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회사친구 나미와 나는 오랜 친구이다. 그만큼 우린 회사를 지겹게도 가늘고 길고 다니고 있는 중이다.
나미는 나이에 맞지 않게 피부가 탱탱하다. 그런 나미가 어디서 꼬심을 당했는지 이곳저곳 과하게 보톡스를 맞고는 송년회 모임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예전의 팀원 몇 명이 연말을 핑계 삼아 아주 오래간만에 만든 모임이었다. 그런 자리에 나미는 생에 처음 보톡스를 맞고 나타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이 다들 반가운 마음에, 어딘가 묘하게 바뀐 나미의 얼굴을 보고는 인사말처럼 한 마디씩 입을 대기 시작했다.
" 나미야, 오래간만이다. 그런데 어디 아파? 얼굴이 띵띵 부었네. "
" 아니, 미간 보톡스 맞으러 갔는데 의사가 눈 밑도 맞으면 더 어려 보인다 해서 맞았는데, 얼굴이 안 움직여. "
그렇게 말하는 얼굴에는 눈동자 빼고는 다른 움직임은 없고 잔뜩 부풀린 풍선처럼 팽창해져 있었다. 솔직한 성격의 나미는 처음에는 보톡스를 사실 그대로 말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마다 인사말이 그러니 슬슬 표정 없는 울상이 되기 시작했다.
" 어머, 언니 반가워요. 그런데 뭔가 세한게 분위기 바뀐 것 같은데. “
" 어... 보톡스 맞아서 표정이 안 지어져서 그래. "
" 나미야, 오래간만이다. 야, 그런데 너는 안 반갑냐? 아~ 이제는 팀장도 아닌데 억지로 반가운 척은 하지 않겠다. 뭐 그런 거야? "
"아니, 부장님 그게 아니라 제가... 아니에요. 그냥 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요. “
그렇게 나미는 돈 들여 표정 잃은 얼굴로 욕을 먹고 있었고, 뒤늦게 나타난 꽃미남 후배가 마지막 한방을 날려 버렸다.
" 어? 선배 뭔가 분위가 바뀌었는데... 뭐지? 연애하나? 이뻐졌는데요. “
“ ...우소쯔기. ”
그 후 나미의 더 이상 보톡스를 맞지 않았다. 사실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탱탱한 피부란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주름진 미간이 또 신경 쓰였는지, 다시 보톡스를 맞고는 지하철에서 당한 사건에 대해 전화로 울분을 토했다.
내가 이번에는 진짜 미간만 맞으려고 했는데, 서비스로 준다면서 이마 쪽을 놔줬거든. 그런데 눈썹이 올라가서 안 내려오는 거야. 그러고는 전철을 탔는데 술 취한 아저씨가 비틀대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나를 툭 친 거야.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아저씨가 나쁜 짓을 할까 봐 떨면서 곁눈으로 슬쩍 훔쳐봤을 뿐인데, 이 덩치 큰 아저씨가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거야.
" 뭐야? 지금 나 째려본 거야? 내가 실수로 쳤다고, 기분 나빠서 지금 꼬나보는 거야? “
" 아닌데요. "
" 아니긴 뭐가 아냐! 눈빛이 기분 나쁘게 나를 쳐다보잖아! 눈매가 아~주 매섭잖아! 아주 무섭게 노려보고 있잖아! 아주 매서워. “
나 정말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잖아. 보톡스 때문에 눈썹이 올라가 있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비틀대면서 계속 내가 매섭게 노려본다고 시비를 거는데, 진짜 너무 무서워서 다음 역에서 그냥 내려버렸잖아.
참참! 그리고 어제 전철에서 골 때리는 사건이 있었어. 출근을 다른 날 보다 일찍 했는데, 정말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젊은 애들 훔쳐보면서 이상한 변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너무 더러워서 다른 칸으로 옮겼는데,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 다시 가서 몰래 동영상 찍어서 112에 신고했잖아.
" 너 같은 겁쟁이가 무슨 용기로 동영상을 찍었대. 신고하니까 뭐래? 오오~ 용감한 시민상 받는 거야? “
112에서 전화 백통은 받은 것 같으. 네 명이 번갈아가면서 조사한다고 어찌나 상세하게도 물어대던지, 민망해 죽는 줄 알았잖아.
" 뭐라고 묻던데? "
그래서 그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신고하신 내용에는 젊은 여성들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주요 부위에 손을 넣고는 이상한 짓을 했다고 했는데 그 주요 부위가 **입니까? 하면서 너무 디테일하게도 묻더라. 괜히 신고했나 봐.
아가씨인 나미는 심각하게 한소연을 했고, 아줌마인 난 울었다. 너무 웃다가 턱이 아파서, 배가 아파서 울었다. 그렇게 장이 꼬일 정도로 웃느라고 위로의 말 한마디 못 건네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미야, 너니까 용기 내서 신고한 거야.
그리고 넌 보톡스 안 맞아도 돼.
보톡스 보다 더 빵빵하게 살이 오르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