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뒤쪽 산, 절이 있는 쪽으로 산책을 했다. 작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내용은 ‘집중호우, 태풍시 산사태 우려가 있으니 통행을 자제해 달라’는 권고내용이었다. 이 현수막을 보니 불안감이 몰려온다. 지난해 폭우로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와 공사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여 산사태 우려에 대해 언급했다. 그들의 반응은 그다지 공감적이지 못했다. 내가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우려가 아니었다. 지자체도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토사가 흘러내리 않기 위한 방법(경사진 면에 나무 심기)을 구청직원에 말해주고 싶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누군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말해주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공무원이 안다면 미연에 발생하는 문제를 조금이나 방지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용기를 내었다. 공무원도 그 문제점을 알고 있었고, 거기는 개인 사유지로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주민의 목숨과 재산에 관련된 것이니 국가에 건의하여 문제를 대비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고맙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듯싶다.
10층에 살고 있으니 문제는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 나 타버리는 것도 아니고, 문제 있어도 저층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그게 '인간'이다. 그게 '나'이다. '동물'이다. 생존의 본능이다. 나쁘다, 선하다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분별에서 오는 괴로움을 벗어나본다.
산사태가 날만 하면 날 것이다. 내가 겪어야 할 일이라면 일어난다. 그때 가서 생각하자. 오늘 산 쪽으로 산책하면서 그 뭐라 말할 수 없는 순순함, 깨끗함. 평온함, 온화함을 울창한 숲에서 느낀다. 이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우리 아파트를 지켜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체적인 우주,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일 듯 싶다.
지금 지구상에 전쟁, 자연재해로 인간은 물론 살아있는 생명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눈뜨고 일어나면 아침 뉴스를 보면 사망기사를 어김없이 접하곤 한다. 우리는 단 몇 줄의 말로 그 내용을 알고 감정적인 안타까움이 잠깐 일어나다 사라질 뿐 별관심이 없다. 내 일상에는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당사자 가족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 시간이 흘러가야 상처는 아물 듯싶다. 난 믿는다. 죽었지만, 살아있다고, 살아있지만, 죽었다고, 그래서 크게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음을 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