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만두사모님

두 발로 서있는 법

by 다소니Rino


-정주연-


주연이 출근 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연은 어느새 적응이 되었고 고객들과의 만남과 소통이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파트너사 직원들과도 어느새 친해져 점심식사 후 짧게 티타임도 즐겼다.


“주연 씨는 다른 일 할 생각은 없어? 아니~ 이 시골촌구석에서 마트에 근무하기엔 너무 아깝잖아~ 내가 주연 씨라면 난 이런 일 안 하고 다른 일 할 거야! “


커피를 마시던 미영사모님이 주연에게 안타깝다는 어투로 말을 이어간다.


“그러지 말고 전에 하던 병원일을 다시 하던지, 아님 번듯한 회사에 취직해서 멋지게 살던지. 내가 볼 땐 마트에 짱 박혀 있기엔 너무너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야~”


미영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무섭게 만두시식을 하는 선주사모님이 말을 이어갔다.



“야. 이런 일이 뭐 어때서. 마트에서 일하는 게 뭐가 그렇게 부끄럽다고. 주연 씨가 어린 나이도 아닌데 다 생각이 있으니 이 일을 하는 거지~ 남의 일에 감나라 배나라 간섭들 하지 말고 신경들 끄셔! 주연 씨! 신경 쓸 거 없어 커피나마셔! “



화끈한 말투만큼 시원시원한 성격 덕분에 만두시식 때도 고객들에게 시식용 만두를 화끈하게 뿌리셔서 업체에 경고를 받으신 적이 있다. 만두반쪽 먹어보고 어떻게 사느냐고. 적어도 두어 개 집어먹어봐야 맛난 줄 안다고. 애들이며 어른들이며 실컷 먹어보고 사라고. 먹는 걸로 쩨쩨하게 굴면 복이 나간다고.



주연은 화끈하고 화통한 선주사모님께 빚을 진적이 있었다. 때는 출근 한지 2주쯤 지났을 때 직원용 화장실을 이용하던 중 주연의 귀에 이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얘 와인직원얘기 들었어?”


“무슨 말???


“와인직원 서울에서 이혼하고 내려와서 혼자 사는 거래~~ 남편 몰래 도망 다니나 봐~ 애도 있다던데? “


“어머어머 진짜야??? 어쩐지~ 연고도 없는 이런 시골로 혼자 내려와 산다고 할 때부터 좀 이상하다 했어~”


“베시시 웃을 때도 좀 야해 보이지 않아? 남자 여럿 홀렸을 거 같이 생겼잖아~ 바람나서 이혼당한 거 아니야? ㅋㅋㅋㅋ “


“내 말이~ 어휴~ 혼자 도망 다니면 참 괴롭겠다 걔도~ “



주연은 화장실 맨 끝칸에 앉아 저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당장 박차고 나와서 아니라고 해명도 하지 못하고 누가 그러더냐고 따지지도 못한 채 가만히 숨죽여 앉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꼭 쥔 채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선주사모님의 당차고 화끈한 한마디가 들려온 게.



“지랄도 풍년이네. 야이 망할 년들아 니들이 봤어? 니들이 봤냐고. 와인직원이 서울에서 이혼도장 찍는 거 봤어? 남자 홀려서 남편한테 쫓겨난 거 니들이 봤냐고! 할 일도 어지간히 없다 없어. 사람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지껄이면 니들 새끼들한테 그 업보가 고스란히 간다 이년들아~ 적당히 하고 나가서 일해 이년들아!! “



주연은 화장실에 콕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다. 눈물이 쏙 들어갈 만큼 놀랐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주연은 감사함이 밀려왔다.



‘누구실까. 그분은…‘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되어서야 주연은 그 영웅 같은 사모님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냉동만두코너 앞에서 카랑카랑하고 당찬 목소리를 듣고 주연은 단번에 그분을 찾을 수 있었다. 냉동만두시식행사자이자 어림잡아 60대 전후에 멋들어진 백발, 빨간 립스틱을 바르신, 언뜻 보기에도 한 성격 하실 걸로 보이는 카리스마 있는 사모님이셨다. 주연은 선뜻 다가가 ‘그때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어떻게 전해야 할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어영부영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아, 결단코 사모님의 기에 눌려서가 아니다.


주연과 일명 만두사모님인 선주사모님의 인연이 제대로 시작된 건 혜민 시 읍내에 있는 아름드리서점에서였다. 주연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아름드리 서점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들어서는 순간 낯익은 얼굴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와인아가씨 아니야? 책 사러 왔어~?”


