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끼리는 수평적이나 건강함은 수직적이다
SNS에 MBTI 관련 게시물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올 때, 그중 상당수는 MBTI 유형들끼리 우열을 가리거나 순위 매기기를 하고 있었다. 예컨대 ‘연애 제일 잘 하는 MBTI 순위’, ‘MBTI별 성격 더러운 순위’, ‘우주최강 돌+I 순위’ 등등 다양하다.
난 이런 게시물들이 잘못됐으며, MBTI에 대한 오해를 더욱 키우는데 일조한다고 여긴다. 게시자들이 MBTI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찍어내듯 만든, 댓글 다는 사람들끼리의 가십거리용일 뿐이라고 본다. 그렇게 MBTI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됐다. 내가 MBTI에 대해 배울 때 제일 먼저 들은 것은 ‘모든 유형 간에는 우열이 없다’는 점이었다. E는 좋고 I는 나쁘거나, J는 좋고 P는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서로 반대일 뿐이다. 좋고 나쁨에 대한 인식은 어디까지나 MBTI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애초에 그 우열의 기준 자체도 객관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가치 판단을 내릴 때 일정 부분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사고방식, 가치관, 문화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1970~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뭐든 가르친대로 잘 배우고 순순히 따라오는 ISTJ가 가장 바람직한 유형일 것이고,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주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논쟁하는 ENTP가 바람직한 유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단지 어떤 사회문화적 환경에는 특정 유형이 더 쉽게 적응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유형이 열등한 건 결코 아니다. 예컨대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사회는 INTP가 적응하기 힘들게 느껴지는 분위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INTP가 나쁜 건 아니며 내 생각과 달리 잘 살아가는 INTP들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한편 유형별로는 수평적으로 동등한 데 비해 그 안에서 각각의 ‘건강함’에는 얼마든지 차이가 날 수 있다. 건강한 ENFP가 있고 건강하지 않은 ENFP가 있으며, 건강한 ISFJ가 있고 건강하지 않은 ISFJ가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이 별로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 유형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건강하거나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성격을 적응적으로 보완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MBTI 유형은 정신적 건강함, 인격적 성숙함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유형별로 건강할 때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장점이 다르고, 건강하지 않을 때 보여주는 단점이 다르다. 즉 다양하게 건강할 수 있고 다양하게 부적응적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SNS에서 보이는 ‘MBTI 유형별 팩폭’ 같은 글은 각 유형별로 부적응적일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부분적으로나마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MBTI는 바로 ‘어떻게 다르게’에 관련되는 것이다. 이때 건강한 상태는 ‘쌍방향적’, ‘적응적’ 등으로 표현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상태는 ‘일방향적’, ‘경직된’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E가 건강할 때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열려있고, 두루두루 넓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사교적이고 활발하게 대화를 끌어갈 수 있다. 대인관계에서 확장성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거나 도움을 주고받을 때 거리낌이 적고, 유창하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통해 타인에게 쉽게 호감을 얻으며 타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능숙하다. 그러나 E가 경직되어있다면 자기 내면이나 일상을 가꾸기보다는 모임에 나가기 바빠 자기관리가 허술해지고, 이는 스스로에게 공허함을 느끼는 원인이 되어 또 다른 모임으로 이를 채우려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모임에서 상대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자기 얘기만 하기 바쁘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흥미에 따라 타인의 영역을 쉽게 침범하기도 한다.
반대로 I가 건강하면 내면의 깊이가 깊어져 화려하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소통이 가능하고, 차분하고 조리 있는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안에서 충분히 생각한 다음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실수가 적으며 신중한 사고와 판단력으로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된다. 관계의 깊이를 추구하기 때문에 오래 알아갈수록 풍성한 대화와 단단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I가 일방향적일 경우 자기 안의 생각은 많은 데 비해 타인과의 소통은 턱없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혼자 상상하고 오해하여 관계를 그르치기도 하며, 관계 형성과 개선을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겨우 만든 관계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타인에게 자신의 영역을 결코 내어주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이기적이거나 방어적으로 보일 수 있어 더 넓고 다양한 관계 형성에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N과 S는 어떠한가? N이 건강하면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에너지를 얻으며,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큰 구도와 흐름을 파악하며 중심을 잡는 데 뛰어나다. 특히 이러한 접근 방식과 사고는 깊은 통찰력을 쌓고 발휘하는 데 가장 좋은 기반이 된다. 그래서 모험으로 보이는 일을 용기 있게 감행하여 성공해내기도 한다. 반대로 N이 경직되면 자신의 주관이 너무 강해져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타협하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항상 거대한 범위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이상적이며 비약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다보니 구체적인 사실 관계 파악이나 현실적인 분석은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안 좋은 쪽으로도 상상력이 뻗어나가 비현실적이거나 불필요한 걱정을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반면 S가 건강하면 구체적인 사실과 현실적인 분석을 통해 일관적이고 정확한 논리 및 실용적인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전례와 경험에 기반하여 위험성이 낮은 판단을 끌어낼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떠올리고 실행하는 데 강하며 현재의 체제나 원칙을 잘 준수하는 편이기 때문에 조직의 관리자로서 안정적인 역량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사소한 문제도 간과하지 않고 짚고 넘어가려는 꼼꼼함으로 업무 역량과 태도에 대한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S가 경직되면 작은 정보에 매달려 시야가 좁아지고, 큰 틀을 보지 못해 전체적인 구도를 고려해야 하는 지휘관의 자리에서 판단을 그르칠 위험이 커진다. 또한 현재의 체제, 전례, 경험, 원칙 등을 너무 고수한 나머지 이를 벗어나는 새로운 변화를 잘 시도하지 않고 고이기 쉬우며, 다양한 아이디어나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로만 일관하게 된다. 그렇기에 문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할 수는 있어도 대안 제시에는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T와 F를 살펴보자. 