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무언가.
-정주연-
“안녕하세요 고객님^^ 와인 둘러보고 가세요~ 오픈 이벤트 행사와인도 많답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
주연은 와인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 한 명 한 명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며 와인을 추천했다.
“아가씨 나 와인하나 추천해 줘요~”
60대 중년의 여성이 주연에게 말을 건넨다. 카트 안에는 5~6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고 주연을 향해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 어머.. 애기가 너무 귀여워요 ~ 안녕?”
주연은 남자아이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아이는 더 방긋 웃어주었다.
“요노무자식~ 이쁜 이모 보니까 좋은가 보네! 방긋방긋 아주 잘도 웃어~”
중년의 여성은 웃으며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 고객님 어떤 와인이 필요하세요? “
“음.. 오늘 저녁, 가족 모임이 있어요 나랑 우리 며느리가 마실 와인인데 우리 둘 다 술은 잘 못해요. 약하면서 맛있는 와인 있을까요? “
주연은 도수가 낮으면서 가볍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모스카토, 디저트 와인을 추천했다.
“음.. 달콤한 디저트 와인은 어떠실까요? 가볍게 드실 수 있으실 거예요 도수는 5%, 맥주정도 보시면 되시고요 산뜻하고 잔잔한 기포의 탄산감과 달콤함이 오늘 저녁의 마무리를 아주 완벽하게 해 드릴 거예요~ ^^ “
“어머나! 좋아요 ㅎㅎ 나 그걸로 한 병 줘요! “
중년의 여성은 주연의 추천이 꽤나 만족스러운지 냉큼 집어 카트에 넣어버렸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 드시기 전에 냉장보관이나 아이스바켓에 담아두었다 시원하게 드세요 ^^”
“호호호~ 그래요~ 고마워요 아가씨~ 담에 또 올게요~ 김주원~ 이쁜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카트 속 작은 꼬마는 주연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해주었다.
주연의 첫 영업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주연은 기뻤다. 1만 5천 원 와인 한 병으로 주연도 고객도 각자 만족스러운 10여분의 시간을 보냈음에.
‘생각보다 더 즐겁다. 병원에서 만났던 고객들과는 달리 이곳에서 만나는 고객들은 사람냄새가나. 나 아무래도 직업을 잘 선택한 거 같은데?ㅎㅎ'
주연은 와인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와인들을 추천도 해드리고 찾는 와인이 있다면 기꺼이 찾아서 드리기도 했다. 선물을 원하는 고객들이 있다면 선물 포장까지 깔끔하게 해 드리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장일을 열심히 했다.
-이도진-
도진은 오전 물류가 내려오기 전까지 음료주류 매장에서 고객들 응대 및 매장진열을 서둘러했다. 가오픈이라 행사품목들이 많았고 그만큼 매장이 뻥뻥 뚫려 업체 직원들 및 마트직원들은 진열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때 도진 눈에 들어온 주연.
주연은 와인매장에서 연신 웃으며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창고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무거운 와인박스도 거침없이 들고 진열하고 판매하고. 의외로 싹싹한 주연의 모습에 도진은 살짝 놀란 듯싶었다.
‘생각보다 열심히네. ‘
도진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주연은 그렇게 잘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영업이 잘 맞는 듯싶었다.
‘지금처럼만 잘 해내면 좋을 텐데. ‘
때마침 매장을 오가던 점장은 도진을 불러 세웠다.
“도진주임님 잠깐 이쪽으로 오세요"
“네 점장님. 말씀하세요"
“도진아. 물 팔레트 좀 채워주고 엔드에 깔린 수입맥주랑 연관진열상품 신경 좀 써야 되겠다.”
“네 알겠습니다. “
“아 그리고.”
“다음 달 발령 있을 거다. 선화가 우리 점포로 올 거야. 알고 있어라.”
“… 아. 네"
“괜찮냐?..”
“네. 상관없습니다. 다 지나간 일인데요.”
“그래.. 수고해라.”
점장은 도진에 어깨를 몇 번 토닥이고서는 자리를 옮겼다.
점장은 도진과는 꽤 가까운 사이였다. 도진이 서초점 양재점 있을 때부터 같이 일하던 선후배사이였고 점장이 차장진급되면서 현재 점포 점장으로 발령받아왔다.
점장은 도진과 선화사이를 굉장히 응원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사실상 그 둘을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힘써준 것도 점장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이별소식에 가장 마음 아파했던 사람도 점장이었다.
