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하늘이다.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폭우에 천둥 반개까지, 도대체 며칠째인가.
공항에는 뇌전과 폭우로 조업자의 안전을 위해 중단되는 와중에, 비 한 방울 안 맞고 항공기에서 하기한 이들이 나오지 않는 자신들의 짐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창문 없는 오픈카? 에서 어마한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수하물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이는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자, 아빠이다. 그들도 퇴근 후 무사히 귀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전안전 또 안전을 우선시 함에도 불구하고 인명 사고는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 뇌전이 예상되고, 폭우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면 나약한 인간은 조용히 피해 있어야 함을 당연한 것이다.
한 시간 넘게 조업이 중단된 사태는 죄송하오나, 그렇다고 폭우를 뚫고, 번개 맞을 각오로 항공기를 향해 돌진할 수 없지 않은가. 제발 신이 하는 일에 고성으로 대들지 말자.
며칠째 내리는 폭우에 우리 집 개들도 민감해졌다. 독고다이 탱이가 천둥소리에 붕~ 날아서 뚱마에게 안긴다.
세상 멍청하게 생겨가지고 저 작은 머리에도 뇌가 있나 싶었던 녀석이 제대로 무서워한다.
뚱마 품에 꼬옥 안겨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왜캐 귀여운 건지, 마치 천둥 맞은 것 같은 동그란 눈으로 오직 뚱마만이 자기를 지켜줄 수 있다며 졸졸 따라다닌다. 심지어 화장실 문조차 열라며 잠시도 혼자 있기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뚱마와 쌍둥이는 여름방학이라 시골 할머니집에 다녀와야 하는데 탱이가 밟힌다. 먼 길이라 멀미 오지게 하는 탱이를 데려갈 수도 없고 난감하다.
이 날씨에 운전하는 것도 힘든데, 탱이까지 케어하며 데려가는 것은 무리다. 독하게 마음먹고 거실에 간식을 잔뜩 뿌려 주고, 잽싸게 튀려는데 탱이가 간식도 마다하고 현관 앞까지 따라와 애처롭게 '제발요' 하는 눈빛으로 뚱마를 쳐다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작아 보이는 녀석, 아... 날씨처럼 뚱마의 마음이 젖어든다.
" 지호야, 탱이 안아! 지한아, 탱이 집(종이상자) 갖고 와! “
" 안돼요. 엄마, 날씨도 그런데 이건 무리예요. 나도 멀미하는데 탱이까지 감당 못해요. 그냥 가요. "
" 에이~ 쪼그마한 게 멀미해 봤자지. 그냥 데려가요 엄마. "
까칠이 지호는 싫고, 마음 약한 지한이는 괜찮단다. 뭐 이미 뚱마는 탱이 눈빛에 말려 버렸으니, 녀석들의 의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 얘들아, 차 밀리기 전에 빨리빨리 출발~. “
탱이가 멀미할까 봐, 앞 좌석 지한이가 안았다. 속이 안 좋은 듯 하품 몇 번 하더니, 이내 오빠 품에 편히 안겨있다. 다행이다 싶어 뒷좌석 지호에게 잘 돌보라고 넘겼는데 지호보다 더 잘 있다. 그 와중에도 눈은 뚱마에게 고정되어 있다. 아직도 천둥번개가 무서운가 보다.
그렇게 우리는 천만번 바뀌는 구름을 지나, 남쪽으로 향했다.
“ 엄마 저 시커먼 구름은 꾸욱 짜주고 싶어요 뽀송해지게. 넘 무거워 보여 쟤는. ”
“ 야! 이 빡빡아, 구름을 어떻게 짜냐? 무슨 잼민이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엄마, 저런 구름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층운형이하고 하는 거예요. 흐린 날에 많이 생기니까 요즘 같은 요상한 날씨에 많이 보이는 구름이에요. ”
“지한아, 또 시작이다. 우린 조용하자. “
" 네, 엄마. 저 지지배 멀미 괜찮은가 봐요. "
멀미가 괜찮아졌는지 잘난이 지호가 뚱마와 지한이의 구름에 관한 감성 젖은 대화를 방해한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무거운 구름이 사라지고,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하늘에 잔뜩 차 있었다.
