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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Aug 14. 2024

한여름 개 산책이란...

판단 미스

새벽부터 일하고 퇴근하는 길은 너무 피곤하고 졸리다. 며칠 잠을 설쳤다고 몸도 가라앉는게 씻고 늘어지게 잠을 자야겠다. 뭔 날씨가 왜 이리 더운거야.


퇴근하고 집에 오니, 두 녀석은 학원 가고 없고, 에어컨은 잠자고 있고, 선풍기만 열일하고 있다. 바깥세상이 뜨겁다. 한동안 주야장천 비를 쏟아부어 미안했는지 온 세상을 바짝 말려주겠다는 하늘의 후한 배려인가 보다. 꼭 닫힌 통유리를 뚫고 들어온 뜨거운 햇살에 집안이 한증막이 되어 있었다.

으메 짠한 불쌍한 내 개새끼들 개 뻗어있네. 에어컨을 틀어주고 나가던지, 창문을 열어주고 나가던지 했어야지.  이눔의 둥이 녀석들이 들어오기만 해 봐라. 안 그래도 민감성 피부의 쪼꼬가 뚱뚱한 뒷다리로 제대로 닿지도 않는 온몸을 박박 긁어대며 두 눈까지 뻘겋게 달아 올라, 퇴근에 지친 뚱마에게 자기 좀 어떻게 해 달라며, 더워 간지러워 미치겠다며 애처롭게 쳐다본다.


아~ 피곤한데...


뚱마의 만성피로보다 저 놈이 더 오지게 간지러워 보인다. 개 주제에 집에서 지 혼자 민감성 피부를 가져 저러는지 몹시 귀찮은 녀석이다. 쪼꼬를 안고 간지럽다는 부위를 유심히 보니 시원한 목욕이 답인 듯하다. 아닌가? 햇살을 너무 안 쬐어서 비타민 D가 부족해서인가? 오늘따라 쪼꼬의 속살이 더 핑크핑크한 핑크돼지 같다. 눈까지 뻘겋게 차오른 녀석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다. 결국 뚱마는 산책 후 목욕을 진정시키는 처방으로 결정했다.


" 쪼꼬야, 산책 가자~ "


앗! 실수다. 산책이라는 말에 개 네 마리가 난리를 친다. 머리 나쁜 탱이도 알아듣는 말 "산책"을 크게 내질러 버리다니, 신이 난 쪼꼬를 팽이처럼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고, 지들도 간택해 달라며 탱이는 코 먹는 기관차 소리를 내며 뚱마 바짓가랑이에 매달리고, 쫑이는 목줄 통 앞에서 곡조 구슬픈 노래를 불러제낀다. 평상시 개벙어리 멍이까지 큰소리로 짖어대니 집안이 쩌렁하게 울리게 짖어대니, 와우~ 쌍둥이 아기 때 쌍나팔 울음은 저리 가라이다.

결국 녀석들의 개수작에 말려 크나큰 판단 미스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 더위에 치와와 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와 버렸다. 멍아 미안해~



그래도 뭐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착각도 잠시, 8월의 여름해는 뜨겁고 당당하게 저물 기세가 없었고, 덥거나 말거나 집 밖을 나온 것 자체에 신이 난 치와와 세 마리가 흥분해서 개판을 치기 시작했다.


앞으로 달리려는 견, 옆에서 냄새 맡고 싶은 견, 지그재그로 진로 방해하는 견

그렇게 풀어도 줄은 계속 꼬이기 시작했고, 뒤늦은 후회가 미친 듯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왕 나온 거 저렇게 신나 하는데 조금만 더 참고 동네 한 바퀴는 걷고 들어가야지. 뚱마 뽜이팅!


마음가짐은 그저 마음일 뿐. 이것들이 뭉쳐 다닌다고 무서운 게 없나 보다. 쪼꼬는 지나가는 꼬마들만 보면 만만한지 질러대고,  쫑이는 큰 놈 작은놈 상관없이 개만 보면 한판 뜨려고 덤비려 하고, 똥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탱이까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아~ 한 낮 뜨거운 태양은 푹 눌러쓴 모자를 뚫고 정수리까지 타 들어오고, 치와와 세 마리는 지들 성질대로 하려고 하니, 순식간에 등짝은 비에 젖은 것처럼 땀에 절여 버리고 정말 기절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산책이고 뭐고


“ 이 녀석들! 너희들 앞으로 외출금지야! ”


아파트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해져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뚱마먼저 땀에 젖은 몸뚱이를 씻으려고 작정을 했는데, 혓바닥이 바닥을 쓸고 있는 녀석들이 안쓰러워 또 지고 만다. 녀석들을 단체로 욕조에 넣어 버렸다. 집에서 혼자있던 멍이까지.


젠장 힘든데 너무 귀엽다. 먼저 씻고 튄 탱이


왜 또 그랬을까 왜 또... 그냥 대충 물티슈로 닦을 걸 왜 목욕까지 강행했을까, 결국 네마리를 다 씻기고 뚱마는 개 뻗어 버렸고, 산책의 애피타이저만 맛을 보고 목욕까지 한 녀석들은 에너지가 더 넘쳐났다.


나이가 드니 판단 미스를 자주 한다. 눈앞에 짠하다고 즉흥적으로 이 날씨에 개 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미친 아줌마가 있을까? 해 질 무렵에 쪼꼬만 데리고 나갔어야 하는 것을, 이제 청춘이 아니다. 내 몸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하자.

감당도 못할 것을 저지르고 후회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제발 판단 미스는 이제 그만.. 소파에 누우니 몸이 가라앉는다. 아~ 피곤해

지랄견 치와와 세 마리를 한꺼번에 데리고...나가다니.,

산책은 역시 멍이랑만... Zzz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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