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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굽쇠 Mar 15. 2023

MBTI에 대한 오해 (6) : T vs F

공감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다음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 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사고형(T)과 감정형(F)도 SNS에서 많이 다뤄지는 선호 경향이다. 특히 ‘이성’과 ‘감정’이라는 친숙한 단어가 쓰이는 개념이라 그런지 직관형(N), 감각형(S)보다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많은 부분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다소 오해하는 부분도 보인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우선 사고형(T)의 전반적인 컨셉은 내가 느끼기에 ‘정확함’이다. T들은 기본적으로 정보에 대한 판단이나 선택, 결정을 위한 핵심 근거를 이성으로 확립하려 한다. 그런데 이성은 논리로 길을 열기 때문에 T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히 탄탄한 논리의 기반이 되는 정확한 사실 관계로 향한다. 정보와 상황과 사람을 대할 때 그들은 논리적, 분석적, 가능한 객관적인 태도로 사고하려 한다. 또한 논리란 전제와 결론 구조가 잘 갖춰져야 하기에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를 눈여겨본다. 특히 이들은 원리원칙, 사회적 규범이나 개인적·집단적 기준 등을 중요시한다. 왜냐면 그것들은 주로 T들의 판단과 행동의 ‘전제’로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T가 적응적이라면 자신의 생각, 주관과는 반대되는 사실이나 논리를 마주할 때 이를 곧잘 수긍하고 자신을 바꾼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그것이 더 정확하고 사실에 가깝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자신을 그것에 맞춰 바꾸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차갑고 예리한 논리력과 분석력이 남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서, 소위 내로남불 하지 않고 공정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갖고자 한다. 이러한 자세는 T의 안정적이고 믿음직한 판단력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T가 일방향적이라면 모든 것에 촘촘한 논리를 요구하며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따진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한 한 번 구축된 규범이나 기준을 지나치게 고수하며 완고하고 소모적인 논리로 언쟁을 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이 인정사정없고 조화력이 부족하게 보일 수 있다. 모든 것이 논리로 설명되지는 않는 경우도 많고, 어떤 것을 더 우선해서 고려하느냐에 따라 논리의 방향이나 결론까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T가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있다면 그런 논리의 확장과 숙성 가능성을 간과하고 좁고 짧은 식견에만 머무를 위험이 있는 것이다.




   반면 감정형(F)의 전반적인 컨셉은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F들이 판단, 선택, 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과가 얼마나 자신에게 편안하게 여겨지는지이다. 그 편안함의 구체적인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하지 않게 유지되거나 자신이 보기에 좀 더 조화롭고 평화로운 상황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렇기에 F는 구체적인 사실 관계와 엄격한 논리보다는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과 관계에 더 주목한다. 또한 어떤 상황의 원인과 결과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갖는 의미와 영향이 무엇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과정이 어떻더라도 결론은 잘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F가 적응적이라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조정하여 조화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하고, 특정 기준에 너무 얽매이기보다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연함이 있기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재치를 갖출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정보와 논리에만 매몰되기보다 그것이 담긴 상황적 맥락, 상징성을 파악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대승적인 의미와 결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특히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상호 협조를 이끌어내기에는 F의 특성이 유용하다.


   그러나 F가 경직되면 뚜렷한 주관이나 기준 없이 사람에게 휘둘리기 쉽고, 논리적 이유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따져야 할 때 회피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융통성이 과하다 못해 원칙을 외면하여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감정이 상처받았을 때 더 과민하게 반응하여 소통과 업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F는 자신이 보기에 좋은 관계와 상황을 만들고 싶어하는데, 여기서 ‘자신이 보기에’라는 기준은 F가 내리는 주관적 판단이 사실에 기반한 추론보다 우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볼 때 싫게 느껴지면 어떤 타당한 결론이나 행동 방식도 거부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차이가 있기에 T와 F가 서로의 행동 방식을 보면 서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고 갈등할 요소와 상황은 많다. 예컨대, 사람 간 갈등이 생겼을 때 T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잘잘못을 가려서 책임의 소재와 해결 방안을 명확히 하려 한다. F가 보기에는 서로의 싸움을 더 크게 벌리고 관계를 악화시켜서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반대로 F는 서로의 상황과 감정에 자세히 공감하고 사과해서 빠르게 갈등을 매듭지으려 한다. T가 보기에는 진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덮으려는 방식이라 누군가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부당한 방식이다.


