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검사 결과지는 ‘예언서’가 아니라 ‘보고서’다
MBTI는 심리검사다. 그렇기에 MBTI는 심리검사가 갖는 특징을 여럿 갖고 있다. 즉 심리검사의 보편적 특징을 먼저 파악해야 MBTI를 바라보는 시선을 교정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MBTI는 ‘자기보고식 검사’다. 쉽게 말해 검사하는 사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응답을 하는 검사다.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니 가장 정확하게 나올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역으로 나 자신을 속이면 얼마든지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MBTI 검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가장 편하고 익숙한 것을 고르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 과정에서 정말 나 자신이 어떠한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진짜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되어야 하는 (되고 싶은) 자신’을 생각하며 검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자신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깊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타인의 평가를 수용한 사람이나, 실제 자신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성격을 닮고 싶어하는 경우 결과가 왜곡되기 쉽다.
따라서 MBTI 검사를 할 때는 이러한 자기보고식 검사의 한계와 오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응답을 해야 한다. 결과를 볼 때도 내용을 100% 그대로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검사 과정에서 결정하기 어려웠던 선택지가 있다면 그 문항이 어떤 결과와 관련된 변수일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이는 다음 두 번째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
두 번째, 심리검사 결과는 나의 성격을 ‘일부분’만 설명해줄 수 있다. 심리검사는 내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는 설명해줄 수 있지만 내 성격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왜냐면 심리검사 결과는 특정한 문항에 많이 답할수록 어떠한 성격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높은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검사가 측정하거나 분류하려고 작정한 일부 성격에 대해서만 결과를 알려줄 수 있고, 그 외에는 알려줄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지표에 대해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심리검사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이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던가? 무의식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의식에 대해서도 전부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정의내리기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성격을 단 하나의 검사 결과로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MBTI는 총 16가지로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는데, 외모조차 100%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성격이 어떻게 16가지로 정리될 수 있겠는가? 16가지란 어디까지나 큰 범주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 안의 세부적인 특징들은 사람마다 또 어떻게 다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누군가의 MBTI 유형을 듣고 섣불리 단정 짓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ENFP라고 해서 ‘넌 ENFP니까 싫어하는 사람 없이 다 잘 지내겠구나?’라고 묻는 것이 대표적인 일반화의 오류다.
세 번째, 심리검사 결과로 나오는 나의 성격은 ‘결과적’인 모습이다. 심리검사 결과가 알려주는 ‘일부분’에는 주로 특정 성격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가 포함된다. ‘왜’ 행동하는 지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쉽게 말해 ‘당신은 쉽게 화를 냅니다’라고는 알려주지만 왜 당신이 쉽게 화를 내는지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이 ‘왜’야말로 MBTI를 포함한 심리검사 결과를 보면서 사람마다 꼭 성찰해보아야 할 세부적인 특징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왜’를 이해하는 만큼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통찰이 깊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친구과의 약속에 15분 정도 늦었다. 그러자 친구가 나에게 화를 냈다. 여기까지가 심리검사 결과의 ‘어떻게’에 해당한다. 하지만 화를 내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친구는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예의다’라고 생각해서 내가 예의가 없다고 여겼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내가 친구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어쩌면 친구는 10분까지는 늦어도 관대하게 용서해주지만, 그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친구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람으로서 못난 행동이다’라는 가르침을 받아왔고, 약속에 늦은 내가 못난 사람이라고 여겨져 못마땅했거나 반대로 못난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충고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극단적으로, 친구가 과거에 누군가를 기다리다 15분가량 연락도 없이 늦어져 소재를 파악했더니 그 사람이 급하게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적이 있어 그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있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 특정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정말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성을 싸그리 무시하고 ‘친구는 쩨쩨하고 다혈질이다’라고 단정 지어버린다면, 나는 그 친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그 친구에 대한 편견 때문에 더 깊고 진실한 관계를 맺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그 친구가 왜 화를 냈는지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 친구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가 보다 정확해진다. 가령 위 예시에서 첫 번째라면 친구를 존중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단순히 나의 시간 계산 착오 또는 불의의 상황 때문임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두 번째라면 너무 늦어서 마음 쓰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가 우선이다. 세 번째라면 친구의 가치관 변화를 시도하거나 – 하지만 이건 오히려 갈등만 키울 우려도 있다 - 이번만은 실수고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는 사과한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왜’를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의 더 많은 특징을 염두에 두고 보다 센스 있는 대응을 할 수 있다.
요는 MBTI 검사 결과에서 당신의 생각이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과지가 ‘당신은 ~합니다.’라고 얘기하면 ‘나는 ~하구나.’ 하고 끝내지 말고 ‘정말 나는 ~한가? 왜 나는 ~한 거지? 내가 ~하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 등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심리검사 결과를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이자 선입견으로 삼지 말고, 보다 심층적인 자기 이해로 들어가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비단 MBTI뿐만 아니라 다른 심리검사에서도 자신과 타인을 더 폭넓고 섬세하게 바라보도록 돕는 인지적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