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체르마트-밀라노
“ 얘들아, 우리 스위스 여행 갈까? ”
“ 네~ 좋아요. ”
실현 불가능한 말을 뱉고 그 말을 주워 담으려고 열심히 병원 다니며 장거리 비행에 성공했고, 밀라노에서 체르마트까지 3박 5일의 알찬 유럽여행을 순조롭게도 보냈다.
8년 만에 본 마테호른의 장관과 밀라노 대성당의 고귀함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어깨 뿜뿜 이런 엄마 없다며 자랑질을 해댔는데, 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 도착한 밀라노 공항에서 한국의 대설로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망연자실했다.
지금 우린 밀라노 중앙역 주변에서 어슬렁대는 흑형들을 보고 극도로 예민해진 지호 덕분에, 호텔에 이틀째 처 박혀있다. 내 눈에는 그닥 위험해 보이진 않는데 말이다.
거리를 할일없이 어슬렁대는 방랑자는 분명히 많지만, 그만큼이나 보안직원과 군인, 경찰이 깔려 있는 것이 치안상태가 불안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 안전해 보인다. 말썽만 부리지 않는다면 굳이 건드리지는 않겠다는 암묵적인 협의를 한 듯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배낭 하나씩만 메고 온 우리는 예상치 못한 11월의 눈사태로 갈아입을 속옷조차 없어, 결국 까칠이 지호를 모시고 근처 빨래방을 다녀온 것 가장 긴 외출이었다.
내일 비행기도 만석이라 못 탈 것이다. 비행 편이 많은 파리공항으로 넘어갈까, 좌석의 여유가 있는 런던 공항으로 갈까 하며 구글맵을 쳐다보지만 한숨만 나온다.
그냥 쿨하게 받아들이고 어여 호텔이나 이틀 더 예약해야지, 이러다가 주말 호텔까지 부족해서 밀라노 역에서 노숙할라.
예전 유럽화산재 사건으로 유럽국적의 승객들이 인천공항에 발이 묶여 일주일 넘게 널브러져 있었고, 나 또한 답 없는 답을 원하는 그 수많은 승객들에 치여 널브러졌던 고생이 떠오른다.
반백을 살아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옆에서는 이 상황을 즐기는 긍정의 끝판 왕 지한이가 혼자 나가서 사온 피자를 먹으며 방귀를 껴대니, 까칠이 지호가 성질을 낸다.
“ 야! 서지한 뭘 처먹은 거야? 우와 C~ 냄새. “
“ 나 지금 현지화 5프로 상승했으. 어때? 스멜도 유럽 스타일이지? ”
ㅎㅎ 지한이 덕분에 웃는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3박 5일은 유럽을 기만한 계획이었다. 7박 9일 정도는 해야한다는 하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민 그만하고 웃자(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