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소 VS 교토 주소 VS 한국 주소
어느 나라에나 주소는 있다. 행정구역을 정해 국토를 보다 원활하게 관리하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땅에 번호를 매기는 지번 주소를 사용하다, 2014년부터 도로의 이름을 정하고 여기에 주소를 부여하는 도로명 주소로 전환했다(현재에도 지번 주소는 혼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 기본적으로 일본은 지번 주소를 쓰고 있다. 도쿄의 중심가이자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JR 신주쿠역의 경우에는
도쿄도 신주쿠구 신주쿠 3초메 38-1(東京都新宿区新宿3丁目−38−1)
오사카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들리는 곳이자, 간사이 공항을 통해 오사카로 들어올 때 거치는 난바역의 경우에는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난바 5초메 1-60(大阪府大阪市中央区難波5丁目−1−60)
와 같다.
그런데 일본의 천 년 고도, 교토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교토시를 관할하는 교토시청의 경우에는
교토부 교토시 나카쿄구 데라마치도오리 오이케 올라감, 가미혼노지마에쵸 488(京都府京都市中京区寺町通御池上る上本能寺前町488)
의 주소를 가지고 있다. 위 주소를 살펴보면 다른 일본 내 주소와 달리 도로명과 방향을 나타내는 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토만 왜 유독 다른 지역과 다른 주소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교토의 주소에서 나오는 도로명은 우리의 도로명 주소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교토의 주소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그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자.
교토의 독특한 주소
교토는 주소가 매우 길다. 앞서 설명했듯 도로 이름과 방향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다. 이러한 이유는 교토 사람들의 경우 도로 이름을 통해 지리를 파악하는 것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교토 사람들을 만나보면 지명보다는 도로 이름이 더 익숙하거나 심지어는 이를 외우는 사람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교토라는 도시가 만들어진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무 천황이 794년 헤이안쿄로 천도하며 만들어진 교토는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티브로 바둑판식 도시가 형성되었다. 15세기 오닌의 난으로 한 차례 도시가 소실되긴 했지만 그 이후 현대까지 2차 대전의 화마 또한 피해 가며 기본적인 구획은 계승되고 있다.
오랫동안 교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지명보다는 도로명으로 지리를 파악하는 게 익숙해졌고, 때문에 교토는 다른 지역과 달리 도로 이름과 방향이 포함되며 훨씬 긴 주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교차로의 경우 교차하는 길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시죠 거리와 가와라마치 거리의 교차점은 시죠가와라마치로 교토시 최대 번화가이다. 한국인의 경우 한큐선을 타고 오사카에서 교토로 올 때 이곳을 거치게 된다.
주소의 경우 출입구와 접한 곳을 기준으로 설정된다. 예를 들어 건물의 출입구가 가와라마치 거리와 접해있고, 가장 가까운 교차로의 도로가 시죠 거리라고 한다면, "가와라마치도오리 시죠 올라감(내려감)"이 된다. 반대로 건물의 출입구가 시죠 거리와 접해있고, 마찬가지로 가까운 교차로의 도로가 가와라마치 거리라고 한다면, "시죠도오리 가와라마치 왼쪽(오른쪽)"이라고 한다.
교토 주소에는 도로 이름과 방향은 물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번도 함께 표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교토 사람들이 지번보다 도로 이름을 더 자주 쓰는 것은 교토 시내에 중복된 동네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지번에 사용되는 동네 이름 가운데 가메야초(亀屋町)의 경우 교토 시내 11곳이나 있고, 다이코쿠초(大黒町)의 경우에도 10곳이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도로 이름의 편의성으로 인해 교토 주소는 다른 일본 내 도시보다 길고 독특한 주소 체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의 도로명 주소와 닮았다?
도로 이름을 주소에 활용한다는 건 우리나라의 도로명 주소와 닮은 부분이다. 그렇다면 교토의 주소와 한국의 도로명 주소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을까?
먼저 교토와 우리나라의 주소 체계를 살펴보자.
[교토] 광역 자치 단체 + 기초 자치 단체 + 자치구 + 출입구와 접한 도로 이름 + 가장 가까운 교차로의 도로 이름 + 방향 + 지명 + 번지수
[한국] 광역 자치 단체 + 기초 자치 단체 + 자치구·군 + 도로명 + 건물 번호
한국과 교토 모두 도로명이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교토의 주소는 방향으로 건물의 출입구를 판단할 수 있고, 도로명 주소는 건물 번호로 건물의 출입구를 판단할 수 있다. 또, 도로명을 적어도 지번 주소도 함께 적는 교토와 달리 도로명 주소는 주소에 지번이 나타나지 않는다. 교토를 비롯한 일본은 필지 중심의 주소 체계이며, 한국의 도로명 주소는 건물 중심의 주소 체계임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현재 한국의 지번 주소 체계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그러다 지번의 불연속성, 행정동과 법정동의 불일치, 아파트 보급에 따른 지번 주소 생략 등 지번 주소의 문제점이 나오며 도로명 주소로 체계를 전환한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가 도로 위주의 주소 체계를 채택하고 있으며, 지번 주소 체계는 일본만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큰 틀은 같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지역별로 주소 체계가 다르다. 그렇지만 교토처럼 도로명과 방향을 상세하게 쓰는 도시는 없을 것이다. 교토의 역사적 배경과 이에 따른 사람들의 관습, 그리고 도로명의 편리성을 이용해 교토만의 고유 주소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주소는 사실 단순할수록 좋다. 짧은 내용 안에 건물 위치를 담고, 그것을 빨리 이해하는 것이 주소의 가장 큰 쓰임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그 외의 나라의 주소를 비교해 보며 어떠한 형태의 주소 체계가 가장 그 나라에 맞는 체계인지를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