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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Nov 16. 2024

나는 내가 여자를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

들어가는 글


안녕

거긴 아직도 흐리니

아직도 수많은 까만 뒷통수들이 개미 떼처럼 하늘처럼 아득한 바닥을 향해 달리고 있니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중성적인 얼굴 혹은 중성적인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

굳은 표정에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목소리 혹은 그 반대

지금쯤 너는 약을 먹고 있을까 거부할까 아니면 여전히 카페인 중독일까


페탈 대신 암흑을 피워내던 너의 낮

청춘이 꽃이면 너는 이미 뿌리부터 썩은 시체

그런데 왜 나는 너를 좋아했을까

찬찬히 뜯어보고 들이쉬고 선망하고 눈에 담으려 했을까

마치 꽃을 보는 것마냥


너는 장마인데

너랑 있으면 이상하게 춥지가 않았어

너는 차가웠는데

너를 맞으면 기묘하게 따뜻했어


지금쯤 너는 네일을 다시 칠하고 있을까 긁어내버렸을까 아니면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일까


안녕

여긴 아직도 파래

아직도 네 방이 남겨진 채 네 향이 짙게 퇴적하고 있어 마치 이곳 해변의 시커먼 바위 절벽처럼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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