   F가 보기에 T는 싸우는 걸 좋아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피도 눈물도 없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T가 보기에 F는 자기 맘대로 행동하고 비합리적이며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는 서로의 일방향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거나, 상대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보통 이야기를 잘 나눠보면 도달하고자 하는 결론은 비슷한데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방법과 시작점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T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따른 추론과 결론을 내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T는 이해를 중시하기에 모두가 납득해야 이를 바탕으로 서로 화합할 수 있다고 여긴다. 반대로 F는 사람 간의 감정을 파악하고 어루만져야 조화로운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F는 공감을 중시하기에 서로가 감정적으로 충분히 교류하고 동기화될 때 화합할 수 있다고 여긴다. 모두가 문제 해결을 바라더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더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가 다르기 때문에 T와 F는 충돌하는 것이다.


   때로는 T의 진실 추구가 F에게는 기분 나쁜 일이 될 수 있고, F의 조화와 화합 추구가 T에게는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일이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좀 더 이야기하고 나눌 필요가 있다. 서로의 방식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는 경우도 많겠지만 적어도 서로의 방식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좋은 영향이 무엇인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독이려고만 해서 해결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방식이 절충되거나 적재적소에 활용될 때 시너지가 난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경험으로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T와 F에 대한 큰 오해, 바로 ‘공감 능력’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 한다. 흔히들 T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F는 너무 공감을 많이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감 능력은 T와 F에 따라 나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화와 인격의 성숙함에 따른 문제다.


   물론 F가 공감이라는 수단을 우선해서 사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T가 공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F는 공감이 먼저 나오고 T는 공감이 나중에 나올 뿐이다. F는 상대의 상황보다도 감정에 먼저 뛰어들고, 그 감정이 생기게 된 상황에 대해 차차 알아가는 방식으로 대화를 한다. 반면 T는 상대의 상황을 먼저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기반해 더욱 확실하고 깊은 공감을 하려 한다. 그래서 F가 보기에는 상황만을 묻는 T가 자신의 감정에는 무관심하다고 오해하는 것이고 T가 보기에는 감정만 얘기하는 F가 자신의 상황을 잘 모른 채 기계적인 반응만 해준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그래도 공감은 감정에 직접 관련된 일이기에 F의 반응속도가 평균적으로 더 빠르다고 본다. 비유하자면 감정이라는 같은 결론을 F는 두괄식으로 다루는 반면 T는 미괄식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하나가 좋고 나쁜 게 아니라 둘 다 공감을 하이라이트로 터뜨리기 위해 각자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위해 대화법을 적절하게 조절한다면 이전보다도 훨씬 더 부드러운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건 T와 F를 망라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T는 자기 생각과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상대를 논평하고 설득하려 한다. 상대가 보기에는 항상 자기만 옳고 남이 틀렸으며 자꾸만 가르치려 들려는 모습이기에 가까이하기 싫어진다. 설령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나 만들어낸 논리가 틀렸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공격이나 궤변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려 애쓴다. 그들에게 대화와 소통이란 자신을 절대적으로 합리화하고 이를 설파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경우가 많다.


   반면 공감 능력이 부족한 F는 자신이나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의 감정만을 우선으로 내세운다. 자신과 의견, 가치관 등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모든 가치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황 논리를 무한 생산한다. 안 그래도 주관성에 입각하는 F인데 공감 능력마저 부족하면 더더욱 이기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변칙적이고 편협한 행동으로 주변을 답답하게 한다. 요컨대 자신의 감정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는 무심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공감 능력은 T와 F 모두가 갖출 수 있으며 성숙한 인격을 위해 꼭 필요한 소양이다. 오죽하면 ‘공감 능력도 지능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T가 강한 사람들 중에서 공감 능력을 폄하하며 자신의 냉소적 태도를 옹호하거나 F가 강한 사람들 중에서 선택적 공감을 하면서 자신이 공감을 잘 한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호 배타성이 아니라 각자의 선호 경향에 입각한 공감 능력의 확장과 적절한 활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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