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의 스포츠 사랑
운동광 지호는 TV 프로는 런닝맨만 보고, 경기장은 축구장만 찾고, 실전 운동은 배드민턴만 한다. 중3인데 운동에만 미쳐? 공부는 벼락치기 시험공부만 한다. 스포츠 사랑의 반의 반만큼만 수학을 사랑했더라면 특목고는 너끈히 갈 수 있을 텐데, 사춘기에 이성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운동에만 열정을 쏟아붓는 이상한 녀석이다.
작년 겨울부터 지호가 너무 뚱뚱하다며 살을 빼겠다고 스스로 운동을 시작했다. 뚱마 눈에는 통통하고 귀엽기만 한데 녀석은 독하게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 무려 10kg을 빼고 키는 배드민턴의 점프 덕분인지 반에서 두 번째로 큰 지한이를 곧 따라잡을 것 같다. 이제는 너무 말라 보여 뚱마는 애가 쓰인다. 저러다가 픽 쓰러질까 걱정을 늘어놓자, 지호가 일침을 가했다.
" 우리 집에서 나만 내장 지방이 없는 거 알아요? "
참 기분 나쁘게 맞는 말만 하는 까칠한 녀석이다. 그런 지호와는 모든 게 다른 지한이는 뚱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게으르고 느림을 추구한다. 지호는 우리 쪽이 아니건 확실하다. 우린 INFP 지호는 ISTJ
코로나 때 집 앞 배드민턴장에서 뚱마가 처음으로 가르쳐준 배드민턴의 매력에 푹 빠진 지호가 학교 동아리 활동부터 학교대표로 대회까지 나가는 배드민턴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방학인 요즘 파리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경기가 자주 중계되자, 아주 신이 났다. 라켓까지 들고 거실에서 경기하는 선수의 스윙까지 흉내 내면서 방구석 응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 엄마, 역시 구기종목은 배드민턴이 최고인 것 같아요. 움직임도 제일 많고 너무 멋있어요. "
" 그래? 엄마는 그래도 탁구가 더 재미있는 것 같은데. "
" 엄마, 탁구는 너무 순식간에 끝나서 배드민턴에 비하면 체력소모도 적고 재미도 별로예요. 저 봐요 배드민턴 선수들은 쓰러지면서까지 라켓을 던지는 파워풀한 장면을 보면 대박 멋지지 않아요? "
사실 지호가 6살 때 지인의 탁구장 오픈식에 데리고 갔었다. 청소년 국대 출신의 뚱마 아니, 지인이 지호에게 탁구라켓을 쥐어 주면서 가르쳐 줬는데, 처음 라켓을 잡아 본 꼬마가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공을 넘기지 못하는 것에 약이 올라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고 운동선수로는 절대로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일등 외에는 다 패배자인 냉정한 스포츠 세계에서 지호처럼 까칠한 녀석이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너무 비판적인 섣부른 판단 실수였나, 이리도 운동을 사랑할 줄 알았다면, 지인의 권유를 받았을 당시에 시켜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든다.
뭐든지 지호와는 반대인 지한이는 승자가 나와야 하는 운동경기를 극혐한다. 지난번 아시안게임에서 배드민턴 경기의 어마한 접전을 마치 공포영화 보듯이 가슴 졸여한 이후로 이번 올림픽은 아예 무신경으로 일부러 보지도 않으려 한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방학을 지한이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탱자탱자 백수처럼 에어컨 그늘 아래서 빈둥대고 있고, 지호는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피서를 즐기고 있다. 그럼 뚱마는?
" 지호야, 엄마 이틀 쉬는데 오래간만에 캠핑 갈까?"
" 무슨 소리예요? 사상 최대 성적이 나올 것 같은데 경기 응원해야지 어딜 가요. "
" 지호야, 을왕리에 대왕갈비 짬뽕이 끝내준다는데 먹으러 갈까? "
" 안돼요. 이따가 배드민턴 혼합복식 응원해야 해요. "
무더위에 T.V가 쉬지도 못하고 열을 내고 있다. 사실 우리 집은 주말 외에는 T.V를 잘 보지도 않는데 말이다.
저녁을 뭘 해 먹나, 방학이라 녀석들의 식대가 어마하다. 고기가 또 떨어졌다. 고기 없으면 반찬 취급을 하지 않는 녀석들을 위해 마트를 가야 하는데 삐약이 신유빈이 8강전 경기를 시작했다. 시원시원하게 서브를 잘도 넣고 백핸드 드라이브도 유럽스타일로 잘 거는 게 너무 멋지다. 역시 세대가 바뀌니 속전속결만 통했던 뚱마 시절의 경기와는 다르게 잘 먹고 자란 선수들의 유럽스타일의 시원한 파워 탁구가 올림픽에 통하는 시대가 왔다니 멋지다 멋져. 3대 0으로 세트 스코어를 낸 신유빈의 최상으로 보인다. 공이 신유빈을 따라다닌다. 따라오는 공을 거절하지 않고 촥촥 감아 버리는 게 이길 수밖에 없는 경기이다. 승리가 뻔히 보이니 뚱마는 편한 마음으로 마트 가서 고기 사고, 과일가게 들러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세상에나 3대 3에 그것도 듀스라니??? 지호는 혼자 흥분해서 난리가 나 있었다. 장바구니도 못 내리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신유빈이 이겼다. 대단히 정신력이다. 역전의 상황은 모르겠으나, 역전의 심리적인 압박이 대단했을 건데 그걸 이겨내고 승리의 양팔을 번쩍 드는 신유빈을 보니 국뽕이 차올라 온 가족이 흥분했다.
연일 메달 소식에 지호가 현재 한국이 5위라며 파리채로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 지한이를 겨냥하며, 펜싱을 선보인다.
“ 내 검을 받아랏! ”
제일 좋아하는 안세영 선수가 출전하자, 지지배처럼 고래소리를 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안 선수는 수비를 정말 잘하고 체력이 짱이라며, 한양까지 가서 구매한 라켓을 들고 신이 나서 응원에 하다가, 급기야 같이 경기에 뛰기 시작했다..
“ 내 스매싱을 받아라 얍! ”
안 선수의 경기도 끝났으니 땀 좀 닦고 쉬라고 하니까, 갑자기 쫑이를 안더니 요상한 포즈를 취하며 뚱마에게 사진을 찍어 달란다.
" 엄마, 나도 SNS에 올려야겠어요. 일론 머스크가 연락 올지 모르잖아요. "
운동에 대한 열정이 이리도 뜨거운 녀석인데, 그때 탁구를 시켰으면 뭐라도 되지 않았을까?
공부를 이리도 멀리하고 오직 운동에만 미쳐있는데,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배드민턴을 정식으로 시켜야 하나?
유아기 때 한자도 곧잘 읽어 영재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자식에 대한 욕심이 과도하면 편견을 가지게 되어 오만으로 눈과 귀를 멀게 해서, 오히려 자식의 앞길만 망칠 뿐이다..
“ 지호야, 배드민턴부 있는 학교로 전학 갈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