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커피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뒤에서 와이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커피 챙겨가라는 소리이다. 텀블러에 따스한 커피를 담아서 가방에 넣어 주었다. 참 고맙다.
우리 집에는 캡슐커피 머신이 있다. 이XX 트레이더스에 장 보러 들렀다가 중년의 직원 한 분이 너무 열심히 상품을 홍보하는 모습을 보고 와이프가 반해서 샀다.
덕분에 매일 아침과 휴일에 아주 맛나는 커피를 얻어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참 고맙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커피 사랑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커피의 원료인 커피콩은 주로 적도 지방인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약 70개국에서 재배되는 커피나무에서 얻을 수 있다.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 중 하나이며 1년 기준으로 전 세계 약 6천억 잔이 소비된다.
커피를 마시다 보면 문득 나의 커피 역사가 떠오르곤 한다.
☆ 커피를 처음 접한 날
꼬꼬마 시절 우연히 커피를 맛보았다. 어머님이 마실 가실 때 함께 따라 이웃집에 가게 되었다가 우연히 맛본 소위 다방 커피. 당시에는 잘 사는 집에서만 맛볼 수 있었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사각 유리통에서 꺼낸 지름 2mm 정도의 짙은 갈색 덩어리들을 작은 숟가락으로 퍼서 예쁜 잔에 담고 설탕을 한 스푼 넣어 휘휘 저으신 후 어머님께 드시라고 내어 놓으셨다. 어머님은 한 입 드시고는 "아휴~ 맛있네요 성님. 비싼 건 다 맛있네요. 호호호." 하시며 웃으셨다. "나도 한 입 먹겠다."고 고집 피워 마침내 한 입 맛 보았다. 그냥 썼다.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들이었다.
☆ 대학생 시절 맛본 커피
대학에 입학한 후 과 친구들과 처음 커피숍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남중-남고를 나왔기 때문에 여자애들과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찾아온 사춘기는 나를 여학생 앞으로 지나가는 것조차도 부끄럽게 만들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에서 우리 학교를 가려면 중간에 꼭 여고 앞을 지나가야 했다. 가끔씩 교복을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궁금하여 얼핏얼핏 여고 입구를 보고 지나가곤 했지만, 나는 공부하는 학생 신분으로 여심을 탐하면 안 된다는 어른스러운 생각에 '쪼금'만 쳐다보고 얼른 학교로 향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여학생에게 관심이 없었다. '바가지 머리에 무다리'는 특히 별로였다. 여학생들도 '스포츠머리에 왕잠자리 안경 쓴 말라깽이 남학생'은 별로 안 좋아한다더라는 소문도 들었던 차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하굣길에 가끔씩 우리 학교 밴드부 꽃미남 형들이랑 이웃 여고 바가지 머리의 꽃미녀 학생들이랑 같이 모이는 모습은 몇 번 보긴 했지만.
아무튼 대학생 시절 처음으로 긴 머리에 치마를 단정하게 입은 여학생들이랑 함께 커피숍에 갔다. 다른 남자애들은 자연스럽게 여학생들이랑 웃으며 대화도 하고 유행어도 터뜨리며 분위기를 잘도 리드해 나갔는데, 나는 심장이랑 씨름하느라 제대로 대화에 껴들지도 못했다. 당시에 나는 여전히 왕잠자리 안경을 쓰고 있었고 양복바지에 단화를 신고 있는 전형적인 80년대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말주변도 없는 데다가 스타일도 별로인 나에게 관심을 가진 여학생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다른 친구들은 커피 맛이 좋다며, 커피는 역시 비엔나커피가 최고라고 웃고 떠들어 댔지만, 나는 비엔나커피가 그렇게 맛없는 줄 몰랐다. 커피숍 분위기도 별로였고 커피 맛은 더욱 최악이었던 것 같다. 커피 맛은 역시 맥X 커피가 제일이야!
☆ 성인이 된 후 마신 커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난 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교회 친구들이라 술 만남을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주로 커피숍에서 만났다. 당시 핫한 커피숍은 별다방, 콩다방, 뚝섬다방, 천사다방이었다. 그중 우리가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은 신흥 번화가에 있던 천사다방이었다. 총 2층으로 된 건물 안에 넒은 자리와 깔끔한 분위기, 기분 좋게 만드는 조명 등으로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 모두 밝은 성격에 공유하는 주제도 비슷해서 그런지 대화도 잘 통했고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도 잘해주었기에 만날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내가 주로 마셨던 커피는 비엔나커피였다. 대학생 시절에 마셨던 비엔나커피는 형편없었는데 그 사이에 맛이 발전한 건지 아니면 천사다방의 비엔나커피가 유독 맛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때부터 비엔나커피는 참 맛있는 커피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맥X 커피는 별로였네. 커피는 역시 비엔나지!
☆ 직장에서 만났던 원두커피
내가 원두커피를 마시게 된 지는 약 1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당시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 후 갓 부서 배치를 받아 근무할 무렵 내가 종종 놀러 가던 부서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처음 보는 기계가 있었다. 캡슐 하나를 위에 넣으면 아래로 진한 커피가 나오는 물건이었다. 직원 선생님께서는 그 기계를 캡슐 커피머신이라고 알려주셨다. 네X프레소 브랜드였는데 그게 원두커피의 액상 버전이라고 하셨다. 너무 신기했다. 세상은 넓고 커피는 다양함을 배웠다.
그곳 선생님들은 내게 직장의 역사와 직원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고, 내가 몰랐던 직장 분위기이며 노하우 등을 전수해 주셨다. 선생님들 모두 얼굴이 밝았고 웃음이 많았으며 이야기 공감 능력도 탁월하셨던 것 같다. 그분들이 내려주시는 커피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비엔나커피처럼 달콤하지는 않았지만 원두커피만의 진한 맛과 풍미, 그리고 감미로운 향기가 사무실과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래서 가끔 시간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천 원을 내고 얻어 마시곤 했다. 역시 커피는 원두커피지!
세월이 흐르면서 내 커피 기호와 맛도 변해갔다. 커피와 함께 스쳐간 사람들도 많았다. 커피를 앞에 놓고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많았고 함께 공유했던 주제와 세계도 다양했다. 모든 커피의 이름과 사람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그 정도로 내 기억력이 탁월하지 못하다.
내 최고의 커피는 사랑하는 와이프와 마시는 커피이다.
장소가 어디든지 어떤 커피를 마시든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지만 커피를 마신다고 커피에 취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면 그 사랑에 취하게 된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이 소중하고 그 분위기가 좋고 그 기억이 아름답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차는 테제베일까? 신칸센일까? KTX일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타고 가는 기차이다.
커피도 그렇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전지현 씨랑 마시는 커피가 아니다. 아이유 씨랑 마시는 커피도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이다.
열심히 일한 후 꿀맛 같은 휴가를 즐길 수 있다면 곧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 한잔하자고 데이트를 신청해 보자.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보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도 마셔보자.
커피는 역시 맥X, 아니 사랑이 담긴 커피가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