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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Aug 28. 2024

웃음 짓다.

무해한 사람

오후 근무 마치고 심야에 영동고속에 중부내륙에 대구상주구간까지 갈아타면서 엄마 집까지 먼 길을 달려왔다. 원래 고집이 장난 아닌 엄마는 늙으니 더하다 더해. 딸도 늙어가는 걸 아시려나.

멀리 인천에서 어찌 오냐고 걱정은 늘어지게 해 놓고는 끝내 대구에 병원을 다니겠다고, 인천은 올라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쉬는 날마다 내려와서 대구의 병원까지 모시고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일어나 입 맛 까다롭고 나날이 야위어가는 엄마의 끼니를 위해 새벽부터 김밥을 만들어 차 막히기 전에 부지런히 대구로 갈 준비를 서둘렀다. 걸음도 느리고 생각도 느려진 엄마는 아직도 한참 준비 중이고 마음 급한 나는 그동안 집안에 쌓여 있던 쓰레기들을 잔뜩 들고 먼저 집을 나서면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퍼붓어 버렸다.



쓰레기 분리 수거장으로 향하는 길에 납루한 옷차림의 여인이 시끄러운 바퀴 소리를 내는 바구니를 끌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깡마른 몸 지저분한 옷차림에 걷는 모양새까지 위태로워 보이는 게 분주한 나의 아침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런 나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쭈뼛 거리며 다가오지 못하다가, 이내 용기를 내어 깡통이 담긴 수거함 쪽으로 왔다. 몇 개 담긴 것 같지도 않은 자루 속에 작은 몸을 깊숙이 집어 넣어 뒤적이며 간신히 캔을 하나씩 건져 자신의 허름한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우친 나는 버릴 것들을 후딱 버리고 이미 뜨거워진 여름 아침 차 안으로 들어가 시원하게 에어컨을 켜고 엄마를 기다렸다. 여자는 내가 없어지자, 본격적으로 여기저기 자루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별로 건지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여자는 열심이였다.

시원해진 차 안에서 기다리는 엄마는 모처럼의 외출이라 그런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앟고, 아침으로 먹으려고 급하게 준비한 김밥 두 줄이 가방 안에서 나의 신경을 자꾸 건드렸다. 저 사람은 왜 저리도 말랐을까? 이른 아침부터 부자동도 아닌 왜 서민 아파트의 분리수거함을 뒤지고 있을까? 그러다가 결국 김밥 한 줄에 손을 대고 말았다.


“ 저기, 아침은 드셨나요? 혹시 안 드셨다면 제가 김밥을 만든 게 있는데 한 줄 드릴까요? 방금 만들어서 괜찮을건데…”


호일에 싸여진 김밥을 내미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내 기분이 그렇다고 내밀다니, 아~ 이 오지랖을 어쩔거나, 하지만 이미 김밥은 건네지고 있었다.


“ 내 줄꺼 있는교? ”


다행이다. 그녀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젊잖게 감사의 인사까지 우회적으로 표하며 받아주었다. 오히려 호의를 베푼 내가 쭈그려드는 기분이었다. 뒤늦게 나타나 상황을 파악한 엄마는 가는 차 안에서 남은 김밥 한 줄을 맛나게 드시면서.


" 잘 줬다마. 그 할마씨 맨날 깡통 주우러 온다 아이가. 한날에는 쓰레기통에 처박혀가 내가 꺼내준다꼬 얼마나 시겁했는지 모른다마. 잘 줬다마. 맨날 비실대며 다니는 게 뵈기 싫었는데 잘했다. 우리 딸이 김밥 하나는 잘 싸지. 지는 오늘 횡재했네뭐. “


