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이 Dec 01. 2024

타국에서의 생이별

혼자 밀라노에 남다.

연어 초밥에, 방글라데시 카레에, 이태리 피자 등과 함께 콜라를 마셔대며 통통해지는 지한이와 다르게 지호는 북한 어린이처럼 야위어갔다.

어느 날 전교에서 딱 한 명에게만 준다는 선행 봉사상을 받았다고 생에 처음 상장이라는 것을 받아 온 지한이가 엄마에게 자랑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 하기보다는 3년 내내 분리수거를 해댔는데 누가 상을 안 주겠나며 핀잔을 주는 지호는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서만 행복을 찾는 극 I이다.

여행의 동반자로는 지한이 만한 친구가 없고, 지호는 절대 아니다.

마테호른은 뚱마도 전에 보지 못 했던 절경이었지만 지호는 가는 길의 곤돌라가 너무 높아 무섭다고 고개 처박고 곤돌라 밖의 어마한 풍경을 거부했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웅장한 밀라노 대성당의 자태는 비둘기 떼를 피하느라고 쳐다보지도 못했다.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지한이와는 다르게 째진 눈 더 쪽 째져 있던 까칠이 지호는 쌍둥이가 아니다! 병원에서 애를 바꿔치기했는 게 분명하다! 한국 돌아가면 신촌 세브란스를 상대로 조사를 해 봐야겠다.


아무튼 계획과 다르게 7박 9일의 기간을 지호가 소화하기에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결국 답 없는 공항에 가서 만석인 29일자 비행기를 대기를 해서 불행 중 다행으로 두 녀석만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구구만리 타국까지 생에 처음 여행을 온 녀석들은 출국장에서 엄마와의 생 이별을 하는 순간 세상에 둘도 없는 쌍둥이가 되어 서로를 의지하며 무사히 귀국했고, 뚱마는 다시 익숙한 중앙 역 근처 호텔에서 홀로 남겨져 있다.


긴 창 밖 아침 풍경이 살짝 열어둔 커튼 사이로 보인다.

집집마다 난로를 피우는지 지붕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근사 하다기보다는 비싼 동네이니 만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이 뿜어대는 연기가 마치 한국의 공장지대 같다. 지금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라 내 시선이 비판적인 것 일수도 있다.

밀라노 공항에서 애들만 출국장으로 보내고 똥자리 찾지 못하는 멍이처럼 서성대며 한동안 공항을 떠나지 못했었다. 그리고 다시 중앙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눈물까지 찔끔 댔다가 나중에는 웃음이 새어 나오더라, 실성한 유럽아줌마가 되는 줄 알았다.

다음 날 생수 사러 간 역에서 본 기차의 목적지들이 매력적이다


오늘 드디어 여기를 떠날 것이다.

혼자 배 터지게 인조이하며 아침을 먹었고 저녁까지 대성당 주변을 빈둥대며 밀라노의 블랙프라이데이를 눈팅만 할 계획이다.


이 어마한 경험을 한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다시 밀라노 올 거냐고 묻는다면

“ YES~ “



PS

나처럼 마음의 병을 혼자서만 끙끙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이가 혹시나 이 글을 읽는다면 용기내서 전해주고 싶다.

꼭 병원 가라고!

병원을 다니지 않고 이 상황에 빠졌다면 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백퍼 호흡법을 까먹고 졸도했을 것이다.

마음에도 아프면 약을 호~ 발라야 한다. 약발 제대로 받은 여행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