우선 T가 건강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며, 대상에 편견을 갖지 않고 중립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 인정된 사실과 합의된 규칙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이를 준수함으로써 신뢰를 얻고,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T가 일방향적이면 자신의 논리가 항상 완벽하고 합리적이라는 아집에 빠져 이에 동의하지 않는 타인을 폄하하고 무시하게 되며, 융통성과 공감력이 부족해 대인관계를 비롯한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또 단편적인 사실이나 논리에 집착하여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이해를 거부하기도 하며, 자신의 논리나 주장이 반박·거부당하면 수치심을 느끼고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F가 건강하면 대인관계에서 뛰어난 친화력과 관리 능력을 보이고, 이에 힘입어 대인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유연하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 또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배려심을 통해 각자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융통성을 발휘하는 대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회생활과 각종 업무에 대인관계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이는 매우 유용한 특징들이다. 그러나 F가 경직되면 개인적인 관계나 감정적인 충돌을 우려해 잘못된 것을 지적하거나 바로잡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며, 자신의 감정에 기초한 주관적인 선입견을 근거로 판단하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고 편파적인 결정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막연한 감정이나 엉성한 논리를 밀어붙여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하며,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무책임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감정이 손상되었다고 느낄 때 상대적으로 쉽게 자제력을 잃고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J와 P를 살펴보자. J가 건강하면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갖고 명확한 계획과 체계를 세워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며, 목표와 기준을 또렷하게 설정하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서 환경과 상황의 제약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내면과 주변 환경을 차분하게 정리정돈하고,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 및 업무 패턴을 유지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안정감을 준다. 설정한 목표를 가장 최선의 효율과 최상의 효과로 달성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업무의 질 또한 우수한 편이다. 그러나 J가 일방향적이면 자신이 정한 규칙, 계획을 지나치게 고수해 설령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일정이라 하더라도 조급하게 강행하려 한다. 이는 융통성 부족으로 이어져 타인에게도 동일한 방식과 강도를 강요하게 되고, 결국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빚는 원인이 된다. 특히 처음 정한 목표나 진행 방식과 어긋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상황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다른 대안이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이는 스스로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P가 건강하면 주어진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시시각각 변화가 일어나는 환경에서 여러 가지 변수를 유연하고 개방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다. 그렇기에 처음 설정한 목표나 진행 방식을 바꿔야 할 때 이를 과감히 포기하고 전환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고, 그 과정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 계획이 있더라도 동시에 다양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항상 감수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뿐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으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P가 경직되면 정해진 목표와 스케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쉽게 주의가 분산돼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거나 목표를 자주 바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먼저 주도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외부 상황에서 자극이 주어졌을 때 수동적으로 움직이기에 업무의 추진력과 체계성이 떨어진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제거하기보다는 순응하거나 회피하려 하며, 이로 인해 목표보다 낮게 성취하더라도 쉽게 합리화하고 안주한다. 이는 타인에게 책임감과 안정성, 일관성 부족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처럼 각각의 선호 경향이 보이는 강점과 약점이 다양하게 다르고, 때로는 강점이 약점이 되고 약점이 강점으로 변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사람마다 특기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다르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16가지 MBTI 유형들을 대할 때 그들이 어떤 유형인지로 좋고 나쁨을 따지지 말고, 그들이 자신의 강점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약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좋다. 자신의 선호 경향을 건강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일방향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는 조언과 조력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서두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MBTI간의 편 가르기나 순위 매기기 등의 게시물들은 각종 SNS에 퍼져있는 소위 ‘어그로 끌기 계정’들의 양산형 낚싯바늘에 불과하며, 이전에는 다른 소재를 미끼로 달았다가 이제는 유행에 맞춰 MBTI로 바꿔 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라도 클릭 수, 조회 수, 노출도를 올리고 싶은 의도는 알겠지만, 내게는 그런 식의 컨텐츠들이 MBTI에 대한 일종의 가짜뉴스를 생산·유포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내용의 경중을 떠나 거짓은 거짓이니까.
여담으로, ‘MBTI 궁합표’라는 이름으로 떠돌아다니는 표를 본 적이 있다. 사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전문성이나 근거를 갖고 작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MBTI 간의 상성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 SNS에 돌아다니는 그 표의 내용이 맞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기 위해 넘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고 적은지에 대한 연속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지, 딱 잘라 무엇과 무엇은 맞고 안 맞고를 규정하는 단편적이고 결정론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유형이든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끼리 만나면 얼마든지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고, 경직되고 미성숙한 사람끼리 만나면 소모적인 갈등과 심각한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출처도 근거도 알 수 없는 궁합표를 믿으며 사람을 초면에 거르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말자. 대신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 그 사람 자체를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와 통찰력, 좋은 사람을 품고 감당하며 맞춰나갈 수 있는 나의 인격을 기르자. 좋은 사람과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결코 틀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