해서, 선화의 발령소식에 점장은 적잖이 놀랐고 잠시 망설이다 도진에게 가장 먼저 일러주었다. 그게 선배로서 상급자로서, 도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이라 생각했다.
도진은 멀어지는 점장을 뒤로하고 시키신 일을 하러 후방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물 팔레트가 있는 음료창고로 들어가 전동핸드자키를 잡던 중 점장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선화가 우리 점포로 올 거야. 알고 있어라.’
도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가볍게 털고 일에 집중하려 전동핸드자키를 다시 잡았다.
1.5L 물이 가득 실린 팔레트를 끌고 나가려던 찰나, 주연이 창고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주임님. 여기 계셨네요. 저 와인 좀 찾으려고요.^^”
“네.”
“아.. 네.. 그럼.”
“정주연 씨?”
그때 도진 뒤로 급하게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도진이 주연을 불러 세웠다.
“일은 할만하세요?”
주연은 의아한 눈으로 도진을 올려다보았고 금세 활짝 웃어 보였다.
“네!^^ 재밌어요. “
“다행이네요. 매장에 문의 있으면 제가 안 보이더라도 직원들에게 바로 말씀하세요.”
“네 ^^ 그럴게요! 아… 저 그리고… 주임님.”
주연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머뭇거리다 도진을 한번 올려다보고서는 말을 이어갔다.
“저 열심히 할게요. 지금은 못 미더우시겠지만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 ^^”
주연의 의외에 말에 도진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런 주연이 내심 기특하기도 했고 힘들 법도 한데 재밌어한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몸 사려가며 일하세요. 아프면 본인만 고생이니까. 다치지 않고 일해주는 게 저한테는 가장 고마운 일이니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도진의 말에 주연은 짧은 대답을 하고서 다시 한번 빙그레 웃어 보였다. 도진은 주연의 미소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외모는 도시적이고 새침할 것 같은데 의외로 부드러운 미소와 그의 어울리는 반달눈, 그리고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 뒤에 명확한 발음은 듣는 이에게 편안함 마저 주었다.
그래서일까. 도진은 그런 주연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냥. 신기하잖아. 마트에선 볼 수 없는 케릭 터니까. ‘
도진은 그런 본인이 스스로 신기했는지 희미한 웃음까지 지었다. 그리곤 서둘러 점장이 시킨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매장으로 향하던 중 화물엘리베이터에서 물류를 나르던 검품장 파트장과 마주쳤다.
“어이 이도진이~ 오랜만이다? “
“네 선배. 오랜만이에요.”
“여자친구는? 아직 없나? “
“ 뭐 그렇죠. “
“니는 얼굴은 멀쩡하게 생기가꼬 하는 짓은 와글노? 나이 금방 묵는다이. 곧 불혹이고 눈깜빡하면 지천명이다이~ “
“ ㅎㅎ 네 알겠어요. 형수님이랑 애들은 잘 있죠?”
“내야 뭐 ㅎㅎ 똑같지. 도진아. 사는 거? 그거 진짜 별거 없더라. 혼자도 좋지만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게 그리고 내 새끼들이 있다는 게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진짜데이~ 그니까 니도 마음 고쳐먹고 언능 장가가라 임마. “
검품장 파트장으로 발령받은 김창환대리. 진급을 꿈꾼다면 기피하는 부서 1위인 검품장, 그곳으로 발령 났다는 건 더 이상의 진급은 없다는 말과 함께 버려진 카드라는 말과 같다. 본가는 부산인데 이곳 시골 촌구석 혜민시까지 발령이 났다는 것은 알아서 회사에서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과도 같으니. 만년대리의 서글픔과 애잔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부서라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30여 년간을 충성을 다했던 회사에서 더 이상 자신의 쓸모와 가치가 없음을 이런 식으로 알려올 때 대게 사람들은 그만두려 하겠지만 집에서 자신만 바라보는 아내, 자식들을 생각하면 자존심이 아무리 상해도 그만둘 수 없는 게 바로 40대 후반에 만년대리, 우리네 아버지 아닐까.
도진은 10여 년 뒤면 자신에게도 닥쳐올 미래라는 걸 잘 안다. 자신의 능력을 다한 결과물, 미친 듯이 그 성과를 보여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어 점장이 되고 지역장이 되면? 그러고 나면? 도진은 과연 행복할까?
도진은 자신이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 깊은 곳에서 나지막이 들려온 그 질문의 대한 답을 조심스럽게 찾고 싶어졌다.
‘지켜야 할 무언가 생긴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