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는 각각의 선호 경향에 대해 집중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먼저는 에너지의 방향이다. 세간에서 E(외향성)는 주로 ‘인싸’, I(내향성)는 주로 ‘아싸’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듯하다. ‘인싸’와 ‘아싸’라는 단어가 SNS에서 익숙하게 퍼져있는 단어다보니 접목시키기 편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특히 ‘인싸’와 ‘아싸’라는 단어 자체가 ‘인싸’는 긍정적이고, ‘아싸’는 부정적이라는 이미지를 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향성과 내향성의 이러한 가치판단적 이미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외향성을 더 뚜렷하게 띠는 사람은 자신 밖의 세계에 주로 관심을 갖고 그 지평을 넓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든, 어떤 활동을 하든, 하다못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성격도 사교적이고 대인관계를 넓게 형성한다. 특히 에너지를 밖으로 쏟는데다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더 얻는 스타일이니, 체력이 허락하는 한 엄청난 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들의 이미지는 주로 활발하고 열정적이다. 또 차분히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바로바로 말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외향적인 사람은 사회생활에 최적화되어있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에 아주 유능한 사람일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전 편에서도 언급했듯 어떤 선호경향이든 건강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가 있다. 만약 외향적인 사람인 별로 성숙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면?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외향성은 오히려 바깥으로 안 좋은 영향력을 뿜어내 오히려 가만히 있느니만 못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예컨대 너무 외향적이다 못해 사람들에 지나치게 의존적이 되면,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하기 어렵다. 심리학에 공적 자의식, 사적 자의식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전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자는 스스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의미한다. 외향적인 사람이 사적 자의식을 건강하게 기르지 못한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을 너무 의존하게 되면 공적 자의식만 너무 커질 수 있고, 쉽게 말해 주변 사람의 시선과 판단에 너무 흔들릴 수 있다.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면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겠지만 나쁜 사람들이 많다면 자존감을 잃고 우울해하거나 가스라이팅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또 외향적인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니 많은 모임에 잘 참여할 수는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반기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만약 모임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나가는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을 많이 하거나,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듣지도 않고 자기 얘기 하기에만 바쁘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즉 외향적이어도 사려 깊고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야 자신의 성향을 좋게 살릴 수 있다.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은 어떨까? 요즘은 그나마 덜한 것 같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못할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컸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사람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관계를 넓혀야 하고, 주도적으로 먼저 나서는 태도가 필요한데 내향적인 사람들은 잘 그러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특히 당시에는 외향적인 사람을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여기고 추구하던 사회적 분위기도 이에 한몫 했을 것이다.
물론 사회생활은 밖으로 뻗어나가는 확장성이 중요하기에 외향적인 사람들이 강점을 많이 갖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못한다고 여기는 것은 이분법적이고 단편적인 평가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은 확장성만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회생활의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들은 자기 자신과 그 주변에 관심을 많이 가지며 그 깊이를 더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내향적인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제대로 친해지면 끈끈하고 오래가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생각에 비해 말을 아끼는 편이기 때문에 언행에 신중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일이나 대인관계에서 신뢰감을 얻기에 좋은 요소가 된다. 그래서 알려지는 것은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느릴지라도 은은하고 단단한 명성을 누릴 수도 있다.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건 어려워해도 일대일의 대화에서는 상대방에 집중하여 풍성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 꼭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어도 상담 등 사람을 대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말로 바로바로 표현하기보다 차분하게 글로 정리하는 것을 더 선호하며 능숙한 사람의 경우 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거나 감동을 준다.
하지만 내향성도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안 좋은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집중한다는 것은 잘못되면 자기 자신‘만’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극도로 자기중심적이 될 수 있고, 이는 사회성 결여로 이어져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해 타인에게 거부당하거나 스스로 관계의 확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 또 외부 활동이나 다양한 경험에 대해서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잘 나서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밖에 나가 많은 사람을 접하고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요컨대 외향성과 내향성 모두 일장일단이 있으며, 에너지의 방향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방향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발현하고 활용하느냐’가 결정짓는다. 그렇기에 외향성을 많이 선호하는 사람은 내향성의 장점을 보완하는 루틴을 가지면 좋고, 내향성을 많이 선호하는 사람은 외향성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좋다. 둘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위해 상대성을 갖는 몇 가지 예시를 덧붙인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어떤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좀 더 빠르게 움직이고 대처하는 편인데 비해 내향적인 사람들은 먼저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을 우선한다 ― 이것은 생활양식인 J/P와도 관련이 있다. 그렇기에 외향적인 사람들은 시의적절하게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것이 미봉책이거나 잘못된 대처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들은 정확하고 효과적인 수를 떠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시간을 쓰다가 타이밍을 놓쳐 대처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또, 외향적인 사람들은 주로 경험하다보니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주로 이해를 먼저 한 다음 경험에 발을 들이려 한다 ― 이것도 생활양식인 J/P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연역적으로 이해한 다음에 경험으로 확증할 수도 있고, 귀납적으로 경험한 다음에 이해를 도출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너무 한 방식으로만 움직이면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을 놓칠 우려가 있다.
정리하자면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은 서로 다르지만 각각이 성숙하고 건강하다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러니 반대 성향에게서 도움을 받거나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눈여겨보고 손을 내밀거나 스스로 보완해보자.
특히 ‘나는 외향적이니까’, ‘나는 내향적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보는 시야를 좁히지 않았으면 한다. 이해를 위해 외향성과 내향성을 나누어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 어떤 사람도 외향성 100%, 내향성 0%이거나 외향성 0%, 내향성 100%은 아니라 생각한다. 선호의 정도가 각각 다를 뿐 각각의 모습이 모두 자신에게 있으니, 건강한 측면은 살리고 아쉬운 측면은 다듬고 보완하고자 신경 쓰면 된다. 사람을 완전히 뒤집고 바꿀 필요는 없으니 신경 쓰는 정도만. 그것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