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공항에 어르신들이 떴다

by 길이

시골공항에 어르신들이 떴다.

1995년 초겨울 오전 한산한 시골공항에 제주도 단체관광을 위해 청송 어르신들이 떴다.

꽃은 지고, 낙엽은 떨어져서 여행은 비수기 시즌이지만, 농번기가 지난 초겨울은 어르신들이 여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다행히 IMF 전이라 고생만 하신 부모님들 비행기 한번 태워 드리려는 자식들의 효도 관광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어르신 단체가 자주 나타나 시골공항을 점령하기 시작한 12월이다.


고추 따서, 송이 캐서, 벼농사에, 과수원에, 비닐하우스까지 굽히는 허리 마다하지 않고,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켰던 어르신들은 그 자식들이 보내주는 효도 관광에 들떠 있었고, 초겨울 시골 공항은 가을 단풍처럼 알록달록한 설빔 같은 어르신들의 패션으로 물들어 있었다.


평일 오전의 햇살은 따뜻하게 어르신들을 환영하였고, 공항 안 유리벽으로 통과하는 햇살을 즐기는 참새 떼처럼 조잘대는 어르신들로 인해 공항은 기분 좋게 시끄러웠다.

마치 첫 수학여행을 가는 중학생들처럼 뭐가 그리 재밌고 우스운지 무릎을 쳐대며 웃고 떠들고, 또 웃으셨다.


” 밀양댁 신발 차마네(예쁘네) 어디서 샀노?“


” 내는 모른다. 진수애미가 용돈캉 같이 주더라. 괘안나? “


” 니는 머리 언제 했노? 잘 뽀깟네, 차마네, “


” 글라 괘안나? ㅎㅎㅎ“



” 접때(저번에) 제주도 댕겨 온 김영감이 그카던데 비행기 탈 때 신발 벗어야 된다 카더라. 맞나? “


” 무신 그런 게 어딧노 탁탁 털어 뿌리고 타면 되지 말라꼬. “


” 글채? ㅎㅎㅎ “



어르신들의 대화가 너무 귀여워 항공사 직원들도 엿들으며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안내양 같은 옷차림의 청송의 어느 여행사 직원은 붉은 깃발을 흔들며 어르신들을 주목시킨다.

마치 ‘빨간 마후라’의 배중위 같은 그녀의 붉은 스카프는 붉은 깃발과 환상적으로 어울렸고, 시선을 끌기에도 너무도 훌륭해서 어르신들의 가이드로서 아주 바람직한 옷차림이었다.


그녀의 주목 호령에 어르신들은 순식간에 말 잘 듣는 아이들이 되어 깃발의 그녀를 쳐다본다.


” 어르신들, 주민등록증 가져왔는교? 마카다아(전부) 내 주이소. 내가 뱅기표 받을 때 필요항께요.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르신들은 어디서 단체로 구매한 것 같은 허리춤에 찬 힙색에서 신분증을 꺼내 반장 같은 할아버지께 드렸고, 반장 할아버지는 그걸 선생님께 아니 여행사 직원에게 주었다.

여행사 직원은 30개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항공사 카운터로 와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제주 편을 수속하였다.


여행사 직원만 한 개의 가방을 수하물로 부칠뿐, 어르신들은 가방을 몸의 일부처럼 메고 계셨다.

아마 동네에서 누군가가 가방은 반드시 어깨에 메고 가야 한다고 알려준 것 같았다.


카운터 신입직원은 옆 카운터의 선배의 조언으로 어르신들의 좌석을 뒷좌석으로 나란히 배정했다.

분명 비행기에서도 저렇게 떠드실 건데,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뒷좌석으로 배정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탑승권을 받아 든 여행사 직원도 별 불만 없이 뒷좌석으로 배정된 30장의 탑승권을 들고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호명을 시작했다.


” 어르신들, 존칭은 빼고 이름만 부를 텐께 잘 듣고 뱅기표캉 신분증캉 잘 챙기 갖고 뱅기 타야 하니더.

알겠는교? “


“ 심익춘, 김춘자, 마분자, 박말자, 김춘식, 심미자, 김정자, 박정자, 심춘삼, 심태복, 최정자, 심춘녀 ,,,”


심 씨 집단촌답게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어르신들은 손을 뻔쩍 들고 앞으로 나가 선생님이 주시는 개근상을 받듯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생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권을 받는 청송 골짜기 시골 어르신들의 설레는 마음이 어떨지 상기된 표정은 이미 비행을 시작하였다.


탑승권을 받으신 어르신들은 맞은편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으로 2층 출발장으로 올라가, 보안 검색만 통과하고, 비행기를 타면 되는 어르신들에게는 안성맞춤인 단출한 시골공항이다.


물론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단체로 움직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은 서너 명이 겨우 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을 것을 여행사 직원은 경험으로 이미 알기에 곧장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앞장을 섰다.

