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히 공부하는 지한이와, 오직 성적만을 위해 벼락치기를 하는 지호가 시험 며칠 전부터 기말고사 준비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중 3 인생 너무 고달프다며 툴툴댄다.
으메 짠한 내 새끼들, 뚱마가 해 줄 수 있는 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 밖에는 없지 않은가. 고기 아니면 반찬 취급을 안 하는 두 분을 위해 정성 들여 김치제육볶음을 식탁 위에 올린다.
내일이 역사 시험이라, 마지막 벼락치기에 박차를 가하는 지호가 식탁 앞에서 고기도 마다하고 달달 외운다고 난리다. 배고픈 뚱마 크게 밥 한술 뜨려는데 벼락치기 암기력 상승을 위해 지호가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 엄마, 6두품 알죠? "
" 뭐? 육두문자? “
"엄마~~~~~."
" 신라시대 신분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잖아요"
" 야! 서지한, 모르면 껴들지마. 그게 제일 높은 게 아니지. 성골, 진골도 있잖아. 근데 엄마는 모른 것 같으니까 밥이나 먹자. 엄마 제육은 역시 짱이라니까. "
" 어머! 지호야, 엄마도 조금은 알거든. 그거 뭐... 인도 카스트 제도랑 비슷한 거 아냐? "
이미 무식은 탈로 났지만 그래도 대충 때려 맞춰 보려는데, 역시나 지호가 지적을 한다.
" 아닌데 다른데, 이건 골품제로 인해 신라 관직에 대한 등급인데, 음... 엄마한테는 너무 어려운 거니까 패스해요. 대신 엄마, 궁예는 알죠? "
" 알지 알지. 안대한 궁예, 누구인가~. “
" 맞아요. 그럼, 그 사람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 누구예요? "
" 야! 설마 우리 엄마가 그걸 모르겠어. 엄마 무시하냐? 그건 너무 쉽잖아. "
아~~ 밥이고 뭐고 튀고 싶다.
" 최.. 최수종? "
" 네에? "
" 사극 하면 최수종이지. 그니까 대조영이라고. "
"아! 미안해요. 괜히 질문했네. 그냥 밥 먹을게요. "
지호가 뚱마를 무시하고 드디어 제육을 집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멈춰줘서 다행이다. 하지만 다행은 불행으로 녀석들은 둘이었다는 걸 알려주려고 지한이가 껴든다.
" 엄마, 대조영은 발해고, 궁예는 고려라고요~~."
" 야! 서지한, 궁예가 후삼국이지 무슨 고려야. 이 빡대가리야! "
지한이가 틀린 역사 지식으로 뚱마를 가르치려 하자, 지호가 또 끼어들었다. 뭐 아무렇게나 말해도 뚱마는 비둘기라 상관없는데 까칠한 지호가 빡빡대며 밥상머리 역사 수업을 시작하고 말았다. 아~ 유체이탈하고 싶다.
" 태조 왕건이 누군지 알아요? "
" 태왕사신기는 아는데, 욘사마~ 배용준이 한때 일본 가는 비행기에 타면 일본 승객들이 욘사마 보려고 일등석으로 몰려와서 비행기가 앞쪽으로 쏠려 위험할 정도였지. 그때 기억하면 …“
" 엄마! 얘기가 왜 그쪽으로 새요? 태조 왕건이 궁예를 내쫓고 영토 확장을 위해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정책을 펼쳤잖아요. 그리고 또 사성정책을 펼쳤잖아요. 그건 성을 그냥 호족들에게 주는 건데…“
“??? ”
“ 야! 서지호, 이제 정말 그만해. 엄마 체하겠다. 밥이나 먹어. ”
공부한다는 녀석들을 뭐라 할 수도 없고, 후딱 밥 먹고 녀석들을 피해 거실에 누워 조용히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데, 지호가 멀쩡한 지 방 책상 냅두고 굳이 뚱마의 영역인 거실을 침범한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네. 같이 동참할 수는 없지만 구색은 갖추려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소설책으로 바꿔 들고 누웠다. 역시 책은 잠을 부른다. 뚱마는 찍소리 안 하고 조용히 잠을 청할 테니, 제발 건들지만 말아다오.
벼락치기 암기왕 지호가 이미 외우고 있는 시험범위를 보고 또 보고는, 뚱마에게 양면 꽊 채운 열댓 장이나 되는 요약본을 건네며 질문을 해보란다.
우와~ 이걸 다 외워야 한다고? 기저귀 띤 지 몇 년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얼굴에는 청춘의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몸도 뇌도 성장하느라고 고생이구나.
그래도 그렇지. 나쁜 놈! 둘이서 하라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한꺼번에 낳아줬는데 왜 자꾸 늙은 뚱마를 끌어들이는 거냐고.
식곤증에도 불구하고 참고 몇 문제 내다가, 도저히 더는 안 되겠다. 질문도 내용을 이해해야 유출하지. 결국 뚱마는 지한이 방으로 튀었다.
헉! 저 기괴한 자세는 뭐지.
“ 서지한, 엄마가 새 의자 사주니까 그케 사용하니? 시험공부 안 해? 역사 다 외웠어? “
“ 엄마 그거 알아요? ”
“ 또 뭔 소리 하려고 그래? “
“ 책을 여러 권 읽은 사람보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무섭대요. ”
“ 그래서? ”
“ 그렇다고요. ”
생뚱맞은 소리지만 더는 묻지 말아야 한다. 보나 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또 내뱉을 거고, 뚱마는 묘하게 말려들 거란 말이다.
시험준비는 마치고 핸드폰을 만지는지 묻고 싶지만, 사춘기에게는 묻고 싶다고 다 물으면 안된다. 현명하게 입을 닫는다.
정말 다른 두 녀석이다. 과연 꾸준히 공부하고 막판에 쉬는 지한이와, 벼락치기 공부하는 지호 중 누구의 성적이 더 좋을까?
달라도 너무 다른 둘, 뚱마는 절대로 태교를 믿지 않는다.
까마득한 여중시절 너무 많은 꿈을 꿨던 그 시절,
그게 가능하게 요동쳤던 심장!
긴 인생 길을 걷다 보니, 작은 것에도 쉽게 흥분했던 심장은 이제 굳은살이 배겨버렸지만,
사춘기와 동거하는 덕분에 문득 순수했던 그때의 소녀가 스쳐 지나간다.
너희는 틀에 박힌 공부라고 툴툴대는데, 뚱마 눈에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로 들어선 걸로 보이는데ㅎㅎ
먼 길 걸어야 하니까, 그만 툴툴대고 즐기면서 공부해.
그렇게 벼락치기 암기왕은 지호는 선방했고, 지한이는 유일하게 잘하는 수학을 시험 시작과 동시에 급똥 마려 시험이고 뭐고 정신이 혼미해져 망치고 하는 말이
“엄마, 안 싼게 어디예요. 괜찮아요. 담에는 미리 싸고 잘 치면 되죠. 너무 걱정마요. ”
성격 하나는 기똥차게 긍정적이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