿠리쿠 지역은 좋게 말하면 이색적인, 그렇지 않게 말하면 고립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겨울에는 홋카이도보다 눈이 많이 오며, 이 지역 철도노선은 적설량 2m에도 운행할 수 있도록 대비할 정도이다. 과거부터 일본 알프스와 동해에 갇힌 지형적 특성상 발전이 더뎠고, 니가타현(新潟県)의 경우 2차 대전 종전 후 이 지역을 통해 재일 조선인이 북한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북한과의 접근성이 좋아 이 지역을 중심으로 20세기 후반 일본인 납치가 자주 일어났다.
혼슈의 주변부로 살아온 주고쿠(中国), 도호쿠(東北)
주고쿠 지역은 혼슈 최서단의 지역으로 일본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뤄진 지역이다. 세토 내해를 사이에 두고 시코쿠와 마주 보고 있으며, 동해와 접한 지역을 산인(山陰), 세토 내해에 접한 지역을 산요(山陽)로 구분 짓고 있다. 주고쿠(中国)라는 명칭은 중국과의 관련성보다는 교토를 중심으로 아직 간토지역에 조정의 영향력이 뻗어있지 않을 때, 교토와 긴키지역을 긴코쿠(近国), 오카야마 이서부터 혼슈 최서단까지를 주고쿠(中国), 규슈 지역을 엔고쿠(遠国)라고 부르던 것에 유래했다는 게 유력한 설이다.
일본사에서는 센고쿠 시대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을 따랐고, 이 때문에 에도 막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도자마 다이묘(막부 개막까지 도요토미가를 지지하던 가문)로 분류되어 막부의 강한 감시와 제재를 받았다. 주고쿠 지역이 역사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근대 이후로,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 일대)의 집권기와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히로시마가 군수산업도시로 성장하며 성장세를 보였으나, 2차 세계대전 말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과 종전 이후 군수산업의 몰락으로 지금까지 주변부로 인식되고 있다.
도호쿠 지역은 혼슈에서 가장 나중에 복속된 지역으로 본래 이곳에는 에미시(蝦夷)라는 아이누(アイヌ) 계통의 민족이 세력을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 헤이안 시대 400년에 걸쳐서 조정은 이 지역을 정복하며 혼슈 전체를 일본이라는 국가에 편입했다. 그러나 엄연히 야마토 민족과는 다른 민족이 이곳에 거주했기 때문에, 도호쿠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차별의 대상이었다. 눈이 많이 오고 추운 지역 특성상 고립되기 쉽고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 어린아이를 일부러 죽여 자체적으로 인구를 조절하는 마비키(間引き)가 성행했다.
혼슈(本州),중심과 주변이 혼재된 섬
지금까지 혼슈의 각 지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첫 문단에서 역사의 중심이라는 소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혼슈는 사실 중심과 주변이 혼재된 섬이다. 일본사에서 중심은 늘 긴키, 주부, 간토 지역의 몫이었다. 그것도 태평양 연안의 지역말이다. 우리는 일본과 일본 문화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오사카, 교토, 도쿄의 중심부 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혼슈에서도 동해 연안 지역과 도호쿠, 주고쿠 등 성격이 다른 주변부들이 산재해 있다. 극히 좁은 범위의 중심을 넘어서 다양한 주변부의 문화를 통해 더 다각적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 건국 신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나 혼슈의 주변부보다 더욱 주변부에 위치해 있다 할 수 있는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国) 지역에 대해서 탐구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