각자의 탑승권을 받아 든 어르신들은 붉은 깃발을 선두로 2층 출발장으로 대이동을 시작하였다.


어르신들이 탈 비행기는 아직도 제주도 있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중절모에 지팡이를 짚고 계신 어르신,

허리가 구부러진 어르신,

휜 다리 때문에 상체를 흔들며 걸으시는 어르신 등,

각자의 위태로운 걸음으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도전해서 이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대이동을 카운터의 신입직원과, 선배는 걱정스레 보고 있었는데, 아니라 다를까 차례차례 펭귄들의 위태로운 걸음마처럼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시작했고, 헛발질로만 시도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뒤에 대기 중인 어르신들에 밀려 겨우 올라탔는데, 그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뒤에 줄줄이 어르신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고 시작했다.


카운터의 신입직원과 선배는 순간 스프링처럼 카운터 위를 점프해서 튀어 나갔다. 다른 직원들은 이유도 모른 채 따라 뛰었다. 다행히 에스컬레이터는 카운터에서 가까웠다.

직원들은 에스컬레이터 뒤에서 쓰러지기 시작하는 어르신들을 받치며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탔고, 선배는 계단으로 미친 듯이 올라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어르신들은 받았다. 다른 직원들도 동원되어 거들었다.


건장한 두 사내의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많이 놀란 어르신들은 바닥에 주저앉으셨고, 작은 타박상을 입은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난리가 났다.


“ 괘안나? ”


“ 괘안타. ”


“ 고마 참말로 괘안나? ”


다행히 피를 흘리는 어르신은 없었다.


직원들은 어르신들을 제주행 비행기의 게이트 앞까지 모셔다 드렸고, 이 소식을 보고 받은 지점장은 어르신이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리가 될까 봐 여행을 다음으로 기약하기를 간곡하게 권했지만, 여행사 직원도 어르신들도 완강하게 괜찮다고, 꼭 타야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허기야 언제 다시 이런 날을 맞추겠는가.

어쩔 수 없이 대기 중인 기내 사무장에게 어르신들을 잘 돌봐 줄 것을 당부했다.


1시 30분, 탑승구에 보딩 업무를 하기 위해 선배직원의 탑승 방송을 시작으로 신입직원이 승객들의 탑승을 안내하고 있을 때 어르신 한분이 곶감 두 개를 손에 쥐어 주셨다.


” 고맙데이 클 날 뻔 안 했나! 고맙데이 고마워. “


” 아닙니다. 어르신, 잘 다녀오이소. “



그렇게 2 시행 제주행 비행기는 제시간에 무사히 잘 이륙했고, 제주공항에서도 특별한 상황 전달이 없는 것으로 봐서 어르신들의 생에 첫 비행은 성공한 것 같았다.


작은 공항의 항공사 직원들은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

카운터에서 수속 업무를 하고, 탑승구에서 보딩 업무도 한다. 그리고 도착 편의 수하물이 무사히 주인을 찾아가도록 수하물 수취대에서도 일하는 멀티 플레이어들이다.


” 저기요, 2시 제주 편 어르신들 도와주신 분이죠? “


수하물 수취대에서 서 있는 신입직원을 보고 승무원이 말을 건다.

지점장이 어르신들을 부탁했던 사무장이었다. 벌써 제주행 비행을 마치고 리턴한 것이다.

홍길동 같은 승무원들의 스케줄이다.


” 네, 어르신들은 괜찮았나요? “


” 말도 마요. 비행기 안에서 저희만 보면 너무 고마워하시면서 곶감도 주시던 걸요. 그리고 한 어르신이 큰소리로 저희 힘들다고 음료수는 뭘 마실지 고르지 말고 통일해서 시키자고 하니까, 다른 분들이 손뼉 치시면서 ‘옳소’ 하더니


[자아~ 색시들 힘드니까, 마카다(전부) 커피 주이소.]


이러시는 거예요.

저희 그분들 음료서비스를 커피로 30잔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ㅎㅎㅎ. “


1시간도 안 되는 비행시간에 이착륙 시간 빼면, 실제 상공에서 순항 중인 시간은 20분 밖에 안되는데 30잔의 뜨거운 커피를 20분 컷으로 완벽하게 제공했다는 승무원들의 프로다운 민첩함에 존경을 표한다.

청송은 경상도에서도 산이 깊은 곳이다.

새벽에 일어나 공항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은 힘드셨을 건데, 공항에서 넘어져 다쳤음에도 첫 비행을 포기하지 않으신 마음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여행은 참으로 피곤한 것이다.

준비하는 과정과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렘임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육체의 고통은 둔화되고, 정신의 행복을 극대화시켜 버리는 마력을 품은 것이 ‘여행’이 아닐까 싶다.


비록 어르신들의 생에 첫 비행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분명 긴 시간 동안 행복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