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성장한다.

행복하기 위한 성장

by 행복 한바구니

바람이 많이 부는 새벽 아침.

아빠는 알람 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방을 나가 조용히 딸의 방으로 들어간다.

꿈나라에 있는 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나지막이 생일 축하의 말을 건넨다.

인기척에 살짝 고개를 움직였다가 이내 다시 잠에 빠지는 딸.

아빠는 딸의 이마에 살짝 뽀뽀를 해주고는 조용히 뒷걸음쳐 나온다.



딸이 기숙사 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평일에는 딸아이의 생일 축하를 해 줄 수가 없다.

다행히도 개교기념일과 행사가 겹쳐 월요일과 화요일에 딸의 학교가 휴교를 하였다. 그래서 생일 당일인 월요일 저녁에 생일파티를 해 줄 수 있었다.


생일 저녁 퇴근을 마칠 즈음에 딸아이를 잠시 즐겁게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후 차를 주차시킨 뒤 집에 곧바로 가지 않고 동네 꽃집으로 향했다.

사장님께 딸아이 꽃다발을 작게 만들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 사이 재료값이 많이 올라서 같은 값으로 만들 수 있는 꽃의 크기가 확연히 줄었다. 나는 너무 화려한 꽃을 싫어하여 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만 만들었다.

최근에 딸에게 꽃을 선물할 기회가 없어 딸의 반응을 알 수가 없었지만, 그냥 아빠의 깜짝 선물이라고 받아 주길 바라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마침 딸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옳다구나 하고 조심스레 꽃다발을 내밀었다.

"와!"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딸.

"오다 주웠다"라는 흔한 말로 쑥스러움을 면하는 아빠.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니 딸이 열심히 꽃 사진을 찍고 있다. 오랜만에 딸에게서 소녀의 모습을 본다. 저녁 준비를 하는 내내 우리 딸은 작은 꽃다발 하나를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하면서 한참을 분주히 움직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큰 꽃을 준비해 줄걸. 작은 후회가 밀려온다. 엄마는 저녁에 중요한 모임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오늘은 아빠가 딸아이를 위해 저녁상을 준비했다.


아빠표 계란말이를 만들고 고기를 볶았다. 엄마가 끓여 놓은 미역국을 잠깐 맛보았다. 음... 역시 맛있다. 엄마는 고수다. 대충 만들어도 감탄사가 나온다. 절정의 고수임에 틀림없다. 메인 요리와 보조 요리를 모아 식탁을 차린 후 아들과 딸을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전에 약속한 대로 교X 치킨 허니콤보를 주문했다. 보통은 윙콤보를 주문하는데 딸은 허니콤보를 좋아해서 오늘은 원하는 대로 허니콤보를 시켜주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니 엄마가 왔고, 잠시 후 치킨도 도착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식탁에 케이크 세팅을 시작했고 나이대로 양초를 꽂았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생일 축하 노래를 아카펠라(?)로 불러준 후 딸은 소원을 빌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주시고 행복하게 해 주시고 구원받고 천국 가게 해 주세요."

중학교 시절에는 생일 소원을 말할 때, '용돈 많이 달라. ', '성적 올려달라.' 등으로 빌곤 했는데, 이젠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빌고 있다. 내적으로 성장한 모습이다.


아들과 딸이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해 주던 말이 있다. ‘신체가 성장하는 만큼 정신도 성장하도록 노력하자.’

이는 자녀의 빠른 신체 발달에 따른 내외적인 불균형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도록 정신적 성장의 노력을 주문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각종 양서를 많이 읽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 집 가훈은 '삼사일언(三思一言)'이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 는 의미이다. 생각을 깊게 하고 경거망동하지 말 것이며 할 수 있는 대로 실수가 적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도 스며져 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남을 도우며 살라'는 인생의 지침을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셨다. 부유하지 못한 가정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웃분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돕고 싶어 하셨다. 곁에서 지켜봤던 어머니는 욕심을 부리지 못하여 늘 손해를 보시곤 하셨지만 얼굴엔 항상 웃음이 살아있었다. 그러시면서도 나에게는 늘 '네 밥그릇은 꼭 챙겨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시는 삶을 사셨다. 엄마 게가 자녀에게는 앞으로 걸으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옆으로 걷는다지 않는가?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부모의 뒷모습은 부모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부모의 발자국은 자녀의 걸음을 인도한다.


부모는 자녀가 몸과 마음이 고루 균형 있게 성장하길 기대한다. 수많은 비용과 수단을 투자하며 자녀의 성장을 위해 돕는다. 그런데 그 부모는 왜 본인의 성장을 위한 투자를 많이 하지 않을까?

일 때문에 바빠서, 피곤해서, 사교모임 때문에, 회식으로 인해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정작 본인의 성장을 위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열심히 본다. 아빠는 퇴근 후 피곤하다면서도, 어제 게임 접속을 못 하는 바람에 레벨이 낮아졌다고 불평을 한다. 엄마는 TV 드라마를 보며 세상 크게 웃기도 하고 어느샌가는 또 휴지를 옆에 놓아두고 서럽게 울어대기도 한다.

자녀가 성장하는 속도를 부모가 따라잡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면 자녀와의 거리가 생기게 되고 이는 나중에 자녀와의 소통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어그로', '띵작', '갓생', '알잘딱깔센', '캘박' 등과 같은 단어는 MZ 세대에게는 흔한 말이지만 베이비부머나 X세대인 부모들은 해석이 불가능한 단어들이다. 이런 표현들을 처음 접한 기성세대들은 환영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 보이곤 한다. 좋은 우리말을 두고 이상한 말만 써댄다고 불평을 해 댄다. 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 때에도 그 이전 부모들이 못 알아듣는 단어를 쓰진 않았을까?


우리 세대에는 영어와 한글을 혼용하였던 것 같다. '엘레강스한데?, '타이밍이 좋았어', '넌 매너가 너무 더티해', 이런 식이다. 이런 표현들은 당시 우리들의 부모님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따라서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오히려 이런 말들을 써가며 기성세대에 비해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역사는 반복하고 세대는 이어진다. 요즘 MZ 세대 간에도 인식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학생들 세대와 20대 사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하니 말 다 한 것이다. 그만큼 시대가 빠르게 지난다는 의미이다. 요즘 부모들 중에 M본부나 S본부의 음악방송에서 1위에서 3위까지의 노래를 꿰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부모와 자녀는 동반성장해야 한다. 긍정적인 소통을 위해 필요하고 세대 간 경험과 지혜의 전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절차이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 지래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후배 세대들은 기성세대를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해 준다.

우리 아들이 말했다. X 세대며 MZ 세대라는 용어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매체나 기업의 상술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 본인들은 자주 쓰지도 않는 표현이라고 한다. 의외의 말이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에 놀라지 말자. 신조어의 등장에 거부감을 느끼지 말자. 시간을 조금 들여 익히고 알아듣게 되면 그만이다. 그저 우리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귀찮아서, 그리고 기존의 문화에 익숙해진 것이 편해서 하지 않을 뿐이다. 자녀는 자녀이고 부모는 부모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스스로의 선입견으로 젊은 세대를 호도하지 말 것이며, 자신만의 세계관에 갇혀서 젊은이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단지 자신들이 '더' 선호하는 문화, 지식을 선택해서 그것들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 휴일을 맞아 와이프와 함께 룽고 커피를 한잔 하며 김창옥 교수의 강연을 유튜브로 보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아이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각자의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다. 그리고 오늘 내 최고의 선물은 나 자신이다.

오늘도 나 자신을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Cover image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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