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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Feb 02. 2024

방학에는 식판 밥으로~

긴 겨울방학이 무섭다.

중2 남자 쌍둥이의 식사가 무섭다.

육류가 들어가지 않으면 한 끼 식사가 아닌, 한참 먹어대는 티라노 녀석들의 무서운 방학이다.


쉬는 날이면, 부지런히 마트를 가야 한다.

집 근처에 마트가 세 군데 있는데, 재료와 가격이 조금씩 다르니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아야 돈도 아끼고 좋은 식재료를 건질 수 있다.

품질 좋고 저렴하면서 중2 입맛에 맞는  것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요즘 물가는 미쳤단말이다.

아끼고 고심해서 발발 떨면서 조금만 담아도 십만 원을 우습게 넘기니 말이다.

그렇게 사 와도 늘 부족하다. 수시로 쿠팡의 로켓을 가동시켜야 하고, 출근해서는 식후에 촐촐하다는 녀석들의 전화에 배달의 민족의 후예가 되어야 한다.


방학이 없는 직장맘은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긴 겨울이 무섭다.

매일 끼니 준비로 인한 노동력과 지출이 무섭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녀석들은 집에서 계속 먹어댄다.

여친도 없는 녀석들은 강쥐들이랑 집귀신이되어 계속 먹어대니, 어디 녀석들의 위장을 따라 갈 제육볶음 많이 주는 근처 함박집을 뚫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이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겠는가.

그런데 뚱마가 늦잠을 잤다.

큰일이다.

이교대로 근무하는 뚱마가 오후 근무라고 전날 애들이랑 시리즈물을 실컷 보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잤더니 결국 늦잠을 잤다. 오십 대가 십 대가 같이 놀려고 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한 시간 안에 녀석들의 식사와 출근준비를 마쳐야 한다.

수년간 단련된 슈퍼울트라 원더우먼 직장맘의 스피드를 발휘할 시간이다.




쌀 두 컵 취사를 누른다.

소분해 둔 미역국은 약불로 데운다.

그 사이 후다닥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카락 수건으로감싼 채 다시 불 앞으로 복귀한다.


식판을 두 개 준비한다.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는다.

냉장고에서 계란 두 개, 먹다 남은 감자볶음, 전날 쿠팡에서 반짝 세일로 주문한 불고기를 꺼낸다.


먼저, 계란 프라이를 해서 식판에 옮긴다.

그 프라이팬에, 감자볶음을 급속으로 볶아 식판에 옮긴다.

또 그 팬에, 불고기에 다진 마늘과 매실액을 약간 부어 달달하게 볶아 식판에 옮긴다.

그 사이 커피 한잔은 필수니, 커피머신을 켠다.


어느새 취사가 뜸 들인다고 치이익~ 9분이 남음을 알려준다.

잠시 커피 한 모금의 여유를 땡긴다.

식탁 위에 수저와 물을 세팅하고, 급식이들의 필수인 후식으로 과일과 두유를 놓는다.

미역국과 밥을 식판에 담아 완성된 식판을 내놓으니 그럴듯하다.


“ 얘들아, 밥 먹어~”.

“ 네, 우와~ 급식이 밥이다, 맛있겠다.”

여드름 투성이에 까칠한 지호를 ’ 감자아가씨‘라고 지한이가 부르기 시작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먹던 반찬이더라도 급식판에 준비하니 진수성찬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이 급 몰려온다.

학교에서 먹는 급식판을 보고 좋아한다는 건 학교생활이 행복하다는 거겠지.

정말 다행이다.



식사 준비를 끝냈는데도 20분의 출근 준비시간이 있다니, 나란 여자 역시 프로페셔널한 직장맘이다.


남은 커피 원샷 때리고, 여유 있게 머리 드라이하고, 잡티 가리고, 마스카라 올려, 직장인 모드로 변장하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웬일로 강쥐들이 단체로 배웅해 준다. 아~ 이놈의 인기!


‘앗! 간식‘


“ 아들~ 강쥐 냠냠이 줘라~.”


냠냠이란 말은 기똥차게 알아듣고, 뚱마고 뭐고 식탁 쪽으로 날아가는 녀석들.

에고, 개나 사람이나 이렇게 보살펴 키워주는 뚱마의 희생을 알려나.

겨울 방학이 길다.

꽃 피는 3월에 개학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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