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양식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한 태도의 결과물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생활양식을 구분 짓는 판단형(J)와 인식형(P)이다. 생활양식에 대한 선호 경향이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각종 예시를 접하기 쉽고, 다른 선호 경향보다도 구분과 이해가 쉬운 듯하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J와 P의 구분을 계획성의 여부로 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아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계획성만으로 J와 P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좁고 단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관찰하면서 느낀 각각의 일반적인 특징과 더불어 계획성과 게으름 등 흔히 하기 쉬운 오해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이다.
먼저 판단형(J)의 기본 컨셉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통제·관리하려는 욕구’이다. 바꿔 말하면 자신을 기준으로 현실을 조정하려는 타입이다. 판단형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주변 세계로부터 안정감을 느끼길 원한다고 본다. 그 안정감은 자신이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해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예측할 수 있고, 자신의 행동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때 형성된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노력과 행동으로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는 세계는 이들에게 두렵고 불안한 곳이다. 그렇기에 판단형은 자신의 일정한 방침에 따라 상황을 통제 내지 관리하고자 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더욱 넓히거나, 반대로 자신의 통제 범위 안에서 변수와 돌발 상황을 최소화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J가 뚜렷할수록 규칙적·체계적인 생활양식을 선호하고 주어진 상황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삶을 그렇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므로 계획은 이들에게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행동이 된다. 쉽게 말해 계획이란 이들에게 현실을 이해, 예측, 통제하려는 욕구의 발로(發露)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J들은 안정감을 위해 자신의 물리적, 정신적 환경을 정리정돈 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리의 방식과 깨끗함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리’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있는 환경에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통제하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J의 특징은 일을 할 때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J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가 정해졌다면 그것을 가능한 빠르게 또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목표를 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한 번 정해진 목표라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의지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능한 J가 진행하는 일들은 목적의식과 방향감각이 분명하고 뚜렷한 기준과 계획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마무리한다. 특히 꼼꼼한 J는 다양한 돌발 상황까지 미리 감안하여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여러 변수가 생기더라도 미리 만들어둔 여유로 대처한다. 그렇게 목표 달성까지 들어가는 에너지의 결과적인 평균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한다.
다만 J에 너무 편향되고 경직된 사람인 경우 목표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니 시야가 좁아져 조급한 마음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면 업무 진행 과정에서 챙겨야 할 부수적인 요소들을 간과하기도 하고, 조금의 비효율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기조 하에 무리해서 일을 추진하기도 한다. 특히 J가 강할수록 자신만의 기준이나 의사가 뚜렷하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할 때 융통성이 부족하거나 강요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한다. 또한 미지의 변화무쌍한 세계를 싫어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정보와 계획 없이 아이디어 수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꺼린다. 그렇기에 이들은 안정적인 판단력과 추진력은 있으나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는 유연함과 속도는 부족한 편이다. 정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쉽게 멘탈이 흔들리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한다.
반면 P(인식형)의 기본 컨셉은 ‘현실에 필요한 방식으로 자신을 변화·적응시키는 태도’이다. 바꿔 말하면 세계를 기준으로 자신을 조정하려는 타입이다. 인식형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계획으로 세계를 통제하는 것보다 변화하는 상황과 세계에 맞춰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정보가 부족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는 당연한 것이기에 J만큼 두려움을 크게 갖지 않는다. 그렇기에 P는 고민하며 우물쭈물하기보다는 빠르게 그 안에 뛰어들어 정보를 파악하고 필요한 대응 방식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크게 낙심하지 않고 의미를 찾아낸다. 변하기 쉽고 수시로 바뀌는 세상에 맞추어 그에 가장 적절한 삶의 방식을 구성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삶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P가 뚜렷할수록 탄력적·자율적인 생활양식을 선호하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고 맞춰가는 방식을 좋아한다. 삶을 그렇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빠르게 받아들여야 하므로, 선험적으로 세계를 예단하는 성격의 계획보다는 먼저 행동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다. J가 연역적으로 자신의 기준과 예측을 만들고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P는 귀납적으로 세계를 이해한 다음 그에 맞춰 자신의 기준을 만들려 하기 때문에, 경험 과정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변수와 돌발 상황을 P는 좀 더 수용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자체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에도 P의 이러한 특성은 J와 뚜렷하게 대조된다. P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에너지의 완급 조절 폭이 크다. 마감 시한까지 가능한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를 들여가며 일하려는 J와 달리 P는 그 패턴이 불규칙한 편이다. 그래서 언제는 폭발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다가도 언제는 에너지 축적을 우선하기도 한다. 또한 과정의 흐름을 타는 편이기 때문에 계획대로 잘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원래 방식을 관철하는 것보다는 가급적 다른 대안으로 빨리 전환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성숙한 P는 업무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와 돌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융통성 있게 계획과 일정을 수정하고 유연하게 대처한다. 이들의 여유 있는 태도와 적응력은 끝까지 평정심과 넓은 시야를 잃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신력을 붙들어주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P가 일방향적인 사람인 경우 융통성과 유연함이 너무 지나쳐 업무 진행에 일관성이 부족해지기도 한다. 이미 정해진 목표에 대해서도 회의(懷疑)하며 방향성을 바꾸려 하기도 하고, 특정 포인트에 꽂히면 그것에만 집중하다가 다른 요소를 총체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기도 한다. 또 극복해야 할 환경 앞에서 상대적으로 능동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J와 달리 수동적인 태도로 회피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한다. 그 결과 초기에 설정된 목표와 원칙, 계획을 자주 수정하며 결국 방향성을 잃고 끝맺음을 잘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산만하고 변덕스럽게 여겨져 믿음이 안 간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한 P의 완급 조절 과정에서 에너지 축적이 비효율적으로 너무 길어질 경우 누군가에게는 꾸물거린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