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 말은 쉽다.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여유

by 행복 한바구니

한 남성 중창단에 처음 지원했을 때의 일이다.

지휘자님과 기존 멤버들 앞에서 오디션을 거치게 되면 보이스 파트를 정하게 된다. 기존 찬양대에서 이미 테너를 맡고 있었으니 당연히 테너를 배정받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알토'에 배정되었다.

알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파트여서 음 잡기도 애매하다. 소프라노를 제외하고는 각 파트마다 일정한 멜로디 패턴과 음역대가 있어서 신곡을 배정받아도 웬만큼 연습하면 금세 따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처음 접하는 포지션이다 보니 멜로디도 낯설고 알토의 특성상 그 음의 밋밋한 진행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첫날이기도 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힘차게 알토 파트를 불렀다.

파트연습이 끝나자 선배 단원님들이 내게 목소리도 좋고 음량도 크다고 칭찬해 주신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정색을 했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고는 은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휘자님을 쳐다보았다.

"목에 힘 빼시고, 어깨에 힘 빼세요." 지휘자님이 내게 주신 첫 피드백이다.


내가 긴장해서 어깨에 힘을 너무 주었나 보다. 그러고는 어깨에 힘을 쫘악 뺐다. 사람들이 웃는다.

"어깨에 힘을 빼라는 의미는 몸을 축 늘어뜨리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을 때처럼 어깨를 내려놓으시란 의미입니다."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아서 금세 편안히 어깨에 힘을 빼니 이내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런데 목에 힘을 빼라는 의미는 잘 와닿지 않는다.


지휘자님이 시범을 보여 주셨다.

‘가슴을 쫘악 편 상태에서 허리를 펴고, 어깨에 힘을 뺀 상태에서 목을 평소처럼 세우고 약간 턱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복식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신 뒤 멈추고 배에 힘을 준다. 그리고 흉성에서 비성, 그리고 두성으로 공기를 보낸다. 코로 호흡하듯이 구강 윗부분을 비강 쪽으로 붙이면서 코와 입으로 동시에 숨을 내보낸다.’

뭔 말이야 이게?!


붕어처럼 껌뻑거리고 있으니 지휘자님이 크게 한 번 웃으시더니 자세히 천천히 설명해 주신다. 복식호흡, 흉성, 비성, 두성 등을 개별적으로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이것을 한 번에 자연스럽게 실행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첫 시도에 성공할 리도 만무하다. 목도 안 따라주니 의기소침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설명대로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코칭을 해 주셨다.


말은 쉽지! 그게 우리 같은 범부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과정인가. 그랬으면 내가 1년 안에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요나스 카우프만과 함께 [네순도르마]를 노래하고 있겠지.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힘을 빼라는 말이 계속 귀에 남아돌았다.

목에 힘을 빼라. 목에 힘을 빼는데 어떻게 힘찬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열심히 유튜브와 블로그를 찾아다니며 성악 발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명 유튜버 강사들이 하나같이 가슴을 펴고 목에 힘을 빼라고 한다. 그러면 소리가 자연스럽게 가슴에서 목을 거쳐 얼굴 쪽으로 나와 앞으로 뻗어 나간다고 한다. 힘을 빼야 제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오히려 힘을 빼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내가 힘을 빼고 무언가를 배운 적이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마도 처음 힘을 빼고 배운 경험은 어렸을 적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가 아닌가 싶다. 자전거 연습을 열심히 하고 난 후에는 팔과 어깨가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그때마다 가르쳐 주던 형님이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어깨에 힘 빼고 넘어지려고 하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 아무 생각 없이 형이 시키는 대로 어깨에 힘을 뺀 뒤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돌리자 신기하게도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갔다. 그날부터 나의 자전거는 두 발로 잘 달리기 시작했다.


1998년도 IMF 당시, 바다 건너 멀리 미국에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주곤 했던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박찬호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박 선수의 마운드 기초 훈련은 항상 어깨에 힘을 빼고 공을 던지는 일이었다. 어깨에 힘을 주고 공을 던지면 부상을 입기 때문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투구 동작이 익숙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서 연습했다고 한다. 그는 프로다. 프로선수일수록 힘 빼는 연습과 기초훈련을 충실히 행한다.




살아가면서 힘을 빼야 할 일들이 있다.

사격 선수는 어깨에 힘을 빼야 하고, 성악가들은 목에 힘을 빼야 한다. 골프는 '힘을 빼는 데 3년, 힘을 주는 데 3년'이라는 말이 있다. 긴장하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몸을 쓰는 사람들은 몸이 경직되면 평소와 같은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을 할 때에도 팔에 힘을 주어서는 키보드 자판을 쉽게 다룰 수 없게 된다.

굳이 힘주고 살지 않아도 된다. 힘을 주어야 할 때는 주더라도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힘을 빼는 연습을 하자.

학생들은 배우는 입장에서 얕은 지식을 가지고 목에 힘을 줄 필요가 없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 나이가 많다고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안하무인처럼 살 필요도 없다. 회사 간부들도 회사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어깨에 힘주고 나이 어린 직원들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 처음이야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함께 가는 동료가 아닌가?

힘을 빼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어색할지도 모른다. 왠지 내 스타일이 아니라 어색할 수도 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 입을까 봐 걱정이 될 수도 있다. 기득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수도 있다. 그러나 힘을 빼고 내려놓는 연습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또 다른 나의 잠재 능력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던 일이 막힐 때면 잠시 일을 멈추고, 힘을 빼고, 나를 내려 넣고, 나를 비워보자. 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스트레칭 길게 한 번 해 보자. 오늘의 나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믿어 보는 거다.


마침 날씨도 좋고 적당한 바람이 나의 오늘을 응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삶이 바쁘고 힘이 들어도,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에게 쉼을 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삶의 힘을 빼고 과감히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당신은 누구보다 마음이 큰 사람이다.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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