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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김미 Jun 26. 2024

30대와 우정의 상관관계

친구사이에 유통기한

아침마다 침대 옆 창가에서 햇빛이 잠을 깨운다. 다 뜨지 않은 눈으로 주섬주섬 휴대폰을 찾아 잠금해제했다. 밤새 알람들이 수두룩하게 쌓여있었다. 늘 그렇듯 카톡부터 확인했지만 광고와 오픈카톡방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 친구들과 나눈 카톡은 애매한 대화로 끝나있었고, 여전히 1이 지워지지 않는 메시지도 있었다.


서운함도 겪다 보면 괜찮은 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이민 이후 친구와의 관계가 서서히 변했다. 물론 이민 직후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겪은 변화였다. 대학 졸업 후 대부분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모두가 바쁜 일상을 보냈다. 서서히 연락 횟수는 줄었고,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30대가 되고 나서 현실로 마주했다. 엉켜있던 인간관계에 가지치기가 시작되었다.


10대에는 친구가 전부인 세상이었다. 집 가는 길에 심심하면 친구와 통화를 했고, 별 내용 없는 메시지를 한참 동안 주고받았다. 시험기간에도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20대에는 함께하는 시간의 반경이 넓어졌다. 같이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고, 나이가 들수록 통금과 외박에서 자유로워졌다. 어린 시절 꿈처럼 자취방에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 놀기도 했다.

20대 후반부터 각자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친구에게 아낌없이 쓰던 시간은 줄었고, 의미 없는 대화는 단절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이 결혼 소식을 전했고, 몇몇은 출산과 육아를 시작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면서 우선순위에서 우정은 밀려났다.


음식이 상하듯 우정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한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연락의 끈을 놓으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걸까. 카카오톡 메시지를 한 참 내린 후에야 친구들을 찾았다. 늘 먼저 연락했고, 내가 보낸 카톡을 마지막으로 대화는 끝나 있었다. 평생 연락하리라 믿었던 친구들이라서 마음이 더 서글펐. 대화가 필요한 날에도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안 받을 걸 알기에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그냥 하하 호호 수다를 떨고 싶었다. 하루가 지나서 답장이 왔다. 그렇게 드문드문 카톡을 보내다 연락은 다시 중단되었다. 외로울 가끔 친구에게 기대고 싶다가도 청승 떤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30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인간관계의 변화일까. 오랜 친구지만 함께 나눈 교집합은 비어갔다.




단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다. 독일에서 미리 스튜디오와 케이크를 예약하고 깜짝 브라이더샤워를 준비했다. 친구에게 미리 부탁받은 축사도 정성 스래 준비했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하면서도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서운함을 꾹꾹 누른 채 1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섭섭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 웃고 떠들었다. 친구는 청첩장을 주며 편지도 함께 건넸다. 편지 끝에는 자주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는 동안 혼자 외로움을 삭였던 시간에 잠시나마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건강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연락 집착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언제까지 10대와 20대의 마음으로 친구들을 마주할 수 없었다.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에도 예의를 갖춰야 하는 때가 찾아왔고, 답장이 없다면 그만큼 바쁘게 사친구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우정은 수많은 지인들과 나누는 평범한 관계가 아니다. 직장동료, 아는 사람 이런 명칭보다 더 진득하고 떼어내기 힘든 것이다. 서로의 세월 속에서 따뜻한 유대감을 형성했고, 힘들 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이가 우정이다.


우정은 늘 영원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점차 변해가고 관계도 바뀔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끊어지고 말 우정인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우정의 곡선이 꼭 추락하는 것은 아니다. 변해버린 상황에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주고 마음을 준다면 우정은 제자리를 지킬 것이다.


티끌 없이 맑았던 그때의 우정이 그립지만

그 시절이었기에 충분히 빛났으리라 생각한다.


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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