“아.. 안녕하세요 사모님”


“어이구~ 여기서 보니 또 반갑네~^^ “



만두사모님은 계산대 안쪽 의자에 서점 주인 사모님과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한눈에 봐도 서점의 주인사모님과 만두사모님은 꽤 깊은 친분이 있어 보였다.



“우리 젊은 아가씨랑 언니가 아는 사이였어?^^”


서점 주인사모님은 그 특유의 배시시 방그르 웃는 얼굴로 주연과 만두사모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알다마다~저 아가씨가 우리 마트의 꽃 아니냐~ “


“어머~ 그렇구나~ ^^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여기 와서 앉아 아가씨! 같이 커피나마시자구~ “


“아;; 괜.. 괜찮아요 전..”


그때였다. 만두사모님의 버럭 하신 건.


“이리 와 사양 말고. 와서 커피 얻어마셔! 서점 커피 맛나 아주~ 아이 뭐 하고 서있어! 이리 와 앉아 어서! “


서점 주인사모님과 만두사모님의 적극적인 구애로 주연은 어쩔 수 없이 계산대 안쪽 긴 원목의자에 사모님들과 나란히 앉아 커피를 얻어 마시게 되었다.


그때, 만두사모님이 커피 한 모금을 홀짝 거리며 주연을 흘깃 쳐다보시더니 주연의 응얼이진 마음 한구석을 보드랍게 어루만져 주셨다.



“와인아가씨. 아줌마들 때문에 더럽게 힘들지? 가뜩이나 일도 더럽게 힘든데, 마트 아줌마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니 더럽게 힘들지? ㅎㅎ 그냥 그러려니 해. 이런 시골촌구석에 아가씨 같은 낯선 이방인이 찾아와 터를 잡으려 하니 아줌마들이 유치하게 텃세 부리고 싶어 그러는 거야~ 그저 궁금한 거야 아가씨가. 그러니까 아줌마들 말에 한마디한마디 반응할 거 없어. 알았지? “


“.. 아… 알고.. 계셨어요?”



주연은 낯선 이방인인 저를 다른 사모님들과는 달리, 아무 거리낌 없이 살갑게 대해주던 만두사모님이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말았다.



“에구~ 속앓이가 심했네 심했어. 내 말 한마디에 눈물이 고인걸 보니. ㅎㅎ 어떻게 몰라. 내가 그 아줌마들 사이에서 짱이야!. 나이도 짱! 욱하는 것도 짱! 내 허락 없이는 먼 짓거리도 못해!! ㅎㅎ 그 말인 즉, 아가씨에 대한 무성하고 괴기한 소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지. 와인아가씨. 무슨 일이 있던지 간에,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져. 그러니까 아가씨의 대해 조금도 책임져주지 않을 사람들의 말은 그저 흘려들어. 칼날 같은 말들에 베일걸 알면서도 마음을 내어주는 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라고~ “



만두사모님의 하얀 백발, 빨간 립스틱을 바른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연의 베인 상처들 하나하나에 연고를 발라주셨다.


서점 주인사모님은 주연과 만두사모님의 얘기를 가만히 들으시고는 당장 마트에 찾아와 주연을 괴롭히는 아줌마들 목 울대를 쳐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는데, 만두사모님과 주연 그 말에 웃음이 나와 한참을 깔깔깔 웃었다. 고상하고 우아한 주인사모님의 입에서 울대를 쳐 올린다니.. 주연은 두 사모님 사이에서 오랜만에 편안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마음껏 지어 보일 수 있었다.


주연과 만두 사모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종종 서점에서 만나 같이 커피도 나눠 마시고 책의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주연의 속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아주 가까운 사이이자, 주연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셨다. 마트에서 주연을 괴롭히려 드는 사람들이 종종 보일 때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 주연을 지켜주셨고 그 사람들에게 뼈가 아플 만큼 욕으로 호통을 치시곤 했다.


한 달 동안 마트를 근무하면서 말도 탈도 많은 일들은 자잘 자잘하게 있었다. 하지만 주연은 크게 생각지 않으려 애썼고 만두사모님 같은 행운의 인연을 만난 건 결국 나쁜 일만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교훈까지 얻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 주머니에 똑같은 양의 흑돌과 백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흑돌이 계속 나오게 되면 너무나 시리고 아프지만 결국 백돌은 내주머니에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되고 언제가 그 백돌을 꺼내게 되는 날이 온다고. 그러니까 나쁜 일만 죽어라 일어나는 법은 없다. 결국엔 그만큼 , 아니 곱절로 좋은 일들이 찾아온다. 주연은 생각을 그리 고쳐하니 자신의 대한 어이없는 소문에도 더 이상 움츠려들 지도 삐그덕 거리지도 않았다. 주연은 힘주어 두 발을 딱 붙이고 서 있는 법을 그렇게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