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만추의 오전 아홉 시 아침 햇살이 길게 시원하니, 자전거 페달을 밟는 기분이 상쾌하다.
늦가을 낙엽까지 바람 따라 춤을 춰주니, 세상이 들떠 보인다. 벌써 몇십 년째 맞이하는 가을인데도 매번 나를 기쁘게 해 주니 나 또한 늘 반갑다.
긴 세월을 살아왔네, 앞으로도 그래야 할 거지만...
그래, 이제는 당연히 고장 날 수 있는 몸뚱이가 되어 버렸다.
손을 볼 시기가 온 것이다.
내장에 찌꺼기가 쌓였으면, 속을 비우고 약으로 씻어내면 되는 것이다.
겉이 쳐졌으면, 기꺼이 중력을 끌어올려 당당히 튜닝으로 버티면 되는 것이다.
마음 또한 그렇다. 탈이 날 수 있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다.
이게 맨 정신으로 버티는 게 쉬운 세상인가 말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걸 곱게 받아들이기만 하다가는 머리에 꽃 꽂을 날이 곧 일 것이다.
그래서,
세탁실에 잔뜩 쌓여있는 옷들을 돌리다가,
개털로 민들레홀씨 흩날리는 거실을 청소기 돌리다가,
어제부터 쌓여 있던 싱크대 한가득 식기들을 씻다가,
이도저도 마무리도 짓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녹슬 대로 녹슨 자전거 페달이 삐걱삐걱 응원해 주며,
일 년 만에 정신과 가는 길
늦가을 아침이 참 좋다. 조금 춥다 싶은 게 오히려 좋다.
오늘 참 잘한 것 같다.
그대들도 혹시 나와 같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