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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해운대 봄맞이

저 바다 건너 일본을 생각하며

by 동남아 사랑꾼 Feb 22. 2025


나는 요 며칠 출근하면 유엔기념공원(옛지명 유엔묘지)의 홍매화(Red Plum flowers) 나무에 간다. 홍매화가 봄소식의 전령사이기 때문이다. 홍매화가 꽃을 피울 때면 부산일보에서 칼러 사진을 올리며 봄소식을 전한다고 한다. 올해는 추워 더디 핀다고 한다(작년 대비 40일 늦다고 부산 방송 기자 언급).


작년 갑작스러운 계엄과 이어지는 탄핵 국면의 세파와 관세 폭탄 등 트럼프발 국외발 추위가 사람의 마음도 닫고 경기도 꽁꽁 얼어붙게 해 그 여파가 계속되기 때문에 홍매화도 뜸을 들이고 있는 게다.


저쪽 서있는 홍매화 나무는 아직 꽃망울만 머금고 있다(사진 설명)


해운대 바다 수평선에서 떠오른 2월을 재촉하는 태양이 이미 동백섬 위까지 올라와 카페로 걸어가는 나를 모딜리아니 그림에 나올법한 호리호리한 낯선 내 그림자가 앞서 가이드하고 있다. 왼쪽으로 바다 물결연신 바위에 파고를 치지만, 그 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만이 포말로 부서지며 오거니 가거니 한다. 지금 읽고 있는 2 년 전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재해석한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리는(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에서 본 그런 풍경이 펼쳐진다.


아직 얼굴에 닿는 냉기가 있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도 마스크에 털모자까지 쓰고 있다. 그렇지만 내 마음엔 봄기운 느껴진다.


앞쪽으로 한국에서 제일 긴 현수교라는 광안대교(7.4km) 위로 주말 차량들이 오고 간다. 어젯밤 조명을 밝히며 금요일의 연인들을 유혹하던 그 모습이 이제 아침 햇살에 반사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 너머 광안리 해변과 더 멀리 평풍처럼 에워싼 황령산(금련산) 봉우리도 보인다.


이런저런 잡념에 젖다 보니 카페에 도착했다. 8시 오픈이라서 그런지 아직 손님들이 듬성듬성 있고, 카운트에서도 기둥이 막아 보이지 않는 구석진 푹신한 1인용 소파를 잡았다. 40년 전 대학 시절 도서관 창가에 좋은 자리를 맡느라 민첩한 행동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내빈집은 아무도 없는데 소파도 텅 비어있는데 '허허, 이게 뭐람'하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50킬로도 채 안 되는 저 멀리 대마도를 쳐다본다. 날씨 탓인지 보이지 않는다. 문 오늘 신문에서 연예인 이지아가 친일 경력이 있는 조부를 부정하 부모와 단절했다는 기사 제목만 보았지만 왠지 뒤끝이 텁텁해졌다. 우리 사회에는 일본 하면 일단 부정적으로 보고, 반일이 마치 당연한 것인 양, 어쩜 그게 사회적으로 올바른 행동 양식이라는 표준처럼 되어 있다. 얼마 전 청소년 축구 8강전에서 극장골을 넣은 한국선수가 한일전은 저서는 안되고 꼭 이겨야 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이제 우리가 일본을 특수국가가 아닌  이웃 보통국가로볼 순 없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얼마 전 일본천황 탄생 리셉션에 다녀왔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 다들 천황 리셉션에 초청받아도 가길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어 리셉션이 한가했다.


그러나 새로워진 일 관계를 반영하듯 이번 리셉션은 3백여 명이 빽빽하게 리셉션장을 매웠고 한국이 4번째인가, 5번째 근무라고 하는 일본총영사는 일본말 보다 한국말로 더 재미있게 농담을 섞어가며 스피치를 한다.


그는 이번 리셉션에 3종 세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일본 유수 지방 특산물 니혼슈, 흑백요리사 한국인 우승자가 일본산 생선으로 회와 초밥을 즉석에서 서빙하고, 최근 어느 방송사의 한일 가왕전 인기몰이를 한 준비한 일본 소녀 가수가 친선 대사 신분으로 와 준비한 트롯이라며 느스레를 뜬다.


나도 틈을 이용해 팬을 자청하며 그 소녀 가수와 사진을 찍었다. 마누라가 알면 주책이라고 할지 싶어 사진 찍었단 말은 안 했다. 마누라는 내 브런치를 안 보고, 내 글이 오리지널 독창성이 없고 자기가 한 말을 제 생각인 양 빼기는 수준으로 취급한다.


올해가 한 일 재수교 60주년이다. 동양에서 60 숫자는 인생의 한 사이클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지금 우린 트럼프발 태풍과 시진핑의 중국의 불확실성에 북핵을 이고 사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되며 살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일본에 근무한 적 있고, 그 이후로도 동남아 관련 일본책을 즐겨 읽고 있어서가 아니다. 냉철한 머리(cool head)로 우리 국익을 생각하며 일본을 넘어서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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