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양면성

행운보다 비전

by 행복 한바구니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 번씩은 키워봤을 그 열대어, 구피(Guppy). 영어로는 '거피'라 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구피로 발음이 된다. 4년 전에 다른 집에서 살 때 구피 암컷 3마리를 키웠고,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3마리를 어항에 담아 함께 이사 왔다. 그 후 4년이 지나는 동안 암컷 2마리는 죽고 딱 한 마리가 살아남아 독수공방 하며 4년간 우리와 함께 지냈다. 내가 아는 구피의 수평은 1~2년, 길어야 3년인데 지금 4년이 넘어가니까,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100세의 정도의 할머니 연세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어느 날, 구피 할머니가 혼자 외로워 보인다는 아이들의 말에, 지인을 통해 수컷 한 마리와 암컷 한 마리를 지난해 9월에 모시고 왔다. 당시 어린 암컷 새댁이 배가 불렀던 걸로 보아 임신했으리라 짐작을 하였는데, 결국 10월 말에 치어 15마리를 낳았다. 번식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그간 구피가 새끼를 많이 낳으면 우리 집에 항상 좋은 일들이 벌어졌기에, 우리 가족은 이번에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좋아했다. 무슨 좋은 일이 생겼을까? 아르바이트 비용 들어온 것? 교회에서 직분을 맡게 된 것? 혹시 몰라 퇴근길에 즉석복권을 긁어봤는데 꽝이었다.


일단 새끼를 무사히 낳아 줬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임신증세를 보이는 암컷은 따로 분리해서 다른 어항에 키워주고, 새끼를 낳으면 새끼들만 또 따로 분리해서 키워줘야 한다. 하지만 수초가 있어서 새끼들이 숨을 수 있기 때문에 적자생존 방식을 적용하여 함께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아래쪽에 치어들이 보인다. 지난주 아침 구피밥을 주려고 물끄러미 바라보니, 수초 바닥에 쪼그마한 치어들이 여럿이 보였다. 그렇다면?


할머니 구피가 새끼를 낳은 것이다. 구피 번식주기가 1달 정도 되고 새댁 구피가 나은 지는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새댁이 낳을 수는 없다. 현재 새댁은 배가 홀쭉한 상태이다. 이사오자마자 젊은 수컷이 암컷 할머니에게 자꾸 작업을 걸고 있었는데 그 정성을 할머니가 받아주신 것 같다. 이후 수컷은 오늘 아침에도 열심히 두 여성분들께 다가가며 구애를 하고 있다.


돌아보니 구피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것은 맞는 것 같다.

대출 이자가 하늘을 찔러 오르기 시작할 때 다행히도 우리는 이전 지인분의 도움으로 소개를 받은 은행에 비교적 저렴한 이자로 전환대출을 갈아탔다. 어제 경제 관련 방송을 보니 곧 이자율이 8%에 진입한다고 한다. 우리는 반 정도의 저리로 옮겼으니 그나마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 경우 우리는 좋은 지인과 좋은 은행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행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보통 가계 상황의 개선, 경제 수준 상승, 복권당첨, 큰돈 등을 상상하게 된다. 나의 경우 가계 상황의 개선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행운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있다.


지금 빚이 많아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에 갑자기 마트에서 즉석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약 5천만 원 상당의 자동차를 경품으로 받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현금이 아니라고 시큰둥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 차를 팔면 돈이 생길 수 있다고 좋아할 수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이 차를 인수하기 위해 제세공과금 22%에 해당하는 금액인 약 1000만 원을 납부해야 한다. 물론 종합소득세 신고로 일부 돌려받을 수는 있다.


행운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떤 이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분야에서 행운을 만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행운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배운 바로는,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내 경험상으로 볼 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하다.

우리의 긴 인생에 있어서 행운은 수십 번 이상, 매우 다양한 방향과 장소에서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그 행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운은 행운이 될 수도 있고 액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이 되어 30억 원을 받는다 하자. 내가 100억 원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과 그릇이 된다면 30억 원은 나에게 보너스 정도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그 사람은 30억 원을 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고 평소에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즉, 30억 원의 행운은 이 사람에게 생계나 경제생활에 보탬이 될지언정 운명을 바꿀 만한 액수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당장 현금 100만 원이 수중에 없어 힘들어하는, 월 200만 원을 벌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샐러리맨 상황에 놓여 있다면, 30억 원은 꿈의 숫자이자 당장 내 인생을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평생 30억 원을 운용해 보지 못한 사람이 30억 원을 수중에 넣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날부터 두려움과 의심에 사로잡혀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당장 일면식도 없던 복지재단의 전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형제, 자매들로부터 끊임없는 연락을 받을 수도 있으며, 부부간의 의가 상할 수도 있다. 당장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알지도 못하던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 쫄딱 망할 수도 있다. 복권의 맛을 알게 된 사람은 매주 복권을 사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다. 퇴근길에 우연이 돈을 주운 사람은 다음날부터 바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행운은 항상 양면성이 있다.




《러키》의 저가 김작가는 ‘행운을 바란다면 그 행운을 받아 들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행운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에라야 비소로 행운이라 불려질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다면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행이라 불릴 것이다. 우리가 블로그나 SNS를 열심히 하는 것도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다가올 행운을 거머쥘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턱대고 행운을 맞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행운을 감당할 정도의 그릇을 준비하자. 그 그릇은 행운을 통제하고 행운을 이끌 수 있는 '비전'이다. 행운보다 비전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비전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행운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비전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여기서 비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목표는 보통 실천가능하게 설정한다. 그리고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어찌할 것인가? 방향을 상실한 채 허무함만 남지 않으려면 비전이 있어야 한다.

비전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진정한 가치 추구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 주는 삶의 원칙이다.


내가 처음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잡았을 때, 온라인 이웃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느 이웃님의 소개글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다. 그분에게는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넘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행복한 부자'라는 비전이 있었다. 가슴에 큰 울림이 있었기에 그 후 나도 비전을 윗분과 동일학 경제적 자유를 이룬 후 이웃에게 나눔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행복한 부자가 되는 것으로 삼았다. 그러자 이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비로소 내가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짐을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이웃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소망한다. 부자가 목표인 것은 좋으나 그 목표 안에서 안주하지 말길 바란다. 부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늘도 나만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보자.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우리의 비전은 항상 가슴속에 담아두고 목표가 흔들리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가끔씩 꺼내어 보자. 이를 통해 흔들리는 방향키를 확실히 붙들기를 바란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여 힘든 시기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는 교훈을 잊지 말고 우리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성공이라는 종착역이 머지않아 우리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행운보다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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