“ 우와~ 얘들아, 하늘 너무 이쁘다. 저것 봐, 쫑이 웃는 모습 같아. “
“ 아닌데, 쪼꼬가 똥 싸는 것 같은데요. “
" 아! 그런가 ㅋㅋ. “
“ 엄마, 저런 구름을 바로 적운형 구름이에요. 저게 이뻐 보여도 대기가 불안해서 생긴 거라 갑자기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구름이라고요. “
어김없이 또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지호다. 이쁘기만 하구만 무슨 비가 온다는 건지,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갑자기 비가 퍼부어댔다. 마치 동남아 열대야의 스콜현상이 동북아까지 번진 것 같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가 잠시 멈추었다. 신이 난 탱이 자꾸 풀숲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갈길 먼 우리는 이제 그만 먹거리 사러 가자고 하니, 탱이 주특기인 버티기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커플이
“ 어머~~ 너무 귀여워. 사진 좀 찍어도 돼요? ”
라며 탱이 근처에서 난리를 친다. 허기야 귀엽긴 하지. 우리 탱이가.
천만번 바뀌는 구름과 지한이의 끝없는 수다를 들으며, 지루하지 않게 먼 길을 달려 드디어 도착했다.
할머니께서는 안 본 몇 달 사이에 또 커버린 손주들을 위해 한우구이를 사주시겠다고 하셨고, 그 마음 알기에 사양하지 않고 모시고 나섰다. 탱아, 후딱 먹고 올게.
지한이가 그 비싼 소금구이를 흡입한다. 지호까지 서서히 시동을 건다. 빛의 속도의 먹어치우는 녀석들과, 나날이 야위어가는 엄마께 구워 받치느라, 뚱마의 얼굴이 화로처럼 익어버렸다. 마지막 두 점을 가위로 잘게 잘라 탱이를 위해 집에 가져왔다.
낯설어하는 탱이에게 할머니가 고기를 내밀었다. 한우 맛을 본 탱이는 그 뒤로는 할머니만 따라다녔고, 그 모습에 할머니도 이쁘다, 귀엽다 하신다. 멍이 말고 개를 또 키운다고 역정을 내실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이뻐해 줘서 다행이다.
할머니가 불편한 다리로 집 앞 정육점에서 손주들 먹인다고 또 고기를 사 오셨다. 그러더니 구우신다. 그 모습을 보고 지호가 할머니를 말린다.
“할머니, 왜 또 구워요? 저희 진짜 배불러요. ”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으시더니,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탱이를 부르신다.
“ 콩아, 통아, 아이고마 모르겠다. 요년아, 일루 온나. 지한아, 저짝에 오봉 가세 있는 가시개 쫌 가온나(저쪽에 쟁반 옆에 있는 가위 가져오렴). 이거 너무 큰갑다.“
지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는데도 귀신같이 알아듣고 할머니 앞에 충견처럼 앉은 탱이나, 외계어 같을 할머니의 사투리를 정확하게 알아듣고 가위를 찾아오는 지한이 둘 다 신기했다.
“ 엄마, 그 비싼 걸 탱이 준다고?”
“ 마 줘라. 야가 머꼬시퍼가 난리구만. 지는 얼마나 머꼬 싶겠노.”
상상도 못 했던 탱이의 환대였다. 그 모습에 외로운 엄마를 위해 다음 병원을 모시러 올 때까지 탱이를 두고 갈 작정을 했는데, 다음 날 밤 탱이가 똥 싸고 시원하게 이불 위에서 똥꼬 스키를 타는 바람에 우린 함께 영종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우에 새 옷까지 환대를 받았던 탱이가 사료와 허접한 개간식을 안 먹으면 어쩌나 했는데, 역시 탱이는 머리가 나빠 다행이다. 할머니집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료와 간식을 맛나게도 먹는다. 아니 어찌 보면 주어진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지능적인 녀석일지도 모른다.
긴 여행을 다녀온 탱이가 집에 돌아오니 안심이 되는지, 원래의 독고다이 탱이로 돌아와 편히 여독을 풀고 있다.
고작 이틀을 집을 비웠다고 엉망이다. 거기다가 지들끼리만 집 지켰다고 개흥분하는 녀석들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신없이 정리하다가 문득 다들 떠나버려 허전할 엄마의 작은 방이 걸린다. 엉망인 집안일을 내 팽개치고, 날씨만큼이나 기분이 멜랑꼴리 해져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쏟아 부어대는 폭우 속에서도 그게 직업이라 제 일을 수행해야 하는 직원들도,
노년의 외롭기만 한 엄마의 쓸쓸한 작은 방에서의 하루도,
직장에 집안일에 허덕이면서도 정작 외로운 내 삶도,
그래, 그건 받아들여야 할 각자의 삶이다. 동정도, 가여워도 말자.
요즘 날씨 때문에 괜히 기분까지 그런 거야. 나이 드니 기운 딸려서 괜히 정신까지 그러는 거야.
탱이처럼 주어진 환경에 맞게 그냥 살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