내 나이또래로 보이던데 엄마 눈에는 할매로 보이는구나. 대구까지 운전하는 내내  푸대자루를 뒤지던 그 여인이 떠나지 않았다.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안 줬을 것 같은 그녀의 무해한 눈에서 난 부처를 보았다면 오바일까.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 그녀의 발음은 치아가 없는지 시원찮았다. 그럼에도 나를 똑바로 흔들림 없이 쳐다보며 감사를 표했던 눈빛은 비어 있었고, 맑아 보였다. 오히려 마주친 내 눈과 내 손이 살짝 떨렸었다. 덕분에 생각이 깊어지니 육체의 피곤은 사라지고, 엄마에게 더는 툴툴대지도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




병원에는 왜 그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지(병원이라 그렇지) 접수하고, 진료받고, 촬영하고, 또 진료받고, 다시 접수창구에서 계산을 하고, 약까지 받으려니 멀쩡한 사람도 병이 나려고 한다. 엄마가 MRI 촬영을 들어간 사이 잠시 눈을 붙여본다. 접수창구와 진료실이 있는 층과 다르게 여기는 한산하다. 순간 짧은 단잠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조용한 대기실 복도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나의 단잠을 깨웠다. 싸움이라도 난 것일까. 눈이 번쩍 떠졌다.


“ 어, 어? 머라카노? 안들린다. 내 지금 병원이다. 개안타개안타. 수술 안해도 된다 카더라….”


화려한 패션의 자그마한 체구의 아주머니가 기차 화통을 완샷으로 들이킨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명의 목소리가 이리도 크다니, 역시 칠성시장 옆 병원의 환자다웠다.


“ 개안타마. 안 와도 된다카이. 말라꼬 여까지 올라꼬, 일 보거라마. 민수애미캉 담에 같이 오거라. 고마 끊으라. 전화비 마이 나온다. “


빨간색 지갑형 핸드폰을 얼굴을 반쯤 가리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통화하는 아줌마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보여 잠이고 뭐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멀리 있는 자식이 묻는 안부 전화에 좋아서 큰소리를 지르는 건지, 정말 안 들려서 지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늙으면 아이처럼 주변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이해해야지 뭐. 그래도 길게 통화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할말만 고래고래 지르고 끊어버리는 쿨내는 나름 멋있었다. 역시 갱상도 아주메.




다행히 엄마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잘 드셔야 하는데, 자꾸만 작아지는 엄마의 모습에 애가 쓰인다. 붉은 고기도 조금씩 드셔야 하는데,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소량으로 포장된 비싼 육포를 사다 드렸더니 입에 맞다고 하시며 아껴 먹어야겠다며  냉장고에 몽땅 넣어 버린다. 고집불통 할망구!

나는 다시 급히 인천으로 돌아왔다. 오는 차 안에서 육포 여러팩을 발견했다. 엄마가 몰래 둔 것이다. 전화해서 비싼 건데, 몇 개 없는데, 왜 안 드시고 주냐니까 손자 지호가 육포를 좋아한다며 꼭 지호 주라고 하신다. 못 말리는 할망구!

그 붉은 고기를 지호에게 전해줬다. 할머니를 닮아 입 맛 까다로운 지호가 맛있다고 잘도 먹는다. 강쥐들도 아는 맛이라고 내놓으라고 난리다. 까칠한 지호가 줄리가 없을텐데 녀석들은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단체로 애교를 피운다. 그런데 웬일로 지호가 녀석들과 나눠 먹는다. 강쥐들의 무해한 눈빛에 까칠이 지호가 말려들었다. 그렇게 육포는 지호 두 개 녀석들 한 개, 지호 세 개 녀석들 한 개, 하면서  순식간에 해치웠다.




나는 무해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온전히 나의 기준에서 무해한 사람말이다.

하찮은 일로 생계를 이어갈지라도 예의를 갖추는 사람에게서,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전화에만 집중하느라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민폐 어르신의 단순무지한 행동에서, 공평하게 나누지 않더라도 나름 베푸려고 애쓰는 지호에게서 난 무해함을 찾고 웃음 짓는다.

해로운 것들로 많이 상처받고 마모된 심장이다.나는 무해한 것들로 나름 치료 받으려 노력한다. 생수 한잔 벌컥 들이킨다. 나 